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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대한 성찰적 태도
인공지능에 대한 성찰적 태도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16.10.2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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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최근 들어 인공지능 관련 컨퍼런스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인공지능 관련 기업은 물론 유력 언론사, 정부기관 모두가 나서고 있다. 이들 컨퍼런스가 주목하는 주제는 거의 예외 없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으로 집약된다. 즉 인공지능은 기술적으로 어디까지 가능할까? 인공지능은 산업적으로 어디까지 활용될 수 있을까? 인공지능산업을 위해 정부, 기업,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이러한 관심은 절실한 것 같다. 인공지능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탑재된 새로운 기계기구나 로봇을 보면 인류가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페이스북의 얼굴 인식, 스마트폰의 음성 인식, 실시간 통번역은 시작에 불과하다. 자동차들이 자율주행으로 달리고, 드론이 배달은 물론 불도 끄고, 경비업무도 맡는다. 건설현장에는 땅 파는 로봇이 투입되고, 의료 로봇이 수술에 사용되고, 노약자와 어린이는 돌봄 로봇이 보살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방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공지능이 선거를 예측하고,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며, 인간과 대화하면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미래 비전을 염두에 둔다면 분명 인공지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일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인공지능의 미래를 무작정 유토피아적으로 생각하고, 맹목적 기술개발과 경제적 이윤추구에만 몰두한다면, 인공지능이 낳을 수 있는 문제점을 간과하게 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인공지능기술의 활용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제조업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며, 변리사,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일자리 확보를 위해 인공지능과 싸워야 할까? 19세기 ‘기계파괴운동’처럼 인공지능파괴운동이 일어나야 할까
 
사실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게 된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고역에서 벗어나 여가와 인간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다면 말이다. 따라서 문제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과 이윤 확대가 얼마나 사회로 환원되어 재분배되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인간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호로(horror) 비전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의 조종이나 통제에서 벗어나 흡사 자율성을 갖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비록 인간이 프로그램밍을 한 것이라 해도 인간과 관계에서 인공지능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상황 판단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면, 그만큼 인간은 인공지능의 행위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통제할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휴먼노이드 로봇일 것이다. 만약 로봇이 인간과 대화와 감정교류는 물론 자기의식을 형성하며 스스로를 변화 발전시킬 수 있다면, 사실 이것은 이미 인간이나 다름없다. 물론 기술적 가능성은 차치하고, 실제로 이런 창조물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겠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창조물이 등장한다면 이제 인간의 특수한 지위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과연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할 수 있는 인간만의 본질이 존재하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지,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성찰적 태도가 없다면, 인공지능이 펼쳐 놓을 인류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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