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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분석으로 새로운 학문 개척 … “사람이 나쁜 게 아니야, 행동이 나쁜 거지”
행동분석으로 새로운 학문 개척 … “사람이 나쁜 게 아니야, 행동이 나쁜 거지”
  •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
  • 승인 2016.11.0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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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40년을 말하다_ 15. 상담서비스: 행동수정

 

부적응 행동의 변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접근 중 行動修正 기법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다. 행동수정이론은 학습심리학 분야의 실험연구를 근거로 발전한 행동분석학의 응용분야다. 기본 전제는 적응 행동이든 부적응 행동이든 인간의 행동은 학습된다는 것이다.
행동수정이론은 학습이론의 연구가 진척되면서 거기서 밝혀진 원리들이 부적응 행동의 변화에 응용 가능하다는 것이 점쳐지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행동수정이론이 부적응 행동 ‘치료’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은 앞글에서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념 수준에서 많은 심리치료자들이 부적응 행동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질병모형을 선호하는 데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었고, 둘째는 정신치료의 효과 평가에서 전통적 질병모형에 근거를 둔 심리치료가 부적응 행동 치료에 바라는 만큼의 효과가 없다는 의견이 퍼지기 시작했다. 또한 실제적 측면에서 학습심리학의 학습 원리 연구가 실험실에만 한정되지 않고 점점 정신건강 클리닉과 병원 등에서도 활발해지고 학습 원리의 응용이 성공하게 되면서 심리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행동수정이론이 부적응 행동의 변화전략에 응용되기 시작한 뚜렷한 계기는 1965년에 레너드 얼맨(L.Ullman)과 레너드 크레이스너(L.Krasner)가 『행동수정의 사례연구』라는 책을 출간했을 때가 아닌가 한다. 이 책에는 심각한 이상행동, 신경증적 행동, 틱이나 말더듬 등 비정상적 행동, 아동의 부적응 해동, 그리고 정신지체 등에 관한 치료연구 50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은 당시 관련 분야에 종사하던 심리치료자들에게 필수적 지침서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의 행동수정 연구
한국에 행동수정이론이 소개된 것은 1971년의 일로 알려져 있다. 한국행동과학연구소(KIRBS)에 상담실이 설치돼 활동을 시작할 때 우리가 행동 오리엔테이션을 채택했다는 것은 앞글에서도 설명한대로다.
나는 미국의 한 아동병원에서 심리인턴을 하다가 학위를 끝낼 무렵인 1965년에 정식 근무를 시작했다. 이 시기는 행동수정 기법이 조금씩 임상현장에서 응용연구가 시작되던 때였다. 마침 켄사스대의 인간발달학과 베어 교수가 내가 근무하던 이 병원에서 행동수정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나는 자연스럽게 말려들었고, 점점 프로젝트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아동병원에서 몇 년 일하는 동안 베어 교수가 소속된 학과에서 1968년에 응용행동분석 전문지인 <Journal of Applied Behavior Analysis>를 상재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 학술지는 응용행동분석 계통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지로 자리를 굳혔는데, 지금도 계속 출간되고 있다. 켄사스대는 응용행동분석학의 메카로 인정받고 있다.
1971년 KIRBS의 상담연구팀은 행동분석이론의 현장 적용 타당성을 검토하고 행동수정의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현장 연구는 부적응 행동의 수정에 대한 전통적 접근과 상당히 달랐고 응용행동분석 연구의 원칙을 충실히 따랐다는 점에서 하나의 典型的 연구라 할 수 있다. 그 특징은 이렇다.

첫째, 부적응을 가설적 심리적 構因 또는 특성인 불안, 갈등, 자아개념 등 성격으로 개념화하지 않고,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구체적 행동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 행동자체를 변화·수정의 표적으로 한다.
둘째, 부적응 행동을 개인과 환경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개념화 한다. 수정의 표적인 행동을 사람 ‘안’의 무엇이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행동과 그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환경 안의 자극과의 기능적 관계로 이해한다.
셋째,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선행자극과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주어지는 결과자극(즉 보상이나 벌)을 계획적으로 재배열함으로써 문제행동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수정전략을 따른다. 즉 선행자극(A)에 대한 반응(B: 행동), 그 뒤에 주어지는 결과자극(C)의 관계를 분명히 한다.
넷째, 데이터베이스 접근을 철저히 따른다. 표적행동의 변화 추이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그것을 시각적 그래프로 표시해 행동 변화의 방향, 강도, 속도를 모니터하면서 수정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네 가지 원칙에 따라 우리 팀의 박성수와 오성심이 진행한 한국 최초의 행동수정 현장 연구를 간단히 요약한다.
실험은 초등학교 6개 학급에서 부적응 행동이 심한 학생 18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학교에서의 네 가지 부적응 행동을 수정했다. 60명 전후의 다인수 학급에서 교사는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면서 선정된 대상 아동들의 행동에 주목하되 적응행동에는 보상을, 부적응 행동에는 가벼운 책망이나 방관(모르는 척 무시하기) 등 사회적 반응을 적절히 했다. 투입된 실험 操作(operation)을 중단해도 변화된 행동이 지속되는지를 점검했다. 이 실험의 몇 가지만 살펴보자.

소란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하는 행동이 12%에서 58%로 증가했고, 위축·고립된 행동이 평균 49%에서 7%로 감소했다. 수업 중 공격적 행동이 20%에서 7%로 줄어들었으며, 수업에 집중하는 행동이 19%에서 72%로 늘어났다(여기서 90%는 밀착 관찰자가 체크한 행동의 수다). 행동수정 비전문가인 평교사가 3일 간의 행동수정 훈련을 받고, 상담실이이나 클리닉이 아닌 자연 상태인 다인수 학급에서 정상 수업을 하면서 19일 간의 행동수정 과정으로 학생들의 행동을 위에 보인 것처럼 변화시켰다.
실험이 끝난 뒤 행동수정 操作을 중단했을 때의 아동 행동을 관찰한 결과, 실험기간의 행동변화가 그대로 유지된 경우는 행동이 고착·안정화 됐다는 증거였다. 또 실험 이전의 행동으로 되돌아간 경우도 있었는데, 그것은 교사의 보상과 벌이 효험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시범연구에서 다양한 연구로
이 연구를 할 때 우리는 ‘과연 이론이 예측하는 대로 행동 수정이 가능할까’를 놓고 조마조마해했다. 그 결과가 극적이어서 우리는 숙연해졌다. 우리가 변화시키고자 한 것은 행동이지 자아개념, 불안, 갈등 등 성격요인이 아니었다. 부적응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을 신중하게 계획적으로 작용하게 하여 적응 행동으로 변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우리 상담팀은 시범 연구에서 멈추지 않았다. 정신지체아와 자폐아 재활기관인 국립각심학원(현 국립재활원)과 공동연구를 협약해 다양한 행동수정 연구로 나아갔다. 이 연구는 당시 재단법인 기독교아동복리회(1979년 한국어린이재단으로 명칭 변경)의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 아동에게 여러 가지 행동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의 진행에 행동수정 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각심학원 요원들과 부모, 보조원을 훈련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시했다. 이 프로그램 운영에는 당시 권영희 팀장이 크게 공헌했다. 각심학원 원생의 교육훈련 프로그램 전체 계획을 권 선생과 함께 수립해 진행했다. 당시의 국립각심학원 김기태 원장은 행동수정 프로그램의 효과평가회에서 “행동수정이면 다 된다”라고 간단하지만 감동적인 말을 하면서 직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KIRBS의 상담팀은 개인 상담에서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담의 보조 자료로 이용됐을 뿐이다. 내담자와의 실제 면대면 상담에서도 성격 특성 등에 대한 언급은 최소화하고 그의 실제 행동에 주목하면서 문제의 행동이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에 관심을 뒀다.
행동에 관심을 두면서 연구소 내에서의 일상 대화에서도 행동을 강조하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이 나쁜 게 아니냐, 행동이 나쁜 거야’라는 식이었다. 이와 같은 언어행동은 상담 클리닉이나 어떤 시설, 학교에만 한정될 필요가 없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가정에서도 예컨대 부모가 자녀에게 ‘네가 나쁜 것이 아니라 너의 행동이 나쁘다’라는 말을 한다면, 가정의 분위기가 밝아질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행동수정 기법의 이론적 실증성, 현장 실현 가능성, 기법의 효과성과 단순성을 모토로 행동수정이 보급되길 희망했다.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행동수정 워크숍을 실시했다. 학교 카운슬러와 교사연수회 등에서 행동수정 강의를 했으며, 각종 부모모임에서 자녀 양육의 행동 오리엔테이션을 강조하곤 했다. 1979년 우리는 행동수정연구회를 조직했다. 뉴스레터를 제작해 학교, 아동복지기관, 특수학교 등에 배포하고 현장 연구를 독려했다. 연구회가 발족된 지 6개월 만에 회원이 1천명을 넘어섰다. 행동수정의 원리, 기법, 구체적인 절차, 그리고 연구방법에 관한 세미나 등을 주기적으로 실시했다.
행동수정이론은 한국행동과학연구소가 최초로 한국에 씨를 뿌렸다. 앞에 든 초등학교 학생들의 학교에서의 일상적인 부적응 행동을 그들이 생활하는 학교에서 수정했고, 정신지체아에게 여러 가지 행동을 학습시켰다. 비정상적 행동의 치료에서 시작한 행동수정의 방법과 절차는 정상 아동의 생활지도, 학습행동 교정, 사회 적응행동 훈련에 효과적으로 응용되고 있다. 기업체의 인사관리, 조직 행동의 효율성 연구, 특수기능 훈련 등에도 유익하게 활용되고 그 효과를 보이고 있다.

행동분석학은 성장하고 발전하는 영역이다. 그 기법은 언어적 기능이 부족한 아동의 상담에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정신의학에도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인지적 행동치료, 최근에 등장한 행동활성화치료법도 그 뿌리를 행동분석학에 두고 있다. 또한 행동분석학은 국제 학계의 무대에 등장한 지도 오래됐다. 1974년에 국제행동분석학회가 창립돼 활동하고 있고, 일본에서는 1979년에 연구회가 조직돼 게이오대에서 제1차 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에서는 1996년에 한국행동분석학회가 창립돼 행동분석 학회지 발간과 주기적으로 학회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국제행동분석전문가 인가위원회의 각급 자격증을 획득한 사람이 50여명 되며, 이들이 유수한 대학에서 활발한 연구와 교육 및 치료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행동분석학의 발전에는 1975년부터 KIRBS에서 행동수정 연구를 이끈 홍준표 박사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해 1991년에 한국행동수정연구소를 설립해 치료서비스를 활발히 하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국제 행동분석 전문가 자격을 제1호로 획득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홍 박사는 나와 함께 한국행동분석학회 설립이후 줄곧 학술적 발전과 보급을 위해 애써왔다. 행동수정이론의 발전에 초기부터 공헌한 이규성 박사는 영남대에서 학위를 한 뒤 부산의 신라대에 행동수정 베이스캠프를 설치해 계몽 활동을 했다.
행동수정 기법은 간단하지만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 기법을 뒷받침하는 엄밀한 연구가 수십년 동안 진행됐다. 그 전문지식을 현실적 전략으로 번역하기까지는 적잖은 노하우의 축적이 있었다.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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