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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의 십자가’, 영원한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 되다
‘제 7의 십자가’, 영원한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 되다
  • 서장원 독문학자
  • 승인 2016.10.11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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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풍경, 망명 지식인을 찾아서(독일편)_ 4. 안나 제거스: 망명문학의 선봉에 선 여류 작가
▲ 안나 제거스. 그녀의 얼굴 저편에는 문제작 『통과(Transit)』의 그림자가 엿보인다.유대인 독일 엘리트로 살았던 그가 마치내 프랑스를 거쳐 멕시코라는 낯선 세계로 틈입해야 했던 그 절박한 심정이 그녀의 불안한 눈동자에서 읽혀진다.

제거스가 망명문학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바는 무시무시한 나치의 폭력성보다도 인간의
존엄성과 폭력성에 반대되는 강력한 저항세력 구축이었다. 당시 지식인들이 단순한 저항에만
머무르지 않고 불의에 투쟁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류 망명 작가가 세운
‘제7의 십자가’는 영원한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자, 시대를 직시하고 앞장서서 앞길을
밝혀야만 하는 지식인상으로 울림을 주고 있다.

게오르크 하이슬러는 6명의 동료와 함께 보름스 근교에 위치한 ‘베스트호펜 나치강제수용소’를 탈출한다. 보름스는 중세의 영웅서사시 『니벨룽엔의 노래』와 마르틴 루터의 95개의 반박문으로 유명한 곳, 바로 그 도시다. 사건이 발생하자 즉시 지명수배령이 내려졌고, 나치돌격대장인 수용소장 파렌베르크는 일주일 이내에 탈주범 7명 모두를 잡아들일 것이라고 공언한다. 이 공언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탈주자들의 수용소 막사 앞에 있는 일곱 그루의 플라타너스 나무 윗부분을 잘라내 버리고, 그 위에 가로로 널빤지를 박아놓았다. 탈주범들을 잡아들여 거기에 십자로 묶어 매단다는 것이었다. 이 플라타너스 나무들은 멀리에서 바라보면 마치 일곱 개의 십자가가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파렌베르크란 인물은 태생이 나치돌격대였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우두머리였다. 이 작자는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고,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잔인함’을 드러내곤 했다. 저승사자 같은 인물이었다.

▲ 제7의 십자가-영화장면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처음 몇 달 동안에 이미 나치들은 독일 전국 각지의 수많은 정적들을 체포·구금했고, 지도급 인사 수백명을 살해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정치판을 뜨겁게 달궜던 수많은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매달 죽어나갔다. 일부는 공식적으로 처형당했고, 일부는 수용소에서 고문으로 죽어갔다. 이렇게 ‘베스트호펜 나치강제수용소’에는 나치 정적은 물론이고 의심이 가거나 눈에 거슬리는 자들이 수용돼 있었는데 그들 중 7명이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1937년 10월 어느 월요일 새벽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안나 제거스의 소설 『제7의 십자가(Das siebte Kreuz)』에 나오는 이야기의 첫 줄거리다.

▲ 안나 제거스-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안나 제거스(Anna Seghers, 1900~1983)는 시대를 풍미한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독일의 여류작가다. 1900년 라인강변에 위치한 유서 깊은 도시 마인츠에서 태어났다. 고미술·골동품상을 경영하는 부모님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네티 라일링이고 안나 제거스는 필명이다. 가족은 유대인이었다. 아버지는 마인츠 유대 정교 시나고게의 중요 직책까지 맡을 정도로 독실한 유대인이었다. ‘시나고게(συναγωγή, synagogē)’란 그리스어 어원의 ‘모임’이란 뜻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그들이 머무는 땅이면 어느 곳을 막론하고 함께 모여 예배를 보고 유대교 교리를 배우고 익히는 건물, 즉 유대교 회당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대인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유대교와 유대인들의 구심점이었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고향을 떠나 디아스포라 상태가 되며 이곳저곳으로 방랑하게 되자 ‘시나고게’는 전 세계 각 지역에서 유대교의 중심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시나고게를 중심으로 집단을 형성하며 결속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나고게는 나치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동시에 확연히 밖으로 드러나 있었음으로 쉽게 나치의 표적물이 됐다.

▲ 제7의 십자가-목판화표지

제거스의 어머니 역시 유대교 신앙이 독실했다. 신앙 이외에도 인간의 사회적 책임을 신봉하는 여성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성격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나타났다. 마인츠 유대교 부인연맹 창립회원이었고, 이 연맹의 의장단에까지 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적십자사 단원으로 봉사했다. 나치가 집권하자 고미술·골동품상도 ‘아리아화’ 됐다. ‘아리아화’란 뉘른베르크 법에 의거해 상업, 영업, 학문분야에서 유대인과 유대인 혼혈아를 축출하는 것을 말한다. ‘아리아화’는 유대인에게 재산매각을 강요했다. 매각하는 과정에도 겉으로 보기에는 ‘매각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은 ‘약탈’과 다름없었다. 자기들 마음대로 가격을 정했고, 자기들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성사시켰다. ‘아리아화’를 통해 중간에 이득을 챙기는 자들도 수두룩했다. 어머니는 남편이 사망한 후 지금까지 살던 집에서 쫓겨나 ‘유대인 가옥’에 거주해야했다. 끝내는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가 1942년 62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했다.

이렇듯 안나 제거스는 유대인이었고 유대인 가정 출신이었다. 부모님이 어느 정도 부유했으므로 풍족한 가정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의 보살핌도 지극정성이었고, 교육도 잘 받았다. 사립초등학교를 다녔고, ‘고등 소녀학교’ 교명의 명문 여자 김나지움을 졸업했다. 1920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쾰른과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역사, 예술사, 중국학을 전공했다. 1924년, 약관 24세의 나이로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렘브란트 작품에 나타난 유대교와 유대적인 것」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1925년 헝가리출신 사회학자와 결혼했다. 남편 역시 유대인이었다. 남편 ‘라즐로 라드바니’는 안나 제거스와 동갑의 나이로 헝가리 소비에트공화국이 붕괴되자 1919년 독일로 도주해 1920년부터 1923년까지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철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을 전공하고 칼 야스퍼스 교수에게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라드바니는 후일 독일식 이름인 ‘요한 로렌츠 슈미트’로 개명했다. 이 유대인 박사부부는 1925년부터 베를린에 둥지를 틀고 1926년에 아들, 1928년에 딸을 얻었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 토마스 만과 대화중인 안나 제거스

1924년에 소설 『디알 섬의 死者들』로 문단에 데뷔했고, 이 소설의 후속편인 『그루베치』를 1927년에 발표한다. 1928년에는 『성 바르바라 어부들의 봉기』를 발표하고, 이 작품으로 당시의 저명한 문학상인 클라이스트 상을 수상한다. 이 소설은 1934년에 독일 망명 영화감독인 에르윈 피스카토르(1893~1966)에 의해 「어부들의 봉기」라는 제목으로 소련에서 영화화된다. 제거스는 문학적으로 프리드리히 쉴러의 드라마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세계관은 러시아 10월 혁명 후 러시아에서 망명해온 지식인들의 사회정의관에 영향을 받는다. 1932년에는 『동반자』를 발표한다. 『동반자』는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기 4개월 전에 발표된 소설로 독일에서의 나치즘 위협을 경고하고 있다.

1928년에는 부유한 집안자녀 출신이라면 쉽게 관련될 수 없었던 길인 독일공산당에 입당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은 공산주의보다는 유대교와 더 관련이 있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박사논문도 유대교적 예술에 관한 것을 주제로 삼았었지 않았던가. 계기는 1924년부터 독일공산당 당원이었던 남편의 영향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독일공산당에 입당한 다음해에는 프롤레타리아혁명 작가연맹 창립회원이 됐고 1930년에는 최초로 소련여행을 한다. 이로써 안나 제거스는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나치의 공격대상인 유대인, 공산당 당원, 프롤레타리아혁명 작가, 박사 출신 지식인, 헝가리 출신의 공산당 당원 지식인의 아내 등, 나치 박해의 모든 조건에 해당되는 위험인물이 돼 있었다. 당시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1933년 2월 27일과 28일 밤사이에 발생한 제국의회방화사건이후 불어 닥친 제1차 박해의 물결 속에 제거스는 체포된다. 구금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지만 석방 후 감시를 당했고, 경찰에 의해 가택수색을 당했다. 그러자 제거스는 가족과 함께 베를린에서 도주해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로 망명한다. 도주 후 그녀의 책은 금서가 되고 불살라졌다.

프랑스로 망명한 1933년 그해 여름, 파리에서 ‘독일작가보호연맹(SDS)’ 재건에 참여한다. 가을부터는 뷔일란트 헤르츠펠데(1896~1988), 오스카 마리아 그라프(1894~1967), 얀 페터센 (1906-1969)과 함께 프라하에서 발간되는 잡지인 <새로운 독일의 지면들> 편집에 참여한다. 이 잡지는 시작부터 문학뿐만 아니라 히틀러에 대항하는 모든 세력이라면 누구나에게 지면을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망명생활은 고달팠고 환경은 열악했다. 하지만 제거스의 반 나치운동 참여나 창작열은 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작가일 뿐만 아니라 두 아이의 엄마였다. 두 아이를 돌보며 학교에 보내야했고, 잡지발간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생활도 해야 했고 경제적인 걱정도 해야 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긴장감속에 뛰었다. 매일매일, 매시간 매시간을 수많은 일과 싸웠지만 항장 진지했고 열정적이었다. 스스로 작업하는 법을 터득했다. 파리에서의 망명생활이 그랬노라고 1939년 요하네스 R. 베혀(1891~1958)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렇게 밝혔다.

그렇게 소설 『현상금』을 1933년에 발표한다. 그해 연초에 쓰기 시작한 글이었다. 소설은 대규모 집단운동을 통해 나치가 승승장구하게 되는 농촌 환경과 경제·정치·사회심리학적인 요인을 다루며 나치의 오판을 지적하고 있다. 나치는 민족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민족의 지지 없이, 단지 선전선동에 속아 넘어가 집단화한 우매한 민중들을 밑바탕삼아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1934년 7월에는 <새로운 독일의 지면들>에 단편소설 「콜로만 봐ㄹ리쉬의 마지막 길」을 발표한다. 이 소설은 보고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34년 오스트리아 수상인 엥겔베르트 돌푸스(1892~1934)가 살해되며 돌푸스 정권이 붕괴되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돌푸스는 오스트리아 나치당이 독일의 나치와 결탁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합병을 기도하자 이를 억압했고, 노동자 탄압과 언론 출판 집회 등의 자유를 제한하며 독재체제를 강화한 인물이다. 당시 돌푸스는 총리와 외무부장관을 겸직하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 나치당은 친독일파인 로마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 린텔렌을 수상으로 추대하고 돌푸스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 다음 나치당원이 돌푸스 수상 관저를 점령해 살해했다. 그러자 제거스는 오스트리아를 찾아 들어가 그곳 사람들을 직접 만나 증언을 듣고 그곳의 분위기를 파악한 후 콜로만  봘리쉬(1889~1934)의 ‘마지막 길’을 주제로 선정해 소설로 발표한 것이다. 콜로만 는 사회민주주의계열 노조간부로 이 돌푸스 정국 와중에 희생된 인물이다. 1934년 2월 18일에 체포돼 다음 날 사형선고를 받고, 그날 밤 12시가 되기 직전 교수형을 당했다. 1935년에는 『2월의 길』을 발표했는데 리쉬의 도주는 에피소드 정도로만 다루고 있다.

1937년에는 소설 『구조』를 발표한다. 1929년 이후 경제 사회적으로 위기시기였던 나치 집권 이전을 다루고 있다. 『현상금』에서처럼 시골 환경의 문제점을 묘사한다. 산업노동자들의 생존투쟁을 내용으로 하는데,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발전가능성을 거부하는 데서 오는 도덕적·심리적 고통을 다루고 있다. 1939년에는 1937년에 써내려가기 시작한 『제7의 십자가』를 완성한다. 출판을 도모했지만, 출판사를 찾기 전에 이미 나치 독일군대는 프랑스로 진격한다. 1940년 5월 나치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했을 때 그녀는 혼비백산해 도주를 준비한다. 독일군 진격 후 남편은 적대외국인으로 수용소에 감금됐다. 남편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아직 독일군에 점령당하지 않은 남프랑스로 거주지를 옮기려 했지만 포기하고 파리에 머문다.

게슈타포가 색출해 내려고 발광하고 있는 점령지 파리에서 몇 주를 버틴 후 남프랑스로 도주하는 데 성공한다. 몇 달 동안 마르세유에서 시간을 허비하며 남편의 석방과 해외로 빠져나갈 증명서를 얻으려 백방으로 노력한다. 드디어 가족은 1941년 3월 말 배에 승선할 수 있었고, 미국을 거쳐 또 다른 망명지인 멕시코에 도착한다. 마르세유 주재 멕시코 총영사관이 주선해준 덕이었다. 프랑스를 통과해 도주한 경험은 그녀의 소설 『통과(Transit)』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소설은 리온 포이히트 봐ㅇ어의 『망명』, 클라우스 만의 『화산』과 더불어 망명의 절박한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멕시코시티는 도주의 마지막 장소였다. 소련을 제외하고 멕시코는 특히 공산주의자들이 몰려든 망명의 땅이었다. 브루노 프라이(1897~1988), 에곤 에르윈 키쉬(1885~1948), 보도 우제(1904~1963) 등과 어울렸다. 1942년 분서사건 9주년을 기념해 멕시코에서 하인리히-하이네-클럽에 의해 망명 출판사 엘 리브로 리르베(El libro libre. ‘자유로운 도서’라는 의미)가 창립됐다. 이 출판사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망명문학을 출간하는 역사적 과업을 달성했다. 바로 이 출판사에서 안나 제거스의 『제7의 십자가』가 출간됐다.
『제7의 십자가』는 1942년 미국에서 영어로, 멕시코에서는 독일어로 출간됐다. 이 책이 발간되자 미국에서는 당시 2천만부의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1944년에는 프레트 친네만(1907~1997) 감독에 의해 「The Seventh Cross」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자 소설과 작가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실제로 소설 『제7의 십자가』는 독일 망명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다.

『현상금』과 『구조』가 나치 집권 이전을 다뤘다면, 『제7의 십자가』는 나치가 지배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조명하고 있다. 『제7의 십자가』는 7명의 탈주범을 다룬 도주이야기다. 7명 중 4명은 게슈타포에 의해 다시 잡혀 들어온다. 그리고 다섯 번째 탈주범 게오르크 하이슬러는 무사히 독일을 탈출한다. 
파렌베르크가 공언한 일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자 일곱 그루의 나무는 모두 치워지고 난로의 불쏘시개가 된다. “난로 속의 마지막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우리는 예감하고 있었다, 어떤 밤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가를. 축축한 가을 냉기가 모포를 뚫고, 우리의 윗옷을 뚫고, 우리의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우리 모두는 느끼고 있었다, 얼마나 깊이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외부의 힘이 우리 인간들 속으로,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뚫고 들어올 수 있는가를. 그러나 우리는 또한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가장 깊숙한 내면에는 공격할 수 없는 난 그 무언가가, 상처 입힐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Anna Seghers: Das siebte Kreuz, Darmstadt 1979, S. 288. 필자 옮김)

제거스가 망명문학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바는 무시무시한 나치의 폭력성보다도 인간의 존엄성과 폭력성에 반대되는 강력한 저항세력 구축이었다. 안나 제거스가 작중모델로 삼은 실제 인물은 바이마르 공화국시절 공산당 소속 제국의회의원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한스 바임러(1895~1936)인데, 나치가 집권하자 체포돼 다하우 수용소에 수감됐으나 나치친위대를 살해하고 도주에 성공해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고 그곳에서 사망한 자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가늠하며 당시의 지식인들이 단순한 저항에만 머무르지 않고 불의에 투쟁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류 망명 작가가 세운 ‘제7의 십자가’는 영원한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자, 시대를 직시하고 앞장서서 앞길을 밝혀야만 하는 지식인상으로 울림을 주고 있다.

서장원 독문학자

□ ‘망명 지식인(독일편)을 찾아서’가 만날 주요 인물들

△아돌프 히틀러와 알프레트 로젠베르크(나치 이론가) △하인리히 만(작가) △안나 제거스(작가) △알프레트 되블린(작가)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언론인, 영화이론가) △한스 아이슬러(작곡가) △볼ㅏ터 그로피우스(건축가) △에르윈 판오프스키(예술사학자) △칼 만하임(사회학자) △히틀러에게 충성고백한 교수들 △한스 잘(지식인) △망명수학자들 △망명물리학자들 △망명 생물학자 및 화학자들 △빌헬름 황제 협회(KWG)와 자연과학자들 △망명 심리학자들 △망명 경제학자들 △망명 정치학자들 △망명 법학자들 △망명 신학자들

※ 이 목록은 집필자인 서장원 교수의 사정에 따라 다소 바뀔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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