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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강조하는 대화기법 도입 … 워크숍 형식의 집단상담 긍정적 호응 이끌어"
"소통 강조하는 대화기법 도입 … 워크숍 형식의 집단상담 긍정적 호응 이끌어"
  •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
  • 승인 2016.10.1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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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40년을 말하다_ 14. 심리학적 상담서비스

사회변화는 사회 적응 양식의 변화를 강요하고 적절한 대응 대책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사회적 적응에 실패하는 등 정신건강의 문제가 대두된다. 한국행동과학연구소(KIRBS)는 개인의 적응에 관한 연구 일환으로 이들이 부적응을 극복하고 원만히 적응하는 능력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고 1971년에 상담실을 개설했다.
상담을 진행하는 카운슬러는 내담자의 심리적 고통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는 다양하다. 젊은이들의 대학진학과 취업문제 등과 관련된 고민을 비롯해, 불안, 우울, 스트레스 등 심리적 문제, 자기통제력과 사교력 부족과 같은 행동의 문제 등이 빈번히 등장한다.

새로운 상담 포맷의 시도

일반적으로 심리상담은 상담실에서 상담 전문가와 내담자가 대화를 통해 내담자의 호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형식을 취한다. 우리도 상담실을 설치할 때 이런 형식의 상담활동을 예측하고 계획·진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우리는 전통적 상담활동에 일부분 변화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종전의 밀도 높은 집중적 개인 상담을 맡을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고 해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상담 포맷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전통적 개인 상담과 병행해 우리가 시도하고자 한 것은 워크숍, 세미나, 또는 집단교육 형식의 준상담 활동이었다. 이 새로운 개념의 상담활동은 전통적 상담 포맷을 벗어나는 접근이지만 우리는 개인 상담이든 집단교육식 상담이든 내담자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상담의 윤리규범을 벗어나지 않는 한 상담 형식에 고집스럽게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을 해결해 주는 집중적 치료활동이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옳다고 생각했다.

일단 집단교육 형식의 상담활동에 착수한 뒤에 우리는 시종일관 우리가 잠정적이라고 내디딘 이 ‘새로운(?)’ 형식의 상담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개인 상담도 KIRBS 나름의 절충적인 준상담활동에 열을 올렸다.

집단교육상담의 사례

우리가 개발해 시도한 세 가지 대표적인 프로그램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생활적응 기능 훈련을 위한 것, 학생들의 학습활동을 도와주기 위한 학습행동 훈련을 위한 것, 그리고 자녀지도를 위한 대화의 기법에 관한 프로그램 등이다.

첫째, 생활적응 기능 훈련 프로그램은 1977년 박성수 교수(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KIRBS 상담실로 복귀·제안함으로써 개발에 들어갔다. 박 선생은 1972년에 초등학교 행동수정 연구에 참여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장차 확장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행동수정 프로그램에 그가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박 선생의 생각은 달랐다. 新프로이트 학파의 한 개념인 자아(ego)의 기능을 강조하는 이론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우리 상담팀 팀장이었던 이규성 선생의 행동분석 오리엔테이션에 찬물을 끼얹었다.

우리는 장시간의 토론을 통해 우리의 원래 의도와 다른 박 선생의 생각을 프로그램 내용과 훈련 방법에 녹여 넣어 통합시키는 방도를 찾기로 했다. 행동분석 접근과 자아 심리접근을 적절히 절충해서 프로그램에 주입하면 두 이론의 갈등은 해소되리라고 믿었다. 이 프로그램의 중심내용인 대인관계 기술과 사회학습 등 적응기능을 행동적 목표와 방법으로 진술함으로써 두 접근은 무리 없이 융합될 수 있었고, 프로그램 운영도 순탄했다.

KIRBS의 집단교육 상담의 두 번째 프로그램은 학습기능 훈련과 관련 있다. 학교학습의 성공과 실패는 학생들의 성격 형성과 사회성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효과적인 학습습관과 학습의 요령을 터득하게 해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킴으로써 그들의 심리적 안정을 꾀하자는 의도였다.

프로그램 내용은 중요한 학습행동을 5개 영역으로 정하고 각 영역별로 구체적 학습행동을 추출한 뒤 진단평가를 통해 결손된 학습행동을 확인해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것이다. 중요한 5개의 학습행동으로는 공부 시간의 효율적 사용법, 학습독서 및 속독법, 학습내용의 기억법, 노트 정리법, 그리고 시험 준비 방법 등으로 정했다.

프로그램의 진행 절차는 이렇다. 잘못된 학습행동을 확인하기 위한 진단을 근거로 하여 학습방법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 강의에서 배운 학습요령을 연습하고 교사의 피드백을 받는다. → 집에 가서 복습하고 새로 터득한 학습요령을 습관화하도록 부모의 협조를 구한다. 이 프로그램은 방과 후 3시간씩 5일간 워크숍으로 진행됐는데, 학생들로부터 긍정적인 호응을 받으면서 우리 상담연구부의 상담 프로그램으로 오랫동안 운영됐다. 세 번째로는 가정으로 옮겨 간 자녀지도를 위한 부모의 대화기법 프로그램이 있었다. 부모에게 자녀와의 대화를 원활하고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터득케 하여 자녀양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자녀와의 대화에서 오류를 찾아내 분석하고, 대화에서 부모가 갖춰야 할 올바른 태도와 표현 방식을 익히게 한다. 강의, 역할 놀이, 워크숍 등을 포함한 활동을 통해 바람직한 대화 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대화에 있어서 세 가지 중심 요소는 첫째, ‘네가 잘 못했지’보다는 ‘~한 행동을 보니 내 마음이 언짢다’는 식의 ‘너’라는 말보다 ‘나’라는 메시지(I-message)를 사용하고, ‘네 성격이 좋다, 나쁘다’보다는 ‘너의 그 행동이 좋다, 나쁘다’ 식의 행동 자체를 지적하는 행동적 표현(Do-message)을 쓰며,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호통이 아닌 소통을 강조하는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과 문제 해결을 유도하는 대화 기법을 습관화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워크숍 형식으로 운영된 이 프로그램은 오랫동안 KIRBS의 상담프로그램으로 운영돼 많은 내담자로부터 긍정적 호응을 얻었다.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는 이 프로그램을 지금도 교육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회사에서의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의사사통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으로 여러 기업체 연수원에서 간부사원 훈련에 널리 사용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들은 전통적 의미의 상담활동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이 집단교육 형식의 프로그램이 정당한 상담활동으로서 나무랄 데 없다고 판단해 떳떳하게 진행했다. 집단적 교육으로서의 상담활동 외에도 우리는 전통적 상담 형식에 따른 개인 상담을 병행했다. KIRBS 상담실에는 개인적인 적응 문제를 호소하는 내담자가 많았다.

1971년 KIRBS 상담실을 개설한 뒤 10년이 경과한 1981년이 될 때까지 상담실 내담자가 약 1천명 가까이 이르렀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호소하는 문제는 주로 학업문제와 진학문제였고, 성인들이 호소하는 문제는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회의와 직장에 대한 불만족과 부적응 등이 많았다. 학생이나 성인 모두 학교나 직장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게 자신의 지적 능력에 기인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또 20세 이상 성인의 경우, 예상대로 취업과 진로 외에 가족과의 갈등, 이성 문제 등에 대한 호소가 많았다. 내담자의 진술에 의한 부적응 행동과 습관, 성격 등 심각한 이상행동의 치료를 위한 경우도 상당수 있어, 타 전문기관에 위탁해야 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상담부의 연구 프로젝트인 중·고등학교 생활지도 체제와 상담 프로그램의 정립에 관한 연구(문교부 지원),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업과 취업 등 고민에 대한 심층 분석, 청소년 비행의 실태 조사 및 대책 수립, 부모 상담, 1976년의 집단 전환증 연구 등이 우리를 바쁘게 했다.

상담에 관한 여러 가지 연구를 토대로 하여 고등학교 학생들의 진로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시도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을 시도했다. 대학 전공계열의 데이터베이스를 설계·구축하기 위해 전국 250여개 종합대학, 교육대학, 단과대학, 전문대학, 특수대학의 대학 정보를 수집·정리해 진로지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시 컴퓨터 통신망인 하이텔에 올려 학생들의 진로 탐색과 선택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1975년에 전용오 박사(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가 마음먹고 시도한 이 진로지도 컴퓨터 프로그램은 아마도 이 방면 연구의 효시가 아닌가 한다.

새 상담모형의 시도

한국행동과학연구소의 상담활동에서 간과할 수 없는 프로그램은 행동수정이라는 행동분석학 계통의 연구와 그 행동 테크놀로지였다. 이미 부적응 치료 이론과 방법은 꽤나 많이 제안돼 있었다. 정신분석 이론, 자아이론, 특성이론 등도 있었다. 여러 가지 성격이론과 치료 전략이 부침했다. 거기에 또 행동분석 이론도 질세라 끼어들었다. 사회생활에서 적응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의학, 심리학, 교육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적 서비스가 유효하게 통용되고 있다. 이런 서비스는 여러 곳에서 손을 잡아 주려고 한다.

이들 많은 이론들 중에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론은 정신분석학을 중개념으로 하는 치료이론이다. 이 정신치료이론은 그 효과에 관해 여러 각도에서 비판을 받아 왔다. 1950년대 영국 한스 아이센크(H. Eysenck)와 남아공의 조셉 울프(J. Wolpe)가 일찍부터 이에 대한 비판의 선봉자로 나섰다. 프로이트의 접근은 그 자신이 의사출신이어선지 의료인의 고유 영역으로서 타 정신건강 전문인의 범접을 허용치 않았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순수 심리학의 연구였다. 이 순수 심리학 연구는 심리적 부적응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기대를 낳았다. 클라크 헐(C. Hull)의 학습이론을 근거로 한 월프의 상호제지법과 스키너(B.F. Skinner)의 작동조건형성의 원리를 인간의 부적응 행동 수정에 응용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을 공격성과 성적 욕망의 노예로 설명하는 정신분석학적 경향에 반발하는 한편, 행동주의 학습이론 역시 인간행동을 동물실험으로 설명하려 한다고 불평하면서 반기를 들고 나섰다. 칼 로저스(C. Rogers)와 아브라함 매슬로우(A. Maslow) 등, 이른바 인본주의 이론의 대표자들은 내담자에 대한 긍정적 존중과 공감적 이해를 치료의 관건으로 강조했다.

동일한 문제에 대한 이런 상이한 접근이 평행선을 긋는 동안 통합된 다학문적 접근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대세가 됐다. KIRBS는 행동수정과 행동치료를 포함하는 행동분석학의 기본 원리들을 전략으로 삼아 부적응 행동 수정을 위해 전방위에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다음 글에서는 이 이론과 실제가 KIRBS에서 어떻게 전개됐는지 살펴보겠다.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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