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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겠다”는 정부 대응 ‘그만’
“조심하겠다”는 정부 대응 ‘그만’
  • 손화철 한동대·글로벌리더십학부
  • 승인 2016.11.1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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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담론의 ‘허세’_ 『포스트휴먼시대의 휴먼』 (한국포스트휴먼연구소, 아카넷, 2016.11)

 

기술의 발전이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이뤄지는 것을 감안
하면 이런 성찰적 사유는 결국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인상
비평에 그치게 될 공산이 크다.

 

이 글은 한국포스트휴먼연구소와 한국포스트휴먼학회가 편저하고 아카넷이 발행한 신간 『포스트휴먼시대의 휴먼』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자크 엘륄은 기술의 자율성이 심화됨에 따라 기술담론의 허세(technological bluff)가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기술담론의 허세란 기술의 실질적인 유효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기술발전 자체를 당연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각종 담론을 말한다. 매일매일 신문에 신기술 개발에 대한 소식이 나오고 예상되는 경제적 이익을 추정하거나, 절반 이상이 상상으로 채워진 장밋빛 미래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미묘한 종류의 허세도 있다. 신기술의 개발과 관련한 각종 논의와 토론들이 실질적인 대책으로 이어지지 않고 말의 성찬으로 끝나는 경우다. 이런 경우 문제점들을 이미 언급했다는 사실이 해당 개발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결과가 된다.
이런 결과가 모두 어떤 음모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 논의들이 의미있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각기 다른 전제와 시점을 전제하고 자신의 이야기만을 되풀이 하기 때문이다. 알파고에 대한 논의가 놀랄만큼 빨리 잦아든 원인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수많은 토론들이 서로 다른 지면에서 전개됐는데, 토론 주최자의 관심과 목적, 토론자의 전공이나 직업, 토론의 길이나 구성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서로 다른 논점과 주장, 결론들이 제기되거나 도출됐다.

일자리가 대거 없어질 거라는 예측에서부터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의 지성을 구현하게 될 것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의 문제제기가 이뤄졌고, 알파고의 능력을 하찮은 것으로 폄하하는 입장부터 종교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는 입장까지 다양한 평가도 이뤄졌다.
이런 논의들은 아무리 많이 반복돼도 의미있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기술의 발전이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성찰적 사유는 결국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인상비평에 그치게 될 공산이 크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신기술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는 시대에 기술철학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임무는 기술에 대한 각종 논의와 토론을 효과적으로 조정하고 종합하는 일이다. 기술철학은 과학기술학, 기술사회학과 함께 이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중요한 학문 분야다.

문제는 이런 다양한 논의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과 차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쟁점을 도출하고 그에 대한 일정한 합의를 시도하는 체계적인 노력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논의들이 “우려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으니 앞으로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의 선에서 마무리 되고 만다.
기술철학이라는 분야와 무관하게 지금까지 비슷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려를 표명하고 주의를 환기하는 정도로 논의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 기술이 과도한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 대해 정부나 전문가들이 “우리도 그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니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 정도의 대응이 나오는 식이다. 기술철학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빅데이터 기술을 향유하는 시대에도 지켜야할 사생활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이 기술의 사용범위를 어떻게 제한할 것인지를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한 접근이 많은 저항과 논란을 일으키겠지만, 그런 논란이 맹목적인 기술발전을 제어하는 한 방편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선 학계나 공론장에서의 논의들이 좀 더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수행될 필요가 있다. 또한 논의 내용이 단기적인 문제에 대한 것인지, 장기적인 전망과 관련된 것인지를 명확하게 하고 어떤 생각을 전제로 하여 진행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기술철학은 기술 자체에 대한 연구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 즉 기술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함께 수행해야 한다.

 

 

 

 

손화철 한동대·글로벌리더십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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