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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낯선 죽음
한없이 낯선 죽음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6.11.0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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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박아르마 건양대 교수

16세기 프랑스의 모럴리스트 몽테뉴는 “연륜이 쌓인다고 지혜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어떤 일을 처음으로 겪게 되면서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운 처지에 종종 놓이게 된다. 결혼을 하여 부모가 되고 나이가 들어 노년기에 접어들고 죽음이 가까운 미래의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때 어느 경험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특히 살아 온 세월이 살아 갈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년기가 돼 죽음을 현실의 문제로 생각하게 되면서부터는, 다행히 연륜만큼 지혜가 저절로 쌓이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보통의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쉽게 답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상황이나 대상의 본질로 돌아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점검해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웠다. 신입생 때부터 보아온 학생들 중에 현재 만나는 사람과 계속 교제를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면서 상담을 해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 대개의 경우 이미 결정을 내리고 찾아온 학생에게 다른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의 ‘사랑은 보호와 책임, 존경, 지식’이라는 유명한 구절을 언급하며 체크리스트를 점검해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누구나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노년기의 삶의 변화와 다가올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나름대로의 체크리스트가 필요하다는 것의 나의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몽테뉴의 『수상록(Essais)』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돼 왔다. 최근에 출간된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고봉만 엮고 옮김, 책세상)는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노년, 죽음과 관련된 구절을 찾아 소개한 책이다. 16세기 프랑스 사상가의 생각을 통해 읽는 노년기의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은 공감을 넘어 어제의 경험처럼 생생하게 전해진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그가 은둔 생활을 하던 중 대부분 40대의 나이에 이르러 쓴 글로 이뤄져 있다. 노년기를 몇 세부터 볼 것인지 시대마다 다르겠지만 아직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몽테뉴가 보여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은 놀랍기만 하다. 그는 나이가 들어 “다른 사람에게 쓸모없고 불쾌하고 귀찮은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성과 양심’에 따라 행동할 것을 강조한다.

사회에서 그 역할을 할 수 없으면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면 노년기에 이르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 몽테뉴는 “영혼이 긴장하지 않고 자유스러운 상태”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그는 일상의 문제부터 전문적인 식견을 드러내는 대화까지 가리지 말고 또한 그 대상도 구분하지 말고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라고 하면서 ‘대화의 즐거움’을 강조한다. 몽테뉴는 나이가 들면 침묵하고 많은 것을 내려놓을 것을 권하지만 노년에 이르러서도 ‘사랑은 삶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노인이 쾌락을 찾는 일을 금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위안으로 삼을 만한 대목이다.

루소는 50대에 『고백』을 쓰면서 노년에 이른 자신의 나이와 다가올 죽음에 대해 회한에 사로잡혀 비탄조의 심경을 되풀이해서 말했지만 몽테뉴는 상대적으로 아직 젊어서인지 그가 보여준 죽음에 대한 성찰은 관조에 가깝다. 그는 삶의 최종 목표인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현실로 인정하며 맞서라고 말한다. 죽음을 피할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죽음은 기습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미리 죽음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몽테뉴는 죽음에 대해 말하면서도 ‘죽음의 철학을 넘어 삶의 철학’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은 자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성찰의 깊이에서 고독한 은둔자의 철학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몽테뉴의 책을 소개하면서 다소 지나칠 정도로 많은 구절을 인용하고 말았다. 그 정도로 그의 노년과 죽음에 대한 성찰인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에는 인용을 위해 탐나는 대목과 인생의 체크리스트로 삼고 싶은 구절이 차고 넘친다. ‘학제간융합연구’의 일환으로 죽음에 대한 연구를 3년째 진행하면서 얻은 연구결과 중 하나도 죽음교육을 받게 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감소하고 이른바 ‘죽음 대처 유능감’이 커진다는 것이다. 몽테뉴의 노년과 죽음에 대한 성찰도 죽는 법(웰다잉)을 배우는 것은 사는 법(웰빙)을 배우는 것이라는 점에서 모든 세대에게 권할만한 삶의 지침서가 될 것이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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