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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학이 남북 아우르는 진정한 통일학으로 발전할 수 있으려면
북한학이 남북 아우르는 진정한 통일학으로 발전할 수 있으려면
  • 이병수 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HK교수·철학
  • 승인 2016.10.1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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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공동 기획 '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_ 3. 북한학의 쟁점과 통일학의 과제
▲ 지난 4월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통일연구네트워크 국제학술대회 「포스트 통일, 남북협력의 과제와 미래」모습.

북한학의 성격

냉전시기 북한학은 안보의 필요성과 체제정당성 차원에서 연구주제가 설정됐고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뚜렷했다. 연구시각이 냉전적 반공의식에 제약됨에 따라 북한학은 학문적 객관성을 띠었다기보다 이데올로기적 언설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북한학은 이데올로기적 편향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인 방향으로 연구 성격이 변화됐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여러 대학에서 북한학과가 개설되고, 북한연구학회도 설립됨으로써 체계적인 북한 및 통일연구가 본격화된 과정과 일치한다. 또한 2000년대 들어 북한·통일연구가 기존의 정치군사 중심에서 경제학, 사회학, 문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로 연구영역이 확장돼 학문적 제도화가 공고해졌다. 북한학의 이러한 발전과정은 이데올로기 영역으로부터 새로운 종합학문으로서의 학문적 정립과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학문적 정립과정에서 북한학은 두 가지 성격을 지니게 됐다. 우선 북한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학 혹은 지역연구(Area Studies)로서의 성격이다. 지역연구는 일반적으로 특정지역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종합적 연구를 일컫는 말이다. 북한학 역시 일반적 지역학과 공통적으로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다음으로 북한학은 단순히 북한지역의 종합적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단극복과 통일을 지향하는 성격을 지녔다. 이는 북한학이 일반적 지역학과 다른 특수한 점이다. 한반도 분단 상황 때문에 북한학은 그 출발부터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북한학은 지역연구이지만, 통일의 당사자인 북을 연구대상으로 한 점에서 통일학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과 맞닿아 있는 현실에서, ‘북한학’과 ‘통일학’은 개념적으로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호환되는 용어로 병행 사용되고 있다.

북한학의 쟁점

북한학과 관련된 여러 쟁점이 있으나, 필자의 문제의식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점만 지적해본다.

첫째, 북한학의 지역학적 성격과 관련된 것으로, 북을 통일의 파트너라기보다 통일의 대상으로 사유하는 경향이다. ‘지역학’은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팽창과 관련하여 생겨났으며, 일반적으로 국가이익을 증진할 필요성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학’은 연구주체에 따라 연구목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지역학은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조선학’과 민족세력의 ‘조선학’에서 보듯 주체에 따라 연구 목적과 대상이 다르게 구성된다. 탈냉전후 민족화해와 통합을 지향하는 흐름이 증대돼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북한을 협력과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타도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고하게 남아 있다. 북한학에서도 북한을 통일의 또 다른 주체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의 대상으로 사유하는 연구경향이 존재한다. 이는 두 개의 분단국가가 서로 정통성을 내세우면서 적대시하는 분단국가주의가 여전히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체제 우월성에 바탕을 둔 이데올로기적 북한연구는 정치학 및 군사학, 그리고 경제학 분야를 중심으로 체제통합에 치중하는 연구와도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주제로 하는 미시적 연구가 증대됐지만, 정치?경제?안보 등의 분야가 북한연구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아직도 남북 주민들의 정서, 가치, 생활문화에 대한 연구가 미약한 형편이다.

둘째, 북한학의 학문적 정체성 문제다. 현재 북한학은 분야별 연구를 종합하거나 북한 혹은 통일관련 관련 연구전반을 느슨하게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물론 북한 및 통일문제는 특정한 하나의 전공분야에 한정된 연구로는 그 실상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다양한 측면들을 포괄할 수 있는 종합학문적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북한학에서 실제 이뤄지는 종합학문적 연구는 여러 학문의 병렬적 접근에 머물러 있어 학문적 정체성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학문적 정체성을 형성하려면, 단순한 종합 의미 이상, 즉 고유한 연구 대상과 학적 체계를 가진 ‘통일학’으로 발전시키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북한학을 통일학의 하위개념으로 위치시키면서 학문적 독자성을 모색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북한학이 남북을 아우르는 진정한 통일학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즉 북한학은 하나의 지역연구에 머물 것이 아니라 통일의 조건을 탐색하고 통일한반도의 이념을 모색하는 통일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통일학의 과제

통일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되기기 위해서는 고유한 학문적 체계를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학문적 체계가 무엇이 돼야 하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필자는 통일학이 학문적 체계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그것은 인간을 다루는 인문학적 토대 위에서 기존의 통일 담론들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서 새롭게 도출된 연구 방향과 대상을 중심으로 고유한 연구 대상과 방법을 정립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단이 단순히 국가(체제) 간의 대립으로만 환원되지 않는 이유는 ‘분단’을 내재화한 민족구성원들의 가치, 정서, 생활문화의 분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통일논의는 단순히 두 국가나 체제를 하나로 통합하는 문제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민족구성원의 몸과 마음을 소통하고 통합하는 ‘사람의 통일’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 이는 체제통합이라는 사고틀을 넘어 남과 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통일’이라는 관점으로 통일담론의 틀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통일’이란 관점과 더불어 가치, 정서의 사회문화적 통합 위에서 체제통합을 다룰 때만 단순한 종합 의미 이상의 학적 체계를 지닌 통일학이 가능하다. 이러한 의미의 통일학에는 다양한 과제가 요구되지만 지면관계로 인식론적 성찰 부분만 언급해본다.

우선, 통일 관련 근본개념의 비판적 성찰을 통한 개념 재구성이다. 이를테면 통일과 관련해 체제이념의 통일, 특정 시점에서 이뤄지는 일회적 사건으로서의 통일 등 기존 통일 관념에 대한 성찰적 비판을 통해 통일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제라든가, 이질성 대 동질성 틀에 대한 입각한 민족동질성 회복, 단일 민족국가로의 통합 등 통일의 궁극적 방향에 대한 기존 관념을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통일과 민족의 관계, 민족 개념의 내포와 외연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제가 여기에 속한다. 그 외에도 통일에서 민족주의의 한계와 의의, 통일과 평화의 관계 등 여러 연구과제가 있다.

둘째, 연구자 자신과 연구대상에 대한 근원적·비판적인 성찰이다. 북한연구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은 타자성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우리의 성향과 믿음들 때문에 모든 문제를 항상 상대에게서 찾는 경향이다. 남북 적대가 오랜 세월 구조화됨에 따라 북한연구의 관점 자체가 분단의 구성요소를 이루는 분단학문적 성격을 지니게 됐다. 따라서 연구자 자신의 내면화된 아비투스, 혹은 분단체제에 몸담고 있는 연구자의 존재론적 위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물론 연구대상의 내적인 사회역사적 맥락을 존중하지 않는 풍토가 오랫동안 지속돼왔다. 통일학은 이러한 분단학문적 성격에 대한 인식론적 반성, 우리 사회 내부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통일학은 분단체제가 우리의 신체에 체화돼 있는 방식들과 마음에 남겨 놓은 분단의 상처, 그리고 분단체제가 작동하는 사회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메커니즘을 고유한 연구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병수 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HK교수·철학

서울대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열암 박종홍의 철학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세기 한국사상사와 한반도 통일의 이론적 토대에 관해 주로 연구하고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 『통일인문학: 인문학으로 분단의 장벽을 넘다』, 『통일의 기본가치와 인문적 비전』,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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