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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구조, 현장·이론 따로 놀아 … 자율권 있는 교육분권 자치제 필요하다”
“교육구조, 현장·이론 따로 놀아 … 자율권 있는 교육분권 자치제 필요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1.07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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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_ 34강.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의 ‘스승의 길’

“오늘날 학교 교육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교육 이론을 연구하는 학문계와 현장에서 실천을 담당하는 교사 집단이 분리돼 있는 것이다. 또한 학교 현장의 교사가 결정권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교육 현실이다. 교사가 최고의 교육적 실천을 할 수 있으려면 자율권이 있어야 한다. 그 고리를 연결하는 길은 교육 분권 자치제다.”
지난달 29일(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 W스테이지에서 열린 ‘문화의 안과 밖’ 34강 ‘스승의 길’ 강연에서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은 ‘교육 분권 자치제’ 도입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교육부는 지방 교육청에 예산을 확보해주는 역할만 수행하고 지방 교육청은 학교가 필요한 교육자원과 재정을 지원하는 일, 즉 교육부 장관은 있지만 절대 권력을 가진 교육부가 없는” 제도를 주문했다.
“교사의 길이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성 지향’ 위에 ‘역사적 맥락’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교사의 역할과 책무를 강조했다. 강연은 그가 살아온 교사의 길을 반추하면서 교육현장의 과감한 개혁을 주문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강연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교사의 길’이라는 집은 인류 역사의 영원한 스승인 부처, 공자, 예수 이 세 분의 삶과 가르침을 토대로 지어야 한다. 그분들의 가르침이 곧 어떠한 하중에도 깨지지 않는 튼튼한 반석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반석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보편성을 말한다. 그런 다음 각자가 거울로 삼고 살아온 스승들의 공통점들을 찾아내어 자기의 시대와 장소에 접목시킬 때, 보편성에 역사적 맥락이 반영된 써먹을 수 있는 ‘한 생각’이 된다. 즉, ‘보편성’이라는 반석 위에 ‘역사적 맥락’이라는 들보와 서까래와 지붕을 얹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살아 숨 쉬는 한 생각’이 거주할 수 있는 ‘교사의 길’이라는 집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집짓기의 과정이 내가 걸어온 교사의 길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이러한 보편적 지향과 역사적 요청에 따라 교사의 길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내가 지은 이 하나의 집이 다른 교사들이 자기들의 집을 짓는 데 도움이 도기를 바란다.

교사가 해서는 안 되는 일

● 반역사적인 일을 하면 안 된다.
가르치는 과목에 상관없이, 교사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 곧 자기가 소속된 공동체의 역사적 현실에 따라, 교사로서의 책무가 있다. 일제 강점기의 교사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학생들에게 ‘독립사상’을 심어주는 것이 역사적 책무였다. 모든 직업은 역사적 책무를 최우선으로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직업보다도 교사와 성직자, 이 두 직업이 갖는 역사적 책무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이 두 직업군이 역사적 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면 그 공동체는 망하지 않는다.
 
● 반도덕적인 일을 하면 안 된다.
인류는 자본주의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결합이 얼마나 참혹한 역사를 만들어냈는지를 1차,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다. 돈과 무력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들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힘의 원리, 약육강식의 도덕률이 극대화 된 것이 제국주의다. 도덕론은 정의론이다. 정의는 힘이 있는 사람이나 집단이 힘이 없는 사람이나 집단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도덕의 근본이다. 교사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경쟁 대신 협력을, 전쟁 대신 평화를, 독식 대신 공존을 지향하는 새로운 도덕 문화, 반 계급문화를 창출해내는 일을 교육을 통해 실천하는 일이다.

교사가 해야 하는 일

현대의 모든 직업군은 교육/교육기관을 통해 양성되기 때문이다. 교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 돈과 승진에는 아무런 뜻이 없어야 한다.
교사는 돈에 관한한 털어도 먼지 하나 나지 않아야 하며, 승진이라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교사가 돈에 조금이라도 욕심을 가지는 순간 그는 교사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열린다. 교사는 자기의 월급에 만족하고 살 때만 교사로서 성숙해져 갈 수 있다. 교사는 또한 승진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교사의 길은 승진과 보수의 높고 낮음으로 평가되는 길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영원을, 땅에서 하늘을 살아내야 하는 길이다.
    
●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국가라고 하는 공동체에서 계급은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높은 벽을 쌓았다. 계급은 그야말로 신성불가침이었고, 그러한 역사를 살아온 인류는 다름을 이유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벽을 쌓아 왔다. 하지만 다름은 다름일 뿐 옳고 그름이나 우열이 아니다. 그 어떤 다름에도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삶의 신비와 기쁨을 누릴 권리가 있다. 학교라고 하는 공동체에서도 편애가 일어난다. 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아이와 싫어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사람은 어떤 다름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아름다운 존재로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다. 힘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돌봐야 하는 존재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
교사의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는 아동을 보호하는 일이다. 교사는 부모를 포함한 공동체의 그릇된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또는 이미 상식이 돼버린 잘못된 가치관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성공관, 행복관이다. 지배와 착취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의 세상을 만드는 약육강식의 국가주의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책무가 교사에게 있다.

● 공부해야 한다.
교사는 공부해야 한다. 이 세상은 사실보다는 거짓이, 진실보다는 허위가, 참보다는 가짜가 훨씬 큰 세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이성을 현혹하고 있다. 이처럼 세상에 팽배해있는 그릇된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세상을 바로 알기 위해서 교사는 종합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 영원과 대화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교사는 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 하늘과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 속에서 일해야 하지만, 영원과 대화하면서 영원의 속삭임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공자는 학문으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지만 자기의 ‘앎’을 ‘천명’이라고 불렀다. 예수도 팔레스타인 갈릴리 주변의 마을을 다니면서 들려주던 가르침을 ‘하늘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을 할 뿐이라고 했다. 이성과 지식과 학문을 넘어서는 어떤 ‘힘’과 대화함으로써 인간은 부처와 예수와 공자가 깨달았던 깨들음을 얻을 수 있다. 그 깨달음이 있어야 우리의 유한한 지식을 넘어서 허위를 꿰뚫어 보고,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해 줄 수 있다. 그것이 성숙한 교사의 모습이다.

교사 집단의 길

조직의 일원이 조직을 위해 해야 하는 첫째 책무가 무엇일까. 그것은 조직이 부패해 조직의 목적을 벗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특히 종교, 교육, 군대에서 그 사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질적 성숙보다는 양적 성장을 추구하려는 본능을 가진 조직체는 질적으로 부패하게 돼 있다. 교장을 포함한 모든 교사는 학교 공동체의 일원이다. 교육도 종교나 군대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단 없는 자기 쇄신을 요하는 조직인 것이다. 즉, 학교 교육이 그 목적과 본질을 끊임없이 지향하고 탐구해, 시대와 상황에 적합하게 재해석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학교 교육은 아동을 죽이는 일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연구와 재해석 그리고 실천을 담당해야 하는 집단이 바로 교사 집단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교육 이론을 연구하는 학문계와 현장에서 실천을 담당하는 교사 집단이 분리돼 있는 것이다. 이론과 실천의 연결고리가 너무 허술하다. 심지어 그 둘이 아주 분리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고리를 연결하는 길은 교육 분권 자치제다. 학교 현장에서 아동을 직접 만나고 있는 교사가, 교육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들의 경험을 통해 학문이 검증되고 보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의 교사가 결정권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교육 현실이다. 교육부라는 정책결정기구의 지배 아래, 단위 학교들이 지시, 감독, 평가를 받고 있는 지금의 제도로는 교육 이론과 교사의 실천이 만나기 어렵다. 이론은 이론대로, 실천은 실천대로 따로 놀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 교육 구조의 민낯이다.

따라서 기존의 교육부, 도교육청, 시군교육지원청, 학교로 이어지는 위계적 단계는 간소화돼야 한다. 교육부는 지방 교육청에 예산을 확보해주는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 학교와 가장 가까이 있는 지방 교육청은 학교가 필요한 교육자원과 재정을 지원하는 일을 담당한다. 그렇게 되면 방대한 조직의 교육부는 없어도 된다. 즉 교육부 장관은 있지만 절대 권력을 가진 교육부가 없는, 서구의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더 좋기는 아예 입법과 사법, 그리고 행정의 三府에 교육을 더해 四府가 되면 더 좋다. 삼권 분립이 아니라 사권 분립이 되는 것이다.
 
교사 집단은 학교(교사)가 중심에 있고 행정과 평가기구가 뒷받침하는 구조, 서로 평등하면서 돕는 구조를 이루는 교육자치제도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교육분권자치의 실현을 위해 앞장 설 교육감이 당선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당선된 교육감들은 그 지위와 권한이 법적으로 보장된 시도 단위 교육청 협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정당들에게 대선 때 각 당의 공약으로 교육분권자치를 요구해야 한다. 평상시에 학부모들과 교육에 관심 있는 국민들에게 교육분권자치제도의 필요성을 널리 알려, 동조를 구해는 일을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교사 집단이 해야 할 책무다. 이것이 곧 교사집단이 국민과 아동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이자, 현대의 교사 집단의 역사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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