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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性은 허구·환상 제조기일지도…
理性은 허구·환상 제조기일지도…
  • 교수신문
  • 승인 2016.11.0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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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정의한 뇌’로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

 

인간은 이 지구 위에서 인간이 가장 현명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산다. 언어를 가지고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이성을
가진 인간만이 긴 역사의 진화과정을 통한 최종 승리자이고
완성자인 것처럼 생각한다.

이 글은 한자경 이화여대 교수(철학과)의 신간 『심층 마음의 연구: 자아와 세계의 근원으로서의 아뢰야식』(서광사, 2016.10)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반연심 내지 대상의식인 제6의식과 동일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의 뇌과학은 “마음은 뇌로 인해 생겨난다”고 주장하며, 뇌가 진화해온 과정이 곧 마음이 생겨나는 과정을 보여 준다고 논한다.

단세포생물에서부터 십수억년간의 진화과정을 거쳐 발달한 뇌간과 소뇌를 갖춘 파충류의 뇌는 본능적인 요소, 즉 호흡이나 심장박동, 체온조절 등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을 관장하는 뇌다. 파충류는 주변 환경의 자극에 즉각적인 반응을 하거나 반사운동만을 하면서 사는 것으로 여겨지며, 아무런 감정과 느낌이 없고 따라서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 후 다시 일이억 년의 진화과정을 거쳐 형성된 해마를 포함한 변연계 뇌를 갖춘 포유류는 기억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뇌 덕분에 기억과 기억에 따른 감정을 갖는다고 간주된다. 그리고 다시 일이억년 진화를 거쳐 형성된 대뇌피질의 뇌를 가진 인간은 대뇌피질의 복잡한 신경망체계에 기반을 둔 이성적 사유 및 자기의식을 갖는다고 여겨진다. 마음 내지 의식은 신경세포의 수억년 진화과정을 통해 그 이전 단계에는 없던 것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창발(emergence)현상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현대의 뇌과학적 사고는 인간의 본질을 이성으로 간주하는, 서양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지는 인간이해 방식과 연속선상에 있다. 이는 모든 존재하는 사물을 근사류로 놓고 생명이라는 종차를 더해 ‘생명을 가진 사물’로 생물을 정의하고, 다시 생물을 근사류로 놓고 운동성이라는 종차를 더해 ‘운동성을 가진 생물’로 동물을 정의하며, 다시 동물을 근사류로 놓고 이성이라는 종차를 더해 ‘이성을 가진 동물’로 인간을 정의한다.
종차는 각 종의 본질로 간주된다. 서양 근세 데카르트는 이성을 명석판명한 의식(사유)으로 규정하며, 사유하는 인간만이 정신적 실체이고 동물을 포함한 그 외의 모든 존재는 물리적 기계라고 봤다.
그러다가 현대에 들어오면서 동물 중에서도 변연계의 뇌를 가진 포유류는 기억능력이 있고, 따라서 감정이 있는 존재라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

뇌과학은 전체 뇌의 복잡한 신경세포 연결망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작용을 의식 내지 마음이라고 본다. 인간의 마음을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사유를 담당하는 뇌신경세포의 활성화의 산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한 현재적 반응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와 미래의 지평을 두루 기억하고 예상하는 분별적 사유능력인 이성에 있다.
인간은 이 지구 위에서 인간이 가장 현명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며 산다. 언어를 가지고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이성을 가진 인간만이 긴 역사의 진화과정을 통한 최종 승리자이고 완성자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우주와 자연에 대해, 인간과 존재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이 모두가 우리의 대뇌피질에서 나온 개념이 만들어 놓은 허구가 아닐까?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상실한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의 뇌는 환상을 만드는 뇌다. 그리고 우리는 그 환상만을 실재로 인식하고, 환상의 관념만을 지각할 뿐이다. 관념화 되지 않은 것,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을 우리는 지각하지 못한다.
인간의 이성이 존재질서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허구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자연과 조화하지 못한다는 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인간이 지구 위 다른 생명체와 공존하지 못한다는 것. 동물을 학대하고 식물 생태를 파괴한다는 것, 수억년에 걸쳐 축적된 자원을 일시에 뽑아 쓰고 지구 표면을 숨 못쉬게 콘크리트로 덮어 버리며 핵무기와 핵발전소를 만들어 폭탄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사실은 진화가 아니라 퇴화의 산물이라는 것,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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