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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 사회통합 위해선 '통일 연습'이 필요하다
통일 후 사회통합 위해선 '통일 연습'이 필요하다
  • 김종군 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HK교수·국문학
  • 승인 2016.10.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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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공동기획 ‘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_ 4.사람의 통일을 위한 탈북민 정책

리 사회는 ‘통일’이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발생하는 수많은 폐해를 해소하는 방안이라는 인식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통일담론들이 제기됐고, 때로는 이것이 분단체제 속에서 심각한 비판을 불러온 경우도 많았다. 이런 중에 사람을 중심에 둔 인문학적인 통일담론이 제기됐다. 통일인문학은 기존의 통일담론과는 결을 달리한다. 사람의 통일·과정으로서의 통일·통일 이후의 사회 통합까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담론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연구 방법론으로 소통·치유·통합을 내세웠다. 분단체제 속에서 서로 달라진 생각이나 가치관을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분단과 전쟁의 상처에서 비롯된 분단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떨어져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기 위해 생활문화의 통합을 연구 방법론으로 제시한 것이다. 소통·치유·통합은 특수한 학문분야에 한정해 적용되는 방법이 아니며, 소통→치유→통합이라는 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치는 과정도 아니다. 학문 영역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적용하고, 그 결과가 사람의 통일·온전한 통일·실질적인 통일에 기여한다면 그 효용성은 입증되는 것이다.

분단체제 속에서 사람의 통일을 염두에 뒀을 때 가장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척도가 탈북민의 국내 적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이 국내에 적응하는 과정이 통일 이후 남북 주민들의 통합의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2016년 8월 말 현재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 수를 2만9천688명으로 발표하고, 10월 중에는 3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통령은 8·15 경축사·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탈북민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정부의 관련부처들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향후 탈북민의 국내 정착에 대한 정책을 사회통합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서 대량 탈북을 염두에 두고 대규모 탈북촌 건설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민을 두고 ‘미리 온 통일 역군’이라고 정부와 사회 일각에서는 추켜세우고 있지만 이들을 대하는 우리 주민들의 시선은 간단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전쟁 후 반공주의를 굳건한 통치 이념으로 삼은 정부는 우리 주민들에게 북한을 주적으로 인식하도록 철저히 교육하고 통제했다. 그런데 주적의 주민들이었던 그들이 국경을 넘었다고 쉽사리 이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가 간직한 분단의 아비투스가 지나치게 강렬하다. 영구임대주택을 배정 받아 같은 아파트에 주거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같은 직장에서 동료로 근무하는 일도 곤혹스러워 한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중국 조선족은 부담 없이 채용하지만 탈북민에게는 거부감을 드러내는 실정이다.

“헌법에 명시된 통일을 지향한다는 조목에 충실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탈북민들을 통일 이후 남북 주민들의 통합 모델로 양성할 필요가 있다. 탈북민들이 국내 적응이 불가능하다면 통일 이후의 주민 통합은 가장 큰 난제로 대두될 것은 자명하다. 국내 주민들이 탈북민의 국내 부적응 현상을 보고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탈북민 적응 정책이 요청된다.”

정부가 대북정책을 탈북 권유와 탈북민의 국내 적응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국내 주민들이 탈북민을 대하는 시선과는 괴리감이 큰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종북 좌빨’이라는 용어를 주홍글씨처럼 붙여서 옭죄는 분단체제 속 우리의 현실에서 탈북민은 가까이 하기에는 확실히 부담스러운 존재다. 정부는 통일정책의 일환으로 탈북민 수용에 적극성을 내비추지만 그 정책에는 사람이 빠져있다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다. 탈북민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정부의 보호 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 남한의 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의 통일에 대해서 별로 고민한 적이 없다. 정부는 적대적 분단체제 속에서 체제 우월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탈북 권유 정책을 천명할 뿐이지 탈북민과 우리 주민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방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탈북민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이웃으로 보듬을 마음을 내지 못하는 우리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정부는 탈북민의 국내 정착 방안에서 우리 주민들의 수용 의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탈북 권유라는 가시적인 정책보다는 사람의 통일이라는 실질적인 통일정책을 수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국내 정착 탈북민의 수가 3만 명에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탈북민의 국내 적응을 사람의 통일 과정으로 바라봐야 할 때다. ‘미리 온 통일 역군’이라고 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환대하지만 우리 주민들은 아직까지 온전하게 탈북민을 보듬을 자세를 갖추지 못했고, 탈북민들은 사회주의 체제에 길들여져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새로운 외상에 심각하게 노출되고, 그에 따른 트라우마가 심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를 해결하고 치유의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미리 온 통일 역군’들은 국내 주민들에게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확산하는 ‘반통일의 세력’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국가 차원에서 분단체제에 대한 강경한 정책을 유연화하지 않는다면 탈북민들의 설 자리는 점점 축소될 수도 있다. 헌법에 명시된 통일을 지향한다는 조목에 충실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탈북민들을 통일 이후 남북 주민들의 통합 모델로 양성할 필요가 있다. 탈북민들이 국내 적응이 불가능하다면 통일 이후의 주민 통합은 가장 큰 난제로 대두될 것은 자명하다. 국내 주민들이 탈북민의 국내 부적응 현상을 보고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탈북민 적응 정책이 요청된다. 탈북민이 국내 적응에 실패하면서 재입북의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우리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은 좌절로 변하고, 또 다른 분단의식을 낳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분단 상황은 영토의 분단을 넘어 민족의 분단으로 고착화될지도 모른다. 향후 영토와 체제의 통일이 도래했을 때 사람의 통일이 이뤄지지 않아 온전한 통일국가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의 통일 과정으로 탈북민의 국내 적응을 바라볼 때 통일의 두 주체인 탈북민과 국내 주민들은 각자 치열하게 소통과 치유·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탈북민들은 자신들이 국내 적응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의식을 공고하게 하고, 이를 모든 이들이 공유해야 한다. 사선을 두 번 세 번 넘고 탈북을 성취한 용기와 추진력으로 국내 적응에 혼신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의 지원 단체나 정치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는 탈북민 내부에서 사회 적응을 고민하는 전문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균형 잡힌 전문가들이 자체 조직에서 양산돼야만 진정한 국내 적응이 가능할 것이다. 국내 주민들도 급속도로 진행된 자본주의 폐해에 휩싸여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실정이므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탈북민의 한국 사회 적응과 탈북민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자체 전문가들이 중심이 돼 국내 적응을 주도한다면 갈등의 폭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국내 주민들은 탈북민들의 상처와 처지에 대한 이해를 넘어선 공감의 감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70년 넘게 떨어져 살았지만 여전히 외형적으로는 불편함이 없이 소통 가능함에 공감을 표하고, 통치 체제의 다름에서 비롯된 의식과 가치관의 차이를 조율해 나가겠다는 포용의 마음이 요구된다. 차이에 대한 인정이 없다면 탈북민도 보듬을 수 없을 것이며, 통일 후 북한 주민들과 통합도 불가능할 것이다. 탈북민을 통일 후 사람 통합의 시금석으로 인식하고 그들이 간직한 탈북 트라우마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더 이상의 사회폭력을 표출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요청된다.

우리는 통일 이후의 사회 통합을 고민할 때 통일 독일의 사례에 주목한다. 통일을 성취하고 20년이 넘었지만 동독 사람들은 서독 사람들을 질시하고, 서독 사람들은 동독 사람들을 백안시하는 현실을 보고 우리의 통일 이후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적어도 서로에게 총칼을 겨눈 전쟁의 경험을 갖지 않은 저들도 그러한데, 전쟁 이후 분단체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서로에게 적대감을 갖도록 철저하게 교육받은 남북 주민들이 무난하게 섞여 살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꿈같은 이야기일 수 있다. 통일 이후의 극도의 혼란을 줄여가는 방안은 지금 여기가 바로 통일의 과정이고 현장이라는 통일 연습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 거주하는 탈북민을 온정의 눈길로 바라보고 적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고, 진정한 통일 연습이 될 것이다.

 

김종군 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HK교수·국문학
필자는 건국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통일인문학과에서 남북한 문학과 민속의 통합 방안, 역사적 트라우마 치유, 통일인문콘텐츠 R&D 분야를 강의하고 있다. 『고전문학을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전3권), 『고난의 행군시기 탈북자 이야기』, 『분단체제롤 넘어선 치유의 통합서사』등을 기획하고 공동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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