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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마저 집어삼킨 권력 … 악명 높던 공평 다 어디갔나?
대학마저 집어삼킨 권력 … 악명 높던 공평 다 어디갔나?
  •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 승인 2016.11.16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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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16. 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
▲ 일러스트 돈기성

알 수 없는 것이 선거인가 보다. 부도덕의 집합으로 보이던 인물도 자유 천국이라는 국가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 지난 대선에서 우리나라도 국정원 관련 엄청난 의혹 속에서 가까스로 이긴 대통령을 낳았다. 가까스로 이겨도 권력은 통째로 주어지는데, 아뿔싸, 우리는 “개인사도 홀로 챙길 줄 모르는” 미성숙한 사람을 뽑았었나 보다. 그러니 국사와 역사를 어찌 감당했겠는가.

예쁜 옷 갈아입혀주면 입고, 우아한 미소 지으라면 짓고, 가끔 레이저 광선 쏘라면 쏘고. 나머지는 개인사와 국사를 통틀어 전권을 위탁했으니,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그들이 권력을 쥐었으렷다. ‘권력이란 상호이해를 지향하는 의사소통이 갖는 합의를 통해 나오는 힘’(한나 아렌트)일진대, 저들의 손에 바쳐진 권력은 온 국민들을 향한 폭력이 되어버렸다.

이화여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이 위탁정치의 전횡은 방방곡곡에서 깃발을 날렸다. 그 하나, 대학입시에서 휘두른 폭력은 모든 청소년과 그 부모들을 슬픔과 한탄에 빠뜨렸다. 대통령이야 자녀가 없으니 부모 마음을 몰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 상상을 절하는 국정농단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2013년 5월,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여자대학 체육과학부에서 체육특기자 종목을 갑자기 두 배 이상으로 늘렸다. 승마가 포함됐다. 한 특정 여학생이 전국 승마대회에서 2위를 한 다음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2위에 불만을 품은 여학생 측의 명령(?)으로 승마협회가 곤욕을 치르고, 문체부 공무원들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지목돼 경질됐다. 이상한 촌극이었다.

이듬해 그 속편은 경악의 수준을 넘었다. 우리들 가슴에 지금도 현재형으로 가라앉고 있는 잔인한 4월의 세월호 참극이 공교롭게도 그 여학생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 의혹의 와중이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대통령께서 세월호 난 그 다음날, 체육개혁 확실히 하라고 오더(지시) 내려왔다”는 차관의 전언이 드러났다. “세월호 난 그 다음날”, 아직도 에어포켓에 살아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을지도 모를 수백명의 생명들을 버려둔 채, 최고 권력자가 ‘조카’를 위해서 체육개혁이나 명령하는 이런 세상에선 아무도 살아서는 안 된다. 아니, 그 폭력에 우리 모두 이미 죽었다.

무소불위의 폭력이 된 권력은 대학마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위한 산학협력의 한 부품으로 전락시켰고, 이화여대 집행부도 굴했나 보다. 2015년도 체육특기자 모집 요강 중 어떤 자격도 없던 학생이 면접일에 금메달을 걸고 입장한다. 월등한 면접점수는 정성평가 항목이니 법적 책임을 면한다고 치자. 그 메달은 원서접수 마감일 이후의 단체전에서 받은 것이라서 입시 요강에 명백히 어긋나지만 ‘승마공주’는 버젓이 입학한다. “돈도 실력이야…”라고 거들먹거리는 못된 아이, 남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폭력 속에서 잘못 키워진 아이.

그 아이(?)가 짓밟아 뭉갠 결과는 참담하다. 하긴, 입학 후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하지 않은 것, 차마 서술하기 곤란한 행동들이 사실이라고 해도, 일탈 그 자체는 개인의 자유요 권리다. 그에 합당한 결과를 인정하고 정규교육을 박차고 나가면 그만이다. 젊은 모두에게 꿈틀거리는 욕망일 수도 있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예술가들 중에는 상식에서의 일탈을 승화해 인류를 구원하는 예술작품을 남기기도 했지 않은가. 문제는 그 지저분한 일탈을 만회한답시고 권력을 이용해 학원을 난도질해 입시고 성적이고 뭣이든 “대박”을 터뜨리려는 짓거리다. 우리는 그 폭력의 저열함에 분노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옛날의 이화여대는 정직성이 생명인 곳이었다. 1960년대 학부에서는 심지어 무감독시험이 가능했던 곳이다. 교수는 시험지를 나누어주고 나간다. 학생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독하면서 감독교수가 없는 채로 시험을 마친다. 커닝을 정직성 훼손으로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번 부정직하다고 낙인찍히는 일이 벌어지면 그 다음 학교생활은 끝이었다.

사무적으로도 봐주기 없는 경직에 가까운 공평성으로 유명했다. 거의 악명 수준이었다. 예컨대 1980년대, 지방에 거주하는 졸업생이 취업을 위해 증명서들을 떼러 간다. 방학 동안의 관례라고, 신청서를 써서 제출하면 다음날 아침 일괄 결재가 나기 때문에 다음날 받으러 가야한다. 지방에서 온 사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한 사람만 편의를 봐 줄 수 없기 때문이란다. 다른 사립대에서도 비슷한 서류를 떼는데, 사정을 듣더니 시간을 정해주며 다시 오란다. 그런데도 모교를 원망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을 믿었으니까.

지금은 마땅히 사라졌지만, 금혼규칙도 누구에게나 공평했었다. 같은 동기인 인문대 다른 학과 학생이 4학년 2학기를 마친 겨울에 현직 교수와 결혼을 했다. 그래서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결혼식에 참석한 총장 왈 “O교수님, 부인 졸업장 어디 쓰실 일 없으시죠?”라고 농담처럼 던졌다는 말이 법이었단다. 학칙에 결혼하면 퇴학이었고, 결혼식은 졸업식 이전이었다.

대통령이라는 ‘허명’

공평할 때 우리는 불편함이나 억울한 정황도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 이 수치스러운 현상들은 공평과 정직과는 몇 광년은 떨어져있다. 다만 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낳은 결과일 뿐이라서, 온 나라가 치를 떠는 것이다. 사상 초유의 범죄, 딱히 살인을 하지 않았다지만 보통사람들 전부를 ‘혼’을 죽여 버린 그 죄상들은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또 수백 번 죽어야하니까.

그 폭력의 정점에서 도덕적 권위와 국정 장악력을 다 잃어버린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한다.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이 듭니다.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아니요. 용서란 그 잘못에 합당한 구체적인 행동으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옷이 아무리 화려한들 그 옷이 맞지 않으면 벗는 것이 옳지요. 이름이 아무리 높은들 그 이름이 허명이라면 마땅히 내려놓아야지요.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전남대 독일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하인리히뵐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도이칠란트·도이치문학』등을 썼다. 퇴임 후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장편소설 『표현형』 등을 내고 PEN문학활동상, 광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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