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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기획이 아닌 다양한 예외적 삶에 주목한 이유
변혁적 기획이 아닌 다양한 예외적 삶에 주목한 이유
  • 교수신문
  • 승인 2016.10.2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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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종말론 사무소: 인간의 운명과 정치적인 것의 자리』 김항 지음|문학과지성사|323쪽 |16,000원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칼 슈미트, 발터 벤야민, 마르틴 하이데거,
위르겐 하버마스, 미셸 푸코, 그리고 조르조 아감벤의 사유를
이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종말론 사무소(eschatological bureau)란 조르조 아감벤이 독일의 역사학자 트뢸치로부터 인용한 용어다. 이미 아감벤은 2001년도의 한 강연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 바 있고(이 강연은 후에 『내전(stasis)』이란 제목으로 호모 사케르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출간됐다), 『왕국과 영광』(새물결, 2016) 도입부 언저리에서 19세기 이래 유럽 사상계에서 일실돼버린 역사철학의 이미지로 소환한 바 있다. 이 이미지에 따르면 종말론 사무소란 역사철학의 작업을 구체적 종말 혹은 메시아의 구원이란 전망 속에서 전개하는 곳이다.
종말론 사무소가 역사철학을 고유의 작업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 사상계에서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헤겔로 대표되는 19세기 독일 관념론이었다. 셸링 및 청년 헤겔좌파들의 헤겔 비판이 주로 헤겔의 기독교 해석을 둘러싸고 전개됐음을 감안한다면, 19세기 독일의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종말론 사무소는 기독교 신학과 철학 사이의 긴장 속에서 개소됐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혁명과 포스트 헤겔철학의 자장
자세한 논의는 생략할 수밖에 없지만 포스트 헤겔철학의 쟁점은 신과 신의 자기계시 사이의 관계를 이념과 이념의 자기실현 사이의 관계로 치환해 논의하는 가운데 성립했음을 확인해두자. 그것은 프랑스혁명에 열광한 젊은 철학도들이 이제 세계 존립의 근거 혹은 목적, 즉 절대이념은 신이나 초월성이 아니라 자기의식이나 주변세계와 관계해야만 실현될 수 있음을 깨달은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이들에게 신이 인간의 육체를 빌려 실존한 예수는 절대이념이 지상의 실존을 통해 자기를 실현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것이 이념의 운동이냐 실존의 운동이냐에 따라 입장은 분기하지만, 아무튼 헤겔 이후의 독일 관념론은 프랑스 혁명으로 실현된 역사적 이념을 예수를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 신학의 패러다임과 중첩시키며 치열한 논의를 전개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말론 사무소는 우선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학에서 비롯된 이미지임과 동시에,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근대 역사철학 속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종말론 사무소는 지상의 세계가 어떻게든 끝나야 한다는 의식과 그 끝이 미리 약속된 교리적 서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실존하는 역사세계의 사건이어야 한다는 의식을 내장한다. 포스트 헤겔철학의 고투를 현재적으로 전유해 바꿔 말해보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삶의 변혁을 관념화하는 기획이 아니라, 도처에서 예측불가능하게 솟아나는 현재에 대한 비판과 거부의 몸짓야말로 종말론 사무소가 숙고해야 할 안건인 셈이다.

이 책의 표제인 종말론 사무소는 대략 위와 같은 계보 속에서 도출돼 현재적으로 해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 요절한 소설가 김소진을 소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1980년대 운동권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절대이념이 현실로 내려오기는커녕 현실을 자기실현의 운동 속으로 빨아들이는 과정을 포착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세상을 규범화하려는 욕망의 발로였다. 그 안에서는 ‘민주시민’이나 ‘노동자’나 ‘민중’으로 대변되는 이념적 주체성 외에는 그 어떤 실존형식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시위현장에서 투사들로부터 배척된 ‘밥풀때기’나 국가의 역사에서 추방된 ‘개흘레꾼’ 아버지를 소설로 형상화한다. 이를 통해 김소진은 민주화란 절대이념이 삶을 규범화하고 획일화해 녹여버리는 것을 거부했다. 밥풀때기나 개흘레꾼은 민주시민이나 민중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밥풀때기와 개흘레꾼으로, 즉 절대이념이 결코 흡수하지 못하는 잔여임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나 해방은 아니다. 하지만 절대이념의 자기실현이 남루한 삶과 조우하기는커녕, 그것을 집어삼켜 없느니만 못한 취급을 하는 것에 대한 이의제기였다. 즉 절대이념이 땅에 내려오지 않는 한, 다시 말해 민주화가 남루한 삶을 현실로서 조우하지 않는 한, 구원이나 해방은 또 다른 지배에 지나지 않음을 김소진은 감지해 형상화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지만 ‘한국’의 1980~90년대가 직접 논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칼 슈미트, 발터 벤야민, 마르틴 하이데거, 위르겐 하버마스, 미셸 푸코, 그리고 조르조 아감벤의 사유를 이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20세기의 정치적인 사유가 상호응답하면서 어떤 쟁점들을 제기했으며, 그 쟁점들이 어떻게 위에서 말한 종말론 사무소의 안건으로 재전유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 주된 주제의식이었던 셈이다. 그것은 1980~90년대의 한국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건들이 프랑스 혁명과 포스트 헤겔철학의 자장 속에서야말로 역사철학적 해석을 획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됐으며, 동시에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이 땅의 복마전 같은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념의 자기실현 속으로 삶의 다양한 형태가 흡수돼 녹아내려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에서 비롯됐다. 다시 말해 현재의 상태를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드는 것은 잘 짜인 변혁적 기획이 아니라 다양한 예외적 삶의 형태들을 부단히 쌓아올리는 일로서만 가능하다는 신념이 이 책의 모티프라 할 수 있다.

학술논문 엮은 책이라  진한 아쉬움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 책이 학술논문으로 발표된 글을 손질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대학을 위시한 다양한 제도와 관계하는 연구자로서 논문실적에 무심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이 무언가 대단히 잘못됐음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조건 속에서 실적과 실존 사이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산물이다. 조금 더 시적 향기를 머금은 언어로 깊이 있는 글쓰기를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까닭이다. 물론 그런 능력이 없음은 십분 자각하고는 있지만 시간과 공을 들여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혀 본다. 태어남과 언어는 인간의 운명일지 모르지만 사회적 조건은 운명이 아니다. 사회적 조건을 운명으로 삼지 않는 한에서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연구자들이 처한 지금의 상황이 운명처럼 수많은 실존을 옥죄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두서없는 글을 마무리한다.

김항 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
필자는 도쿄대에서 표상문화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말하는 입과 먹는 입』, 『제국일본의 사상』,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 변동』(공저)이, 옮긴 책으로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근대초극론』, 『예외상태』, 『정치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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