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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보 연구자의 立志
어느 초보 연구자의 立志
  • 김미예 숙명여대 책임연구원·ICT융합연구소
  • 승인 2016.10.2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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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김미예 숙명여대 책임연구원·ICT융합연구소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사진으로 찍은 것 같이 생생한 기억이 남는 순간이 하나 둘씩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러한 순간이 있는데 바로 박사학위를 받던 날이다. 긴 시간 노력 끝에 학위를 받던 순간도 잊지 못하지만, 더욱 기억에 남는 순간은 졸업식 날 지도교수님께서 “아직 1%밖에 시작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라고 해주셨던 말씀이 또렷이 남아 있다. 지도교수님의 말씀은 졸업식이 끝난 후,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연수 과제를 신청하면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국연구재단의 박사후연수는 취업을 선택하지 않은 나와 같은 초보 연구자에게는 안정적으로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연구계획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졸업 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신청 요강 안에 있던 평가 항목 및 배점, 연구 계획서 가이드 라인에 밑줄을 그어가며 계획서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요청 내용에 맞게 작성하기 위해 작성한 계획서 버전만 10개가 넘을 정도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연구계획서를 쓰면서 이렇게 신중하고, 또 책임감이 느껴졌던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 이유는 졸업 후 처음으로 책임연구원의 직책으로 연구를 주도해야 하는 부분도 컸지만, 연구재단 사업 설명회 시작 전, 태극기를 보며 시작된 국민의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가 진행하는 연구가 국민들의 세금으로 진행한다는 책임감에 앞으로 연구자로서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금, 나의 연구가 조금이나마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연구계획서를 쓰게 됐다.
 
박사후연수를 통해 깊이 있게 조사해 밝히고 싶은 연구 주제는 소비자들의 경제적 무력감이 상징소비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 또한 크게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에서는 ‘작은 사치’ 소비 열풍으로 1인분에 5만원 이상인 명품 디저트, 한 잔에 1만원 이상인 프리미엄 커피가 더 잘 팔리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인 소비문화를 보면서, 경제적 무력감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갖게 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경제적 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보상행동을 하는지, 특히 사고 싶은 상품이 있는지 대한 상징소비와 이를 통한 소비자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코틀러 교수의 『마켓 3.0』에서는 마케팅의 목적이 기업의 수익을 높이는 것을 뛰어넘어, 소비자들의 삶의 질, 사회적 가치 및 복지를 높이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나의 연구는 아직 시작단계지만, 심리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소비자 연구를 통해 소비자를 이해하고, 소비자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제도 및 정책을 마련하는데 작은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정말 큰 보람이 될 것 같다.

율곡 이이 선생은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초학자들을 위한 입문서로 『격몽요결』을 우리에게 남겼다. 이 책의 1장은 「立志章」으로 “처음 학문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맨 먼저 뜻부터 세워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박사후연수는 내가 왜 학문을 하는지, 이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었다.

 

김미예 숙명여대 책임연구원·ICT융합연구소 
소비자의 상징 소비를 주제로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적 무력감과 상징소비, 브랜드 애착과 소비자의 삶의 질 등 소비자 행동과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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