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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기업연구소와 차별성 없어 … “연구지원, 연구자주도형 전환해야”
민간·기업연구소와 차별성 없어 … “연구지원, 연구자주도형 전환해야”
  • 글·사진 최성욱 기자
  • 승인 2016.10.3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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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 정책연구세미나 “대학연구 이대로는 안 된다”

미래부에 ‘(가칭)대학연구재정지원사업’ 신설 제안도

국가 과학기술 석학 1천여 명을 회원으로 보유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이명철, 한림원)이 연구실적·결과평가 위주의 대학연구 풍토에 대대적인 혁신을 주문하고 나섰다. 학문분야별 기초연구에 주력해야 할 대학이 민간·기업·출연연 등 여타 연구소와 차별성 없이 목적성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한림원 정책연구소(소장 김학수)는 26일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에서 정책연구 세미나 ‘대학연구 이대로는 안 된다’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김학수 소장은 “교육부가 실적 위주의 평가를 하다보니 대학이 생산하는 논문, 개발, 특허 등 모든 연구가 실적내는 것에 집중되고 있다”며 “대부분이 ‘종이특허’가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김 소장은 또 “기초연구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대학연구는 연구자 스스로 기획해서 오랜 시간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림원에서 정책제안을 준비하고 있는 이른바 ‘연구자 주도형 연구’를 빗댄 말이다.

한림원 “연구비는 충분하다, 다만…”

한림원 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정부의 총 연구개발(R&D) 예산은 18.9조원. 이 가운데 ‘연구자 주도형’ 연구비는 1.5조원(7.9%)에 그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학에 지원하는 연구비(4.3조원)로 한정하면 연구자 주도형은 5천억원(11.6%)에 불과하다. 대학은 창의·모험연구의 보고가 돼야 하는데 여기에 쓰는 예산은 약 10% 수준이고, 단기성과를 도출해내는 ‘목적연구’에 90% 가까이 몰려 있는 게 대학연구의 현실이다.

한림원 측은 “국가 R&D 투자 비중을 살펴보면 GDP 대비 4.3%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면서도 “대학의 연구비(4.3조원)는 총 예산의 23%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90% 가까이 ‘목적연구’에 쏠려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 연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하려면 ‘공공·민간 연구소’와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단기 성과계획(논문실적 등)과 사회에 미칠 파급력 등을 상세히 기술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기초·창의·모험적 연구를 수행해야 할 대학 연구자들은 민간·기업·출연연 소속 연구자들과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한림원 측의 분석이다.

한림원 정책연구소는 ‘2대8’ 비율로 교육 분야에 쏠린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일정정도 연구분야로 조정(5대5)하고, 예산 비중 조정이 안 되면 미래창조과학부에 ‘(가칭)대학연구재정지원사업’을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또, 대학연구를 모두 ‘연구자 주도형’으로 바꾸는 것을 전제로, 정부의 정책에 부합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연구에 한해 현행 ‘정부 주도형’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해 가자는 방안도 내놨다.

“민간·기업연구비를 대학으로? 현실가능한 대안 필요”

이처럼 한림원이 주장하는 대학연구 개선의 골자는 ‘연구자 주도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을 배분하는 이른바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한림원이 제안한 연구자 주도형 전환은 국가연구비 전체 예산의 대부분을 대학연구비로 돌렸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들은 보다 현실가능한 대안을 내놔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평가를 쏟아냈다.

세미나에 참석한 서울대의 이 아무개 교수는 “민간의 연구비를 대학으로 옮기면 해당 민간 연구소는 연구비를 뺏기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인가?”라며 의문을 표했다. 이 교수는 “현행 정부주도형 연구를 서서히 연구자 주도형으로 전환하면서 ‘정부-연구자 주도형’을 적절히 조화시켜 나가는 방안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하대의 한 교수도 “모든 대학교수들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특히 연구자 주도형 연구를 수행할 자격을 갖춘 연구자에 한해 지원하는 게 맞다”라며 신중론을 폈다.

한림원은 이번 세미나를 시작으로 지방 순회세미나를 두 차례 더 열고, 대학교수 설문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전국 대학의 다양한 의견을 취합한 대학연구 분석보고서 「대학의 연구개발 혁신역량 제고 방안」은 내년 2월께 미래창조과학부에 제출될 예정이다. 김학수 소장은 “BK21, WCU사업 등 그간 정부가 주도해온 대학연구지원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제는 대학이 정부 간섭(평가)에서 벗어나 연구환경을 자율을 바탕으로, 혁신적으로 바꾸어나갈 시점에 왔다”라고 강조했다.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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