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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날 그말
잊을 수 없는 그날 그말
  • 정유석 충남대 박사·건설방재연구소
  • 승인 2016.11.0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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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정유석 충남대 박사·건설방재연구소

운전면허증을 따고 처음 운전대를 잡은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일요일 아침, 누나의 차키를 몰래 가져 나와 시동을 켜고 집 밖을 나갔다. 긴장됐다. 늘 다녔던 동네였지만 차안에서 본 동네는 낯설었고 누나의 차는 누나가 몰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가지 못했다. 멀리 가지 못하고 금방 돌아와 원래 있던 자리 그대로 두었지만 그 자리에는 누나가 있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누나의 사자후를 들었다. 누나의 가면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영혼의 벗겨짐을 느꼈다. 나의 운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날 이후 도둑운전은 계속됐고 영혼의 탈곡은 매번 계속됐지만 늘어나는 운전 횟수와 시간만큼 나의 운전은 자연스러워졌다. 지금은 능숙한 자가운전자가 됐다.
 
박사학위를 따던 그날 또한 선배의 말을 잊지 못한다. “유석아! 이제 연구할 수 있는 면허증을 땄구나.” 이제 시작이니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라던 그 선배의 말을 잊지 못한다. 그렇다. 박사학위는 연구면허증에 불과하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연구재단의 박사후연구원에게 지원하는 사업은 누나의 차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연구면허증을 딴 초보연구자들에게 지원하는 연구비는 박사과정 동안 받아왔던 지원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왠지 모를 이질감이 있다.
 
그렇다! 내가 연구를 주도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처음 운전대를 잡은 것과 같은 조심스러움과 긴장감을 느끼게 하면서 오롯이 초보연구자에게 연구 진행을 맡긴다.
 
나의 연구주제는 지속하중에 대해 보강된 구조물의 장기거동 및 성능을 평가하는 것이다. 연구의 연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연구주제다. 학문후속세대지원사업으로부터 지원받는 박사후연수기간 동안 박사과정 때부터 진행해 왔던 연구를 주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저널에 출간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도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누나 차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의 면허는 장롱면허가 됐을 것이다. 연구재단의 지원은 나의 연구를 장롱에서 꺼내 주었다. 이제 겨우 장롱면허를 면한 연구면허증을 가지고 초보연구자인 나는 연구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누나차를 몰래 타면서 늘어난 운전 실력처럼 연구과제와 연구에 투입되는 시간이 늘면서 초보연구자는 연구가 자연스러운 연구자가 될 것이다.

 정유석 충남대 박사·건설방재연구소

지속하중에 대한 보강된 구조물의 장기거동 및 성능에 관한 연구로 펜실베니아주립대에서 박사를 했다. 현재 구조물 유지관리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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