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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 근대문학사 솎아내고 역동적 지역연구 집중했다”
“‘허풍선이’ 근대문학사 솎아내고 역동적 지역연구 집중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1.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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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 20년 외길 걸어온 박태일 경남대 교수

 

“지역문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와 생활세계의 문학, 몸으로 향유했던 구체적인 문학 현실이다. 그럼에도 기존 문학 연구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고공비행을 거듭하며 학문적 티내기에만 골몰했다 할 수 있다. 그들에 대한 연구 필요성과 당위성에도 이제껏 돌아보지 않았던 자리가 지역문학이다. 따라서 나로서는 지역문학 연구야말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내 노동 생산성이 가장 높고, 앞으로도 가장 높을 자리라 믿고 있다.”

1997년부터 ‘지역문학 연구’를 하나의 방법론으로 밀고 온 박태일 경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최근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4』(경진출판)를 내놨다. 그가 <교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역문학’을 이렇게 정의했다. 20여년에 걸쳐 ‘지역문학’의 실태를 복원, 복권하는 데 앞장서왔던 그는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 1』(2004), 『마산 근대문학의 탄생』(2014),  『유치환과 이원수의 부왜문학』(2015)를 발표해 일찍부터 ‘지역문학’ 연구자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정리해왔다. 그를 이메일로 만났다.   

△ 지역문학은 그간 문학사적으로 주변에 머물렀거나, 최악의 경우 완전히 배제돼 오기도 했다. 1997년 <지역문학 연구> 창간호에 관련 글을 발표한 이후부터 20년을 지역문학 연구에 매달려 왔다. 지역문학’ 연구에 매달린 이유는.
“이제까지 지역은 ‘지방’ 또는 ‘향토’로만 이해돼 왔다. 서울중심주의 문학의 하위 열등한 문학으로 이해되는 게 지방문학이다. 그와 달리 서울 중심이 갖지 못한 향토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문학이 향토문학이다. 지역문학은 이러한 지역 열등감이나 우월감에서 벗어나 지역과 지역의 수평적 연대에 바탕을 둔 지역구심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문학을 일컫는다. 따라서 오래도록 지역문학은 개념 구성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채 지방문학이나 향토문학으로만 존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지역문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와 생활세계의 문학, 몸으로 향유했던 구체적인 문학 현실이다. 그럼에도 기존 문학 연구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고공비행을 거듭하며 학문적 티내기에만 골몰했다 할 수 있다. 그들에 대한 연구 필요성과 당위성에도 이제껏 돌아보지 않았던 자리가 지역문학이다.”  
 

△ ‘지역문학 연구’를 하나의 ‘방법론’으로 밀고 왔다. 무엇에 대한, 어떤 방법론인가?
“우리가 지금 믿고 떠받들고 있는 기존 문학적 명성이나 지식은 거의 모두 두 가지 틀에 갇혀 있다. 근대 시기 짧은 일국주의 패권 체제에 의해 획일적으로 선택되고 재배치된 결과라는 점이 그 하나다. 거기다 일반 시민사회의 생활세계나 체험 현실과 무관하게 따르고 배워야 할 추상적인 규율 문학, 제도권 문학의 결과라는 점이 그 둘이다. 지역문학 연구는 이러한 파행적인 근대문학 이해에 대한 성찰과 문제 제기를 바탕으로 혁신 문학, 실천 문학을 지향하고자 하는 노력 가운데 하나다. 그를 위해 가장 많이 기대는 방법은 실증적인 것이다. 기존 문학연구에서 오래도록 가장 전통적, 정통적인 것이라 내세우면서도 거꾸로 가장 빈약하고 허술한 자리가 거기다. 따라서 지역문학 연구에서는 실증이 곧 방법이라는 명제가 참이다.”   
 

△ 문학연구의 최종 목적지는 ‘문학사 서술’이란 말이 있다. 혹 문학사 서술을 염두에 둔 작업인가? 지역문학 연구라는 관점에서 소망스러운 ‘문학사’는 어떤 것인지 견해를 듣고 싶다.
“오늘날 우리가 학습하고 있는 근대문학사는 살찐 문학사, 동어반복의 문학사다. 몸집이 크고 많이 아는 체 떠들지만, 쓸모없는 지식에 힘을 빼는 허풍선이를 보는 듯하다. 게다가 문학사 기술이야말로 살아 있는 문학 현실을 향한 가장 획일적이고도 폭력적인 권력 표시가 아닌가. 지역문학 연구는 그들에 대한 타자적 긴장을 기본 전제로 삼는다. 지역문학 연구 관점에서 소망스러운 문학사는 단위에서는 날렵한 몸매로 움직이는 지역별 문학지, 범위에서는 문학 현상의 구체적이고도 미시적 요소를 다루는 짧으나 예각적인 모습이면 좋겠다. 그들이 모이거나 어울리는 역동적인 자리가 우리 문학사의 진면목으로서 울림을 주리라 본다. 문학사 기술엔 관심이 없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많은 까닭이다.” 
 

△ 2004년부터 올해까지 내놓은 지역문학 연구 내용을 간략히 시기별로 정리한다면. 또 각기 다른 이 작업을 통일성 있게 묶는 내적 원리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처음부터 특정 원리를 따른 것은 아니다. 기존의 지식 정보를 점검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파들면서, 새 것을 채우거나 기워 가며 현실 정합성을 찾는 방식이었다. 1990년대 후반 지역문학 연구를 방법론으로 내걸면서 경남·부산에서 시작하여 2000년대 중반부터 경북·대구, 제주도, 전남·광주로 권역을 넓혀 나왔다. 2010년대 들어 국외 지역문학과 북한문학으로 눈길을 돌렸다. 앞으로는 이들 지역별 문학의 수평적인 비교, 대조의 눈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역문학 연구 작업을 묶는 통일성 있는 내적 원리는 그렇다 쳐도 내적 동력은 꾸준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시인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남들 다 침 묻혀 놓은 언어를 얻어먹기 위해 기웃거리거나, 더 커 보이는 언어에 끼어들기 위해 호들갑 떠는 짓거리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한결같았다. 학문 담론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실 정합성이 엷은, 담론을 위한 담론은 피하겠다는 생각을 늘 지녀왔던 셈이다. 시를 쓰는 일이나 공부하는 일이나 시적인 상태, 곧 창의성을 향한 노력이 핵심 동력이라면 동력이겠다.”
 

△ 그간 연구를 통해 ‘지역문학’으로서 경남·부산 문학의 특징을 꼽는다면? 그리고 이들 문학이 ‘한국 현대문학사’의 값진 자원으로 수렴될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가? 예컨대 ‘서울’ 중심의 중앙문단 활동과 비교했을 때, 유의미한 부분이 있다면.
“아직 공부 중이라 명료하게 특징을 늘어놓을 입장이 아니다. 세 가지 정도는 짚을 수 있겠다. 첫째, 근대 계급주의 문학의 전개와 변모 과정에 끼친 경남·부산 지역문학의 큰 역할이다. 자생적인, 지역 계급주의 문학의 성장과 전개는 이채로운 모습이다. 둘째, 전쟁기 문학에서 떠맡았던 집중적인 이바지다. 셋째, 을유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 한국 우파의 주류 문학, 패권 문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서 이득을 많이 본 문학인을 가장 많이 지닌 지역이 경남·부산이다. 자신이 이룬 바와 무관하게 허명을 얻었거나, 남의 영광을 가로챈 얌체 문학인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는 고스란히 우리 근대문학사 전반에 걸친 인습을 향한 성찰과 맞물리는 의의를 지닌다.”   
 

△ 이번에 출간한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4』는, 어쩌면 다른 지역문학 연구에도 원용할 수 있는 일종의 ‘모델’로도 보인다. 이번 책에서도 “학계나 시민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지거나 처음 다뤄진 것”이 있는데, 어떤 성과를 꼽을 수 있나.
“지역문학은 단위로 볼 때, 국가 지역을 경계로, 안으로는 대지역·중지역·소지역, 그리고 바깥으로는 국가 연합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번 책에서 다룬 것은 경남·부산(울산 포함) 중지역 안쪽의 군별 소지역 문학 관련 기술이다. 이러한 미시적인 접근은 이뤄진 적도 없고, 가능성조차 의심 받을 만한 것이었다. 이번 책은 그 가능성을 내보인 첫 삽이다. 다른 지역에서 빛나는 성과가 꾸준히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번 저술에 실린 글은 거의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속살로 채워졌다. 그 가운데서 김원봉 장군의 아내인 동래 박차정 열사의 소설, 울산 지역 근대 첫 시조시인인 조순규, 윤동주·심련수와 함께 실국시대 마지막 시기의 요절 시인인 합천의 허민, 창원 설창수의 광복기 민족문학론, 그리고 김수영의 포로 생활지를 거제도가 아니라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로 바로 잡은 글들을 눈여겨 읽어 주기 바란다.”
 

△ 그간 지역은 ‘지방’으로서 정치경제적 나아가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동의어와 다름없었다. 아마도 ‘지역문학’ 연구를 수행하면서 이런 문제점을 거듭 확인했을 것 같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있었다면.
“처음 ‘지역문학연구’라는 용어를 내세웠을 때, 가까이 있는 이들조차 비웃거나 입방앗감으로 올렸다. 지금은 그들마저 지역문학을 내세우면서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역문학연구에서 큰 어려움은 근대 한문학에 대한 접근에 있다. 근대 한문학은 한글 중심의 민족 단위 국가문학에서는 전근대문학 또는 주변문학으로 내친다. 게다가 한문학 전공자는 그들은 한문학의 본령이 아니라 보고 버려둔다. 그러다보니 근대문학사는 20세기 초기부터 이뤄진 한글문학이라는 틀에 갇혀 통합적이거나 더 뜻있는 국면을 읽지 못하고 있다. 한자는 읽되 한문을 읽지 못하는 나 또한 그 점에서는 같다. 지역문학 관점에서 볼 때 근대 시기 내내 지역유지로, 정치경제 지배층으로서 지속했던 한문교양세대와 계층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면 개별 지역문학은 물론 근대문학사 이해의 파행과 왜곡은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 이후 어떤 구상이 있나?
“요즈음 준비하고 있는 것은 『한국 지역문학 연구』라는 책이다. 경남·부산에서 시작해 역외 지역으로 나아갔던 논고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일이다. 경기·인천, 충청·대전, 경북·대구와 같은 지역과 국외 지역인 연변과 동경 동포사회 문학까지 관심을 넓혔다. 한국 지역문학 연구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에 이어 평양·개성 문학을 중심으로 『북한 지역문학 연구』를 선뵐 예정이다. 서너 해 뒤에 이 일들이 끝나면 다시 경남·부산 지역문학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박태일 교수는?
1954년 경남 합천 출신.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미성년의 강」이 당선해 문학사회에 나섰다. 시집으로 『그리운 주막』, 『가을 악견산』, 『풀나라』 등이 있고, 연구·비평서로 『한국 근대시의 공간과 장소』, 『한국 근대문학의 실증과 방법』,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 『시의 조건 시인의 조건』, 『지역문학 비평의 이상과 현실』 등이 있다. 『김상훈 시 전집』, 『정진업 시 전집 시』, 『허민 시집』, 『무궁화: 근포 조순규 시조 전집』 등을 엮었다. 김달진문학상, 부산시인협회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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