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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 사회적 합의 위해 ‘미래한국교육위원회’ 창설하자”
“교육개혁 사회적 합의 위해 ‘미래한국교육위원회’ 창설하자”
  • 교수신문
  • 승인 2016.11.0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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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 _ 33강.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의 ‘교육개혁’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 W스테이지에서 열린 ‘문화의 안과 밖’ 33강은 두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강연자가 두 차례 교육부 장관을 지냈던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라는 점, 그리고 그가 과거 5·31교육개혁 재평가를 강조한 점에서 그렇다.
이날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한국 교육의 대응과 제반 여건을 감안할 때 현 시점이 새로운 교육개혁의 적기”라고 지적하면서 “정권의 수명을 넘어 존속하며 미래 한국 교육의 비전과 거시적인 정책방향 제안 등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대타협기구인 미래한국교육위원회를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1995년에 진행한 문민정부의 5·31 교육개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라고 말하면서 “세계화라는 시대적 추세에 영향을 받아 자율과 경쟁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것은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권위주의 체제에 예속돼 중앙집권적, 획일적이었던 기존 한국교육의 틀을 미래조망으로 바꾸는 ‘패러다임적 전환’에 있어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안 명예교수는 ‘바람직한 교육개혁’과 관련, △수월성과 형평성의 조화와 균형 △합리적 수준의 점진적 개혁 △사회적 합의 추구 △전체 사회와의 연관구조 등을 고려해야 교육개혁의 정책적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필자는 ‘윤리’를 일단 ‘마땅히 지키고 준수해야 할 행동규범’이라고 정의한다. 윤리는 그 바탕이 되는 규범성과 어긋나지 않는다면, 합리성과 실효성을 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간주된다. 특히 교육개혁은 문제해결적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규범적으로 바람직하더라도, 합리성, 실효성이 떨어지면 의도했던 결과를 거둬들일 수 없다. 다음 ‘교육개혁’은 거시적 관점에서 교육체제를 크게 바꾸는 것으로 이해한다. 교육은 공공성이 강한 영역이며, 나라의 장래와 미래세대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무척 크다. 따라서 교육의 ‘새 판’을 짜는 교육개혁은 그 자체로서 상당한 역사성을 지닌다. 이러한 맥락에서 ‘윤리’와 ‘교육개혁’을 함께 엮어 필자의 강연 내용을 집약하면, “규범적으로 바람직하고, 아울러 합리성과 실효성, 다시 말해 적실성을 갖춘 교육개혁은 어떤 것이며,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 그것을 언제, 어떻게 실행해야 할 것인가”로 정리할 수 있다.

바람직한 교육개혁의 방향     
교육은 내면적, 정신적, 질적인 변화를 포함해 인간의 심층적, 총체적 변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그와 연관되는 상호작용과 변화는 장기적이고 복합적이다. 또한 교육에서 이뤄지는 투자는 투입된 자본의 회임기간이 길고, 그 결과를 측정하기도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교육개혁은 마땅히 장기적 관점에서 설계돼야 하며, 그 성과 또한 지속적으로 발효, 축적될 수 있도록 구상돼야 한다. 규범성, 적실성 차원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육개혁의 방향은 다음과 같다.
수월성과 형평성의 조화와 균형: 우리가 모든 학습자들의 발전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키울 수 있는 종합적·균형적 교육체제를 구축하려고 하는 경우, 수월성과 형평성은 기본적으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교육적 가치다. 따라서 양자 간의 관계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양자의 균형과 조화라고 생각한다. 수월성과 형평성의 조화는 ‘경쟁과 상생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점진적, 합리적 개혁-이상과 현실의 조화: 개혁은 이상과 현실의 대화다. 성숙한 민주사회에서의 개혁은 급진적·파격적·교조적 개혁이어서는 안 되고, 이념이 다른 차기 정권에서도 이어갈 수 있는 합리적 수준의 점진적 개혁이어야 한다. 그래야 개혁의 성과가 정권의 수명을 넘어 지속적으로 축적될 수 있다.

사회적 합의의 추구: 큰 개혁일수록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주요 정책결정이나 개혁을 둘러싼 담론은 크게 조정적 담론과 소통적 담론로 구분할 수 있다. 사회적 합의는 정치집단 간, 이해관계 집단 간, 그리고 국민과의 관계에서 이뤄진다.
전체 사회와의 연관구조: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하위체제로 구성돼 있고, 그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교육개혁 또한 인적자원정책, 고용노동시장정책, 산업정책, 사회복지정책 등과의 연관구조 속에서 추진해야 한다. 이는 개혁의 정책적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주요한 열쇠다.

사회투자국가론과 교육정책
그렇다면 위에서 논의한 교육개혁이 추구해야 할 큰 방향, 즉 수월성과 형평성을 함께 아우르고, 전체 사회적 연관구조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 합리적 개혁을 추구하는 현실적 모델은 없는가. 이에 근접한 모형으로 1990년대 이후 유럽에서 크게 부상한 이른바 ‘사회투자국가’ 내지 사회투자적 접근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사회투자국가론은 후기 산업사회의 도래, 인구고령화 등 현대의 급변하는 정책환경 변화에 대응해 서구의 사회정책 및 교육정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거시적 정책접근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은 교육 및 사회정책을 경제발전 및 고용성장에 필수적인 생산요소로 간주하고, 인적 자원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강조한다. 이 관점은 또한 결과의 평등 대신 기회(내지 생애기회)의 평등을 강조하고, 지식기반사회의 새로운 위험들, 즉 저숙련, 저지식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 즉 ‘지속적 고용능력’의 제고에 역점을 둔다. 그런 의미에서 급여와 권리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복지국가 지향과는 차이가 난다. 이 모형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관점에서 ‘생산적’ 내지 ‘사회투자적’ 복지 및 교육에 깊은 관심을 피력하며, 특히 ‘예방적 투자(preventive investment)’에 정책적 역점을 둔다. 이 정책접근은 특히 교육정책이 체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문제에 큰 관심을 피력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교육체제와 교육과정의 투자적 효용성에 깊은 정책적 관심을 기울이며, 적정 수준의 시장원리의 도입에 대해서도 개방적 입장을 보인다. 사회투자국가론의 또 하나의 특색은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래의 시민’인 아동에 대한 투자다. 예방적 투자의 의미도 함께 지니는데, 영·유아의 공공보육 및 교육의 강화 및 질적 제고는 유아단계 교육투자의 탁월한 효과성, 출발선에서의 교육평등의 실현, 저출산 완화 및 여성근로 촉진 등 다양한 맥락에서 투자의 효과성이 크게 인정된다. 이밖에 고등교육 및 평생교육, 그리고 노동자의 지속적 고용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교육훈련 등에 각별한 정책적 관심을 쏟는다.

한국교육의 자화상과 새 교육개혁의 필요성
그 동안 한국교육은 학교 환경 등 교육여건의 개선과 교육정보화의 진척, 그리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의 제고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외형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으나, 아직도 어둡고 우려되는 측면이 너무 많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와 교육계에서 인성교육과 창의성교육의 필요성과 그 중요성은 늘 강조돼 왔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修辭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5·31 교육개혁 이후 역대 정권은 미시적 차원의 수많은 교육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의 대표적인 쟁점인 대학입시정책, 고교평준화정책, 사교육비경감대책, 그리고 인적자원개발정책,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학벌주의와 승자독식구조과 같은 우리 사회의 사회구조적 요인과 사회의식, 그리고 교육자치의 매개체가 돼야 할 중간조직의 부재 등 교육외적 요인들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정부가 장기적 관점의 거시적 틀과 일관된 정책기조를 마련하지 못한 채, 단절적 정책설계와 집행, 그리고 미시적 차원의 개입에 급급했던 점도 위의 제반 정책들이 성공하지 못한 주요 원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제 이들 다양한 교육정책들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고 보다 큰 틀에서 ‘새 판’을 짤 때가 됐다.

‘미래한국교육위원회(가칭)’의 역할과 의미
필자가 두 번에 걸쳐 3년 가까이 교육부 수장을 맡으면서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교육영역에 과도하게 침투된 이념과잉이었다. 우리의 경우, 주요한 교육쟁점이 부상하면, 여야 정당은 물론, 시민사회, 언론계, 교육계 그리고 일반 국민들까지 양극으로 갈라져 치열한 이념논쟁을 벌이는 바람에, 그 소용돌이 속에서 국리민복에 기여해야 할 중요 정책안들이 교착되거나 좌초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면, 한국교육이 보다 장기적, 거시적 관점에서 정권의 수명을 넘어 주요한 교육정책에 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 문제해결을 위한 하나의 방도로 교육문제에 대한 대타협기구로 ‘미래한국교육위원회’(가칭)의 창설을 제안해왔다. 이는 정치·사회지도자, 교육전문가, 언론계, 학부모 대표들이 두루 참여하는 초당파적 협의체로, 여기에서 미래한국교육의 비전과 거시적 정책방향, 그리고 중요한 정책쟁점에 대해 장기간 집중적인 토의와 이해관계의 조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자는 구상이다. 이 협력적 거버넌스 체제가 정권의 수명을 넘어 존속하며 제 구실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임기를 9년으로 하고, 3년 임기의 위원을 3분의 1씩(중임 가능) 바꿔나가는 게 어떨까 한다. 이 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한 다른 중요한 조건은, 대통령의 결단과 주요 정당 간의 초당적 합의다. 또한 이 협의체가 제 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교육의 ‘정치화’, ‘이념화’를 자제하고, 상생의 정신으로 교육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전제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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