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受賞으로 가는 길, 무엇이 가로막고 있나?
受賞으로 가는 길, 무엇이 가로막고 있나?
  •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 승인 2016.10.11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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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160. 2016 노벨과학상
▲ 인간세포는 각각 특화된 기능을 하는 칸막이 형태를 갖고 있다. 라이소좀들도 그 중 하나다. 라이소좀은 세포 내 물질들을 소화(분해)시키기 위한 효소를 갖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소포(자루모양)가 세포 내에서 관찰됐다. 이를 ‘오토파고좀(autophagosome)’이라 불렀다. 이 이름 자체가 자가포식을 뜻한다. 형성된 오토파고좀은 세포 내 성분들을 둘러싼다. 그 성분들은 예를 들어 손상된 단백질이나 세포기관들이다. 마침내, 오토파고좀은 라이소좀과 융합해서 감싼 성분들을 더 작은 요소들로 분해한다. 이 과정들로 세포는 재생을 위한 영양과 새로운 구성을 위한 재료들을 제공받는다. 그림 출처= 노벨재단

2016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모두 발표됐다. 지난 3일 도쿄공업대학 명예교수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가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번엔 단독 수상이다. 일본은 올해로 3년 연속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셈이다. 오스미 교수는 세포 내의 불필요한 구성 물질을 분해해 세포의 영양분을 삼는 ‘자가포식(Autophagy)’ 현상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발견하고 그 기능을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자가포식의 개념은 1960년대에 처음 생겨났다. 50년이 넘은 개념이지만 생리학과 의학에서 중요하게 인식된 것은 1990년대에 오스미 요시노리의 패러다임 전환 연구 수행부터였다.

오스미 요시노리는 1988년 자신의 연구실을 열었다. 연구실을 열자마자 ‘空胞(vacuole, 인간세포의 라이소좀에 해당하는 효모의 소기관)에서 단백질이 분해되는 과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크기가 너무 작았던 효모의 내부를 보기 위해 요시노리는 자가포식이 활성화되는 동안 공포에서 일어날 분해과정을 교란시켰다.
그 결과 공포가 비대해졌고 요시노리는 내부를 관찰할 수 있었다. 1992년 효모에서 자가포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한 뒤, 1993년 요시노리는 효모에서 자가포식과 관련된 유전자를 발견했다. 결국 1998년 자가포식에 필요한 단백질 결합을 발견하고, 2000년에는 자가포식을 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 꼬리의 脂質화 신호를 발견했다.

자가포식의 어원은 그리스어 ‘자기’를 뜻하는 auto와 ‘포식’을 뜻하는 phagein의 합성어다. 미토콘드리아, 리보솜 같은 세포내 소기관이 망가지면, 세포는 자기 몸의 소기관을 분해해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고 세포내 에너지 사용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세포는 자가포식으로 빠르게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세균 등에 감염됐을 때 세포 안에 들어온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없애기도 한다.
배아 발달 과정에서도 자가포식은 필수이며, 우리 몸의 노화를 억제하는 조절자이기도하다. 자가포식이 교란될 경우, 세포 노폐물이나 불필요한 단백질 찌꺼기가 제거되지 않고 쌓이면 질병의 원인이 된다. 단백질 찌꺼기가 넘쳐서 세포 밖으로 나오면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암을 유발할 수 있다. 뇌에 독성 단백질 찌꺼기가 쌓이면 알츠하이머 치매나 파킨슨병의 단초가 된다. 현재 다양한 질병에서 자가포식을 겨냥할 수 있는 약물들이 개발되고 있다.

화학상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명예교수인 장 피에르 소바주, 영국 출신의 노스웨스턴대 교수인 프레이저 스토다트, 네덜란드 그로닝겐대 베르나르트 페링하가 공동 수상했다. 이들은 “‘기계적 결합’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분자 기계(molecular machines)를 최초로 개발”한 공로로 수상했다. 리처드 파인만은 오래 전 나노규모 차원의 기계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파인만의 확신은 2016년 노벨 물리학상에서 증명된 셈이다.

여기서 분자 기계는 외부 자극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특수한 형태의 분자다. 크기가 10nm로 머리카락 굵기 수천분의 1에 불과하다. 화학적 공유 결합으로 연결되는 분자들과 달리 기계적인 결합을 이룬다. 각 분자는 연결된 뒤에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자연계에는 세균의 편모(flagella)와 같이 분자 크기의 기계가 존재한다. 인간이 이를 만들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분자 기계들은 환경에서 유해물질을 분리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수은 등 중금속을 포집해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에 쓸 수 있고, 암세포 치료제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물리학상은 영국 출신 과학자들에게 수여됐다. 미국 워싱턴대 교수 데이비드 사울리스, 프린스턴대 교수 던컨 홀데인, 브라운대 교수 마이클 코스털리츠가 공동 수상했다. 이들은 “초전도체와 초유체, 아주 얇은 자기필름과 같은 비정상 상태의 물질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들을 수학적 모델을 이용해 설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모든 물질은 양자물리 법칙을 따른다. 물질은 에너지의 높낮이에 따라서 고체와 액체, 기체 등 상전이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3차원에서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되고, 온도를 낮추면 얼음이 된다. 그러나 1차원이나 2차원에서 물질은 상전이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여기서 1차원은 원자를 한 줄로 늘어뜨린 세계, 2차원은 원자를 평면에 배열한 미시세계다.

상전이를 연구하면 할수록 기존에 실리콘을 가지고 반도체를 만들던 데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새로운 전자기기를 개발할 수 있다. 또한 양자 컴퓨터에 적용할 경우 오류가 굉장히 적은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주 높거나 아주 낮은 온도에서 물질은 별난 상태(exotic state)를 띈다. 이러한 초유체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람은 1930년대 러시아의 물리학자 표트르 카피차다. 카피차는 헬륨(헬륨-4)을 영하 271도의 극저온으로 냉각했다. 그러자 헬륨액체는 담겨진 용기에서 거꾸로 벽을 타고 스스로 기어올랐다. 헬륨의 점성이 완전히 사라져 초유체 상태가 된 것이었다.

한편 창의성 있는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선 성과·관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성과주의는 유명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려는 집착으로, 관료주의는 하향식 연구기획으로 나타나 갈수록 기초연구의 창의성을 발목 잡고 있다. 연구자가 좋아하는 분야를 선정하는 것을 둘째 치고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것도 한국 과학 연구문화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연세대 류왕식 교수(생화학과)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경제규모 대비 (국가예산대비) 세계적으로 R&D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국가인 한국은 아직 수상자가 없을 뿐 아니라 향후 10~20년에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라면서 “기초과학 경시, 응용과학 집중투자, 하향식 과제기획 등이 문제점으로 꼽히는 데 모두 일리가 있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류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노벨상’이란 꼬리가 붙는 연구사업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공무원 주도의 일회성 성과주의, 단기성과를 기대하는 조급증의 결과다”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알파고가 히트를 치니 바로 1주일만에 1조원을 정부에서 서둘러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는 식이다. 류 교수는 “금번 수상자인 오스미 교수는 51세에 정교수가 된 대기만성형”이라며 “과거 수상자들 대다수가 ‘과학영재’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한 분야에 평생 집중하는 외골수 ‘덕후’가 결국 큰일을 내는 것”이라며 “물론 많은 덕후 중에서 극히 일부가 큰일을 내는 셈이지만 국가로서는 큰 힘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 방법으로 류 교수는 “대형국책사업을 축소하고 최근 과학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연구자 주도의 ‘중견과학자 연구지원사업’을 대폭 확대해 평생 한 우물을 파는 외골수가 많이 나오도록 정책방향을 수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노벨과학상 발표와 이에 따른 반성과 자괴감은 당분간 지속될 것인가. 만일 한국에서 수상자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게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 의문이다. 한 개인의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가 좋은 연구문화 확산으로 이어지기에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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