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19:50 (화)
“공장식교육, 비리로 얼룩져… 이젠 ‘교육독립’ 말할 때”
“공장식교육, 비리로 얼룩져… 이젠 ‘교육독립’ 말할 때”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6.11.14 13: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희망철학연구소 ‘교육독립선언’ 발표
▲ 사진제공= 희망철학연구소

대통령 측근 비리로 인해 박근혜 정부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언론과 시민들의 감시 속에 나날이 새로운 비리 정황이 드러나고, 광화문광장은 수만~수십만 개의 촛불이 수주일째 꺼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비선실세의 핵심인물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학사관리 의혹은 최경희 총장 사퇴와 교육부 특별감사를 이끌어냈다. 이런 가운데 “이젠 교육분야도 독립을 선언해야 할 시점에 왔다”는 이른바 ‘교육독립선언’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희망철학연구소(소장 박남희)는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철학아카데미 대회의실에서 열린 학술포럼에서 ‘교육독립선언’을 알렸다. 이번 선언이 특정 정파의 정치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선언을 주도한 희망철학연구소는 한국 교육 현실을 정치 대신 ‘철학적 성찰’로 접근했다. 이번 학술포럼에서 논의된 △사회적 책임을 위한 교육의 새 지평(서동은 경희대)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교육을 허하라(한상연 가천대) △교육개혁과 사회적 합의(남평오 영동대) △교육현장에서의 자율성 부여(이동용 건국대) 등 총 10개의 교육개혁 열망은 ‘교육독립선언문’에 한 데 모였다. 

‘교육독립선언’은 우선 “대통령의 측근 비리로 ‘총체적 난국’이란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교수사회와 교육 종사자들은 차분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고등교육기관이 교육부의 각종 재정지원사업에 종속되면서 잃어버린 자율성을 회복하는 일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선언문은 “교육부가 행정부에 종속된 형태로 운영되는 현 시스템에선 장기적인 교육정책의 수립이나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정권에 따라 BK, HK, ACE, 프라임사업 등으로 대학을 흔들고, 이에 따라 학사운영도 학생들을 경쟁과 이기주의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들은 “교육부를 행정부에서 독립된 기구로 재편성하고, 교육수장을 시민의 자유선거를 통해 선출할 것”을 제안했다.

박남희 소장은 이번 선언이 “무한경쟁을 지향하는 교육에서 무한책임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탈바꿈할 첫 걸음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공장식 교육 탓에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현 교육의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낸 선언문의 맨 마지막 대목은 시사적이다. 

“우리 시대의 교육은 통조림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내듯 학생들을 찍어내고 있고, 교수들 역시 패키지 교육의 가이드로 전락해 있다. 속도와 편리함 속에서 포장된 쾌락을 추구하는 가운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育成’을 필요로 하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교육의 내용이다. 자본의 폭주를 대체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교정하는 역할을 무엇이 할 수 있을 것인가. 교육의 전면적 복원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다음은 교육독립선언 전문.

2016 교육독립선언_ 한국 교육에 대한 철학적 성찰

대한민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의 측근 비리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이제 정권의 존폐 문제로 발전했다. 우리는 이 사건의 시작이 이화여대 학생들의 농성으로 촉발된 사실에 주목한다. ‘梨大 사태’는 대학의 재정 지원을 빌미로 구조 조정과 순치(馴致) 작업을 진행해 온 현 정부에 대한 교수와 학생들의 인내가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상징적 사건이었다.

‘총체적 난국’이란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교수 사회와 교육 종사자들은 차분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에는 교육의 혼란이 적지 않은 원인을 제공해 왔다. 이토록 만신창이가 된 한국사회를 타개하기 위해 이제는 대학과 교수 사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가 어수선한 현 시국에서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전면적인 반성과 검토의 자리를 마련한 이유이다. 

교육은 온전한 인격체로서 교양을 갖춘 책임 있는 주체로 시민을 양성하는 게 목적이다. 교육은 그 무엇보다도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배양하는 데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급변하는 세계에서 자기의 발전과 더불어 세계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역량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아이들을 죽음의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우리는 오늘 새로운 교육 이슈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위해 교육의 독립을 선언한다. 

우리는 교육 현장이 이처럼 황폐화된 근본 원인은 정권과 자본에 종속된 교육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이다. 교육은 정치권력의 변화에 따라 흔들려선 안 된다. 정권의 향방에 따라 교육 정책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정권의 시각에 따라 교육 내용을 달라하는 오늘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역으로 ‘교육’이 재편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교육부가 행정부에 종속된 형태로 운영되는 현 시스템에선 장기적인 교육정책의 수립이나 운영이 불가능하다. 현 정부 집권 이후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시대착오적 발상이 되풀이 발생하는 이유이다. 정권에 따라 BK, HK, ACE, 프라임 사업 등으로 대학을 흔들고, 학생들을 경쟁과 이기주의로 내모는 학사 운영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치 교육감 선거에서 확인할 수 있듯, 우리 시민사회는 이미 충분히 성숙한 의식과 운영 역량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해 줄 제도가 없다는 데 있다. 핀란드의 교육 시스템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그러한 제도를 시행할 개혁 방안을 이제는 진지하게 모색해야만 한다. 시대를 뒤집는 용기는 일상의 습관화된 판단에선 어려운 법이다. 교육부를 행정부에서 독립된 기구로 재편성하고, 교육 수장을 시민의 자유선거를 통해 선출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 시대의 교육은 통조림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내듯 학생들을 찍어내고 있고, 교수들 역시 패키지 교육의 가이드로 전락해 있다. 속도와 편리함 속에서 포장된 쾌락을 추구하는 가운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육성(育成)’을 필요로 하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교육의 내용이다. 자본의 폭주를 대체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교정하는 역할을 무엇이 할 수 있을 것인가. 교육의 전면적 복원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이번 <교육독립선언> 포럼은 무한경쟁을 지향하는 교육에서 무한책임을 지향하는 우리 시대 교육의 독립을 선언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