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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반성’‘타자이해’ 주장한 마루야마 , 일본에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자기반성’‘타자이해’ 주장한 마루야마 , 일본에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 김석근 아산정책연구원·정치사상
  • 승인 2016.11.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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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마사오 歿後 20주년기념 국제심포지엄 참관기
▲ 마루야마 마사오 몰후 2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포스터와 마루야마 마사오.

지난 10월 14일, 일본 도쿄여자대학에서 ‘새로운 丸山眞男像의 발견: 그 세계적 규모의 시야(視圈)와 교류 속에서’라는 주제로 ‘마루야마 마사오 몰후 20주년기념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필자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소장 도서와 관련 자료들을 모아놓은 ‘마루야마마사오문고(丸山眞男文庫)]의 초청을 받아 발표자로 참석할 수 있었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세상을 떠났을 때(1996년 8월 15일), 많은 사람들은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이후 일본의 국가 진로, 구체적으로 역사수정주의, 집단적 자위권, 헌법개헌 논의 등은 다시금 그를 살아나게 했다. ‘일본 역사의 어두운 골짜기’ 내지 1930~40년대 일본의 ‘초국가주의’를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사적으로 ‘전환기’에 해당하는 현시점에 개최된 국제심포지엄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먼저 히라이시 나오아키(平石直昭) 도쿄대 명예교수(마루야마문고 고문)의 강연(「마루야마 마사오 문고의 의의와 가능성에 대하여」)이 있은 다음, 발표가 이어졌다. 필자 외에 볼프강 자이페르트(Wolfgang Seifert) 하이델베르크대 명예교수, 쑨거(孫歌)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앤드류 바세이(Andrew E. Barshay) UC 버클리대 교수가 발표자로 참여했다. 모든 발표와 토론은 일본어로 이뤄졌다.

기조 강연에서 히라이시 교수는 마루야마 문고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설립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 그간의 경위를 들려주었다. 이어 소장 도서, 귀중 자료, 草稿 등의 조사 및 정리 방식과 공개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일본 문부성의 지원을 받아 ‘마루야마 마사오 문고 디 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했으며, 개인 컴퓨터에서도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는 것도 덧붙였다. 그는 마루야마문고가 사상사학자로서의 마루야마, 전후 민주주의의 이론적 지주로서의 마루야마, 그리고 그를 포함한 현대 일본의 지식인 운동과 교류 연구에 필요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줄 것이라 전망했다. 
주최측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 본 문고에는 마루야마의 손때가 듬뿍 묻은 자료들이 잘 정리돼 있었다. 마루야마가 책에 밑줄을 긋거나 표지와 함께 접어놓은 것, 그리고 여백에 써넣은 메모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필자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문명론의 개략』에 작은 글씨로 빽빽이 써넣은 메모를 보면서, 그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와 같이 비교, 연구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이어진 발표에서 자이페르트 교수는 「마루야마 마사오와 독일의 사상·학문―전전, 전중, 그리고 전후」에 주목했다. 그는 마루야마가 헤겔과 마르크스, 칼 만하임, 막스 베버, 칼 슈미트, 프란츠 노이만 등의 학문과 사상에서 어떤 점들을 받아들였으며, 또 어떤 시사를 받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자이페르트 교수는 온화한 성품에 능숙한 일본어가 돋보이는 학자로 독일에서의 일본사상 연구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마루야마 저작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일 사상가를 시대별로 나열하고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다. 

쑨거 교수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삼민주의’관에 초점을 맞추어 발표했다. 1946년 마루야마가 한 「쑨원(孫文)의 정치교육」이라는 강연을 분석 자료로 삼았다. 쑨원에 대해서 마루야마가 어떻게 ‘내면적 이해’를 했는지,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었는지 지적한 후,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하지만 그 간극은 시대와 상황의 차이로 환원돼버리는 듯 했으며, 전반적으로 삼민주의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길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덧붙이자면 쑨거 교수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다케우찌 요시미라는 물음』, 『사상이 살아가는 법』, 그리고 『중국의 체온』등의 저작이 번역, 소개돼 있다. 강연 등을 위해 한국을 몇 차례 방문했으며, 향후 일정도 잡혀 있다고 했다. 일본을 잘 알고, 한국에도 관심이 많은, 대표적인 중국의 지식인인 셈이다.   

  
바세이 교수는 「프로테스탄트적 상상력: 마루야마 마사오, 로버트 벨라, 그리고 일본사상 연구에 관한 각서」를 발표했다. 마루야마가 난바라 시게루(南原繁), 우찌무라 칸조(內村鑑三) 등 無敎會派 영향을 받았다는 것, 미국의 ‘시민종교’를 분석한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 1927~2013)에 대한 비판과 교류, 그리고 두 사람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논의했다. ‘지성사’라는 관점에서 흥미로운 발표였다. 공동연구프로젝트 「20세기 지식인의 사상과 학문―마루야마 마사오 문고를 소재로 삼아」의 공동연구원이기도 한 그는 마루야마와 미국 지식인들의 지적인 교류에 관심을 가져 왔다.
필자의 발표 제목은 「한국에서 마루야마 마사오 사상·학문을 받아들이는 방식(韓國における丸山眞男の思想·學問の受けとめられ方)」이었다. 스스로 ‘정한’ 제목이라기보다 필자에게 ‘주어진’ 제목인 셈이다. 기조 강연을 한 히라이시 교수가 제안해준 것으로, 많은 일본인 연구자, 학자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히라이시 교수는 필자가 대학원 시절 짧은 유학 중에 만난 은사이기도 하다. 『日本書紀』를 읽어가는 수업에 일본인 학생이 오지 않아 단 둘이서 한 학기를 보냈다. 그런 사연 덕분에 각별한 사이가 됐다. 그는 내년에 출간될 한국어번역본 『丸山眞男講義錄』(6·7권)에 ‘한국어판 서문’을 써주기로 했다.

필자는 이번 발표에서 일본에 유학한 제 1세대, 즉 마루야마가 재직하던 도쿄대 법학부에 유학한 박충석, 김영작, 최상용 교수에 앞서 마루야마를 ‘발견’한 학자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홍이섭(1914∼1974), 이용희(1917∼1997) 교수가 그들이다. 학문적으로 실학파, 특히 다산 정약용 연구는 『일본정치사상사연구』, 국제정치 속에서의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은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과 일맥상통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용희 교수는 몇 차례 마루야마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들은 마루야마의 ‘동시대인’이었다.
이어 마루야마 저작의 번역과 소개, 그리고 학술회의 등에 대해 설명했다. 마루야마 탄생 100주년인 2014년에 ‘마루야마 마사오와 동아시아 사상: 근대성, 민주주의, 그리고 유교’를 주제로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모여 진지한 논의를 했다. “태어난 지 100년이 됐다는 이유로 일본인 학자를 기념하는 학술회의가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필자의 발표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역시 마루야마에 대한 비판 부분이었다. ①사상사 방법론에 대한 비판, 주자학적 사유의 해체와 근대적 사유의 형성 부분. ②‘근대주의자’ 내지 ‘국민주의’자라는 비판. ③‘서구중심주의(Eurocentrism)’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일본적인’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 ④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해설에 대한 비판, ⑤이른바 ‘古層’론에 대한 비판 등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일본에서는 전혀 평가받지 못하는 책이 한국어로 번역, 소개돼 크게 주목받는 현상에 대해서 그들은 아주 신기해했다. 상호이해를 위해서는 상대방도 납득할 만한 설득력 있는 비판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얼마나 필요한지 새삼 절감할 수 있었다.

심포지엄에는 도쿄대의 카루베 타다시 교수 등 저명한 일본인 학자들, 마루야마 저작의 프랑스어 번역자 자크 졸리(Jacques Joly) 교수, 중국어 번역자 오우 지엔잉(區建英) 교수 등, 관심을 갖는 연구자는 물론 일반인 마루야마 팬들도 많이 참석했다. 지정 토론과 답변에 이어 청중석에서의 질문과 답변이 활발하게 이어졌다.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필자는 ‘일본인의 자기비판’으로서의 마루야마 사상이 현재 일본에서 어떤 의미와 적실성을 지니고 있는지, 또 어떻게 비판적으로 계승되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아가 그가 주장한 자기반성과 타자이해를 통해서 ‘嫌韓’과 ‘反日’을 넘어 더불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덧붙였다.

 

 

김석근 아산정책연구원·정치사상  
필자는 연세대를 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한국정치사상연구실장을 지냈다. 지은 책에는 『한국정치사상사』(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에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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