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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칭기스칸 경영 펼친 전희천 오리콤 부회장
인터뷰 : 칭기스칸 경영 펼친 전희천 오리콤 부회장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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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광고업계에 칭기스칸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해온 전희천 오리콤 부회장은 ‘잡종의 진정성’을 확신한다. 제일기획, 금강기획, 오리콤 등 광고계의 대기업에서 간부와 CEO로 활동하면서 그는 거대조직을 슬림화, 유연화시켜 실효를 본 장본인이다. 철저한 혼합문화적, 공동분배적 조직관리와 평등한 정보공유가 그의 모토였다. 이건 매우 유목사회적인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
“유목적인 걸 일부러 끌어들인 건 아니에요. 다만 제 개인적 삶이 함경도 북천에서 강원도 산골로 서울로 떠돌았고, 사회적 커리어도 법학과 철학, 기자와 광고기획자로 변해온 걸 볼 때 유목이 저를 따라다닌 것 같아요. 뭐, 현대의 유목민이라 칠 수도 있겠네요.”

그는 옮겨다닐 때마다 문화적 충돌에 막혔다고 털어놓는다. 기존 문화에 동화되느냐 아니면 문화를 바꾸느냐의 문제가 절실한 삶의 과제로 떠올랐다. 서울대 법대에 떨어지고 이듬해 벼락치기로 공부해 들어간 철학과에서의 공부가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 법관 대신 중앙일보에 들어가 사내 자유언론운동을 주도하다 해직당했지만 인간문제를 보는 확실한 눈이 생긴 것. 그러다 1984년 연이 닿아 제일기획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인 광고인생이 시작됐다. 그렇게 부대끼면서 새인생을 맞고, 경영자로 성장하는 동안 그가 내린 결론은 “공존의 존재론”이다.
“기업조직의 인프라는 시스템, 프로세스, 맨파워 세 가지입니다. 하지만 이걸 만들어놓는다고 저절로 움직이는 건 아니죠. 이걸 가동시키는 건 바로 문화입니다. 저에게 문화는 바로 사람인데요, 저는 시장도 사람들의 집합으로 보죠. 문화마케팅도 평소에 강조하는데, 먼저 라이프스타일을 긍정하라는 얘기죠.”

그는 공채형식을 거부해왔다. 그러면 상위권 1, 2위 대학 출신으로 회사가 가득 차고, 그러면 조직이 정체, 문화가 경직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원을 대량으로 뽑을 때 서른 곳에서 서로 다른 출신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인력을 끌어오기도 했다. 물론 대책 없이 다양화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처음엔 혼돈과 저항이 생기죠. 그래서 생각해낸 게 전략정보시스템인데요, 직원들간 직접적인 업무적 부딪힘을 줄이면서도 동시에 중앙정보실에 같이 접속, 정보를 공유하게끔 만든 것이죠. 그와 함께 생일을 공개적으로 챙겨준다든지 해서 인간적인 부분을 나눠 가지니까 차이가 좁혀지더라고요.”

눈길을 끄는 것은 오리콤에서 펴내고 있는 사내신문이다. 그는 제일기획에서는 ‘우리마당’, 금강기획에서는 ‘나팔소리’를, 현재는 ‘오리콤 참 좋네요’를 정착시켰다. 이 신문은 원칙이 많다. 대리 이하의 직원이 참여해야 하고, 회사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가 둘 이상 실려야 하고, 모든 글에서 직급을 빼는 것 등등이다. 이것의 효과는 두가지다. 정말 돈 안 되는 수직적인 분위기를 없애는 게 첫째고, 그 다음은 지상에서 지적된 내용을 고쳐나가는 자정효과다.
이 회사의 업무 공유 방식은 큰 자랑거리다. 회장 주재 회의의 내용을 운전기사까지 알게끔 이메일로 보내는 하향식 전달과, 팀별회의를 다른 팀과 간부들이 실시간 공유하는 수평식 전달방식이다. 전 부회장은 이런 쌍방향성을 칭기스칸의 점조직에 비유한다. 칭기스칸이 아라비아 상인들과 역참제를 활용해 구축한 실크로드처럼 정보의 왜곡이 없고, 관리자가 정보장난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칭기스칸과 유사한 점이 많다. 20명으로 비대했던 부서를 5~6명의 팀제로 분화, 민첩화시켰다는 점, 회사의 수익을 경영자가 독식하지 않고 각종 포상제를 만들어 그때 그때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 등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1980년대부터 유목과 관련된 도서를 섭렵해온 전 부회장은 그것의 가치에 대해서 매우 옹호적이다. 가령 그가 ‘로빈슨크루소 데이’를 만든 의도를 보자. “매월 한번 남들이 다 일하는 수요일에 유급휴가를 줍니다. 유목민처럼 도시라는 초원을 배회하고 떠돌아보라는 거죠.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당황해하더니 점차 세상을 보는 여유를 찾더라구요.”
그 자신이 끊임없이 떠돌아왔고, 문화적 충격에서 오는 소외감을 이기기 위해 선택한 길이 전 부회장을 유목 경영자로 만들어왔다. 이런 실존적 조건이 있었기에 그의 경영전략은 상투화로 빠지지 않고, “우리 회사에서는 일과 삶을 일치시켜 즐길 수 있다”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긍정하는 비전 메이킹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를 볼 때 현대의 경영인들이 유목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수긍이 간다. 그건 단순히 전략적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떠돌고 있는 현대인의 근본적 조건을 유목적 떠돎이라는 역사적이고 긍정적인 사례를 통해 재해석하려는 한 차원 깊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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