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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강조할수록 부모 영향력 커져”
“실력 강조할수록 부모 영향력 커져”
  • 박남기 광주교대·교육학과
  • 승인 2016.10.1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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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실력주의사회’ 톺아보기

실력주의사회는 개인의 실력에 의해 사회 재화가 배분되는 사회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와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실력주의사회가 공정한 이상인 사회이며, 구현가능하다고 믿어왔다. 이들은 소득격차 심화, 갈등 심화, 교육전쟁 심화, 공교육 파행 등등의 제반 사회·교육 문제는 실력주의사회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서 생긴 결과라고 생각하면서 보다 완벽한 실력주의사회 구현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관점은 ‘이상적 실력주의’다.  

대입 판단의 잣대(실력)를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타당하게 하기 위해서는 실력 판단 잣대를 그만큼 복잡해지고 치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그 복잡해진 기준을 고등학교가 준비시켜 수 없기 때문에 부모의 추가적인 지원이 더욱 필요해진다. 즉 보다 치밀한 잣대를 만들어 보다 완벽한 실력주의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면 할수록 부모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2016년 6월 15일 전국입학관련처장협의회가 주최한 ‘학생부종합전형 발전을 위한 고교·대학 연계 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학생부종합전형’은 내신만 보는 ‘교과전형’에 비해 월 소득 상위 30%(월 소득 500만원 이상) 집 자녀의 합격자 비율이 그 이하 자녀의 1.5배, 그 중에서 월 소득 1천만원 이상 집 자녀의 합격자 비율은 30% 이하 자에 비해 2배 높았다. 이는 실력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실력을 보다 세밀하게 측정하려 하면 할수록 부모의 영향력이 높아짐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학 입시가 실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따라 입학형요소를 다양화하고, 이를 측정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면서 부모의 배경이 더욱 중요해져 가고 있다. 이 또한 ‘실력주의 패러독스’다. 실력 측정 잣대를 더욱 치밀하게 만들면 비실력적 요인이 더 큰 향력을 행사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실력 잣대를 향한 경쟁과 그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은 더 커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실력주의사회가 지속되는 한 실력 형성 담당 핵심 기관이면서 실력 판단의 잣대가 되는 기관(학교)을 향한 경쟁과정에 부모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실력주의사회가 오래 지속될수록 부모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불공정한 경쟁을 줄이기 위한 노력 또한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시행해온 사교육대책이 실패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단기적으로는 교육개혁안을 마련할 때 우리 사회가 실력주의사회인 까닭에 나타나는 문제와 교육이 잘못해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구분해 타당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이 원인이 아니라 실력주의사회가 원인인 것을 교육정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면 기한 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만 더 커진다. 실력주의사회의 그림자를 옅게 하기 위해 교육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마이클 영은 실력주의 사회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의 하나로 하층을 대변할 사람이 없어진 것을 들고 있다. 실력주의사회에서는 하층 사람 중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상층으로 이동함에 따라 더이상 하층 사람들을 대변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지적한 것은 대부분 사실이지만 이러한 그림자를 옅게 할 수 있는 길도 교육 안에 있는 것 같다. 교육을 제대로 받으면 실력을 인정받아 설령 상층으로 이동했다고 하더라도 하층을 대변하게 하고, 하층사람을 위해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실력주의사회가 좋은(공정한) 사회라는 믿음 하에 우리 사회가 보다 완 벽한 실력주의사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빈부격차·갈등·경쟁 심화, 사교육비 증가, 행복도 저하 등 사회 문제의 상당수는 실력주의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학벌을 타하면 실력주의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학벌은 실력주의 사회가 만들어놓은 그림자다. 또한 실력형성과정에서 개인의 순수 노력이 차지하는 부분도 생각만큼 크지 않다. 우리 사회의 학벌타파를 위한 노력, 대입제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도,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노력 등이 성공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 바탕에 실력주의사회에 대한 신화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은 실력주의사회가 가져오는 그림자를 직시하고, 그 그림자를 옅게 하기 위한 신실력주의사회 구축을 위해 앞장서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신실력주의사회에 적합한 사회 구성원을 길러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신실력주의사회가 되도록 외부 사회와 힘을 모아야 한다. 이와 함께 교육 관련 문제 중에서 실력주의사회의 그림자가 교육이라는 벽에 부딪혀 나타나는 것과 교육 자체의 문제인 것을 구분해야 한다. 

실력주의사회의 그림자인 것은 문제의 뿌리가 교육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있음을 명확히 밝혀 사회와 협력을 통해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 자체의 문제인 것은 교육계가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교육학과

※이 글은 <교육학연구> 54권 3호(2016)에 게재된 「실력주의사회에 한 신화 해체」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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