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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가 30세 되던 해까지 추적 … 끈질긴 연구 집착한 별종 연구자들 없인 불가능
신생아가 30세 되던 해까지 추적 … 끈질긴 연구 집착한 별종 연구자들 없인 불가능
  • 교수신문
  • 승인 2016.10.0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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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40년을 말하다_ 13. 아동프로젝트 Ⅲ

리 연구소의 많은 아동 프로젝트 가운데 한국아동의 종단적 연구는 아동을 출생에서부터 장기간 추적해 관찰 연구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아동 발달에 관한 학술적 의의가 큰 이런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고 한국에서는 유일한 연구로, 야심찬 연구였다.
인간발달 연구의 한 방법인 종단적 연구(Longitudinal Study)는 동일 표집을 장기간에 걸쳐 여러 번 반복 관찰·측정하는 연구방안으로, 발달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연구법이다. 연구자는 참가자가 평소에 생활하는 환경에서의 그 모습 그대로 관찰하고 측정한다.

종단적 연구는 진행에 많은 경비와 시간 그리고 다수의 연구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실 우리 연구소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일단 해보자고 결심한 이상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우리 연구는 1975년 3월에 서울에서 출생한 신생아 115명을 확보해 처음 ‘면접’하면서 탄생했다. 이 아동들을 대상으로 성장이 빠른 출생 후 6세까지는 1년에 두 번 3월과 9월에, 그 이후에는 1년에 한 번씩 매월 3월에 관찰·검사했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에 착수했을 때는 10년 정도만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웬걸,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호랑이 등을 탄 듯 30년이 넘게 이 연구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말았다. 시간이 갈수록 해마다 쌓여가는 자료의 가치가 점점 높아가는 것이 우리를 이 연구에 묶어둔 가장 큰 유인이었다.
한 번에 결판을 보는 연구가 아닌 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관련된 특유한 고려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연구 예산 확보 문제, 연구의 장기화에 따른 연구원 교체 문제, 내 임기 만료 (4년) 뒤 프로젝트의 운명 등이 현안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문제를 일단 제쳐두고 연구에 뛰어들었다.

종단적 연구는 장기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해야하기 때문에 연구 수행 상 여러 복잡한 문제가 내재돼 있다. 관찰·검사실시의 전후 시간 간격, 동년배 표집으로 인한 연구결과의 일반화 제한, 참가자의 탈락으로 인한 표집의 축소, 검사의 반복 실시가 검사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 다른 연구방안에는 흔치 않은 문제들이 많다.
잘 규정된 연구계획도 없고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는 이런 연구를 왜 돈과 노력을 들여서 하려는 걸까? 한국행동과학연구소(KIRBS)는 창립 때부터 영유아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아동의 발달에 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이 연구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종단적 연구의 수행 근거
우리의 첫 번째 관심은 아동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어떻게 변해가면서 발달하는가에 있었다. 시간 경과에 따라서 개인내적(개인자신) 발달, 즉 그의 발달과정이 얼마나 일관성 있는가를 알아보고 싶었다. 같은 아이의 발달을 추적해야 발달의 일관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정보를 줄 수 있는 연구는 종단적 연구밖에 없다.

두 번째로 우리는 아동의 어떤 초기 특성 또는 특성군이 성장한 후의 어떤 다른 특성과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알아보고 싶었다. 여기서도 종단적 연구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단순히 시간의 경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간은 준거체제에 불과하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아동이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발달의 실질적 중요 요소다.
세 번째, 종단적 연구는 아동이 성장함에 따라 어떤 보편적 행동이 계속 점진적으로 변화해나가는 궤적 추적에 특히 적합하다고 믿었다. 피아제(J.Piaget) 제네바대 교수는 자신의 세 아이를 출생에서 두 살 반까지 그들의 여러 가지 지적 행동을 자세하게 관찰해서 유아의 지능이 어떻게 발생해 발달하는가를 밝혔다.

네 번째, 종단적 연구로서 표면적 행동의 이면에 있는 행동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종단적 연구를 통해 행동의 생성과 발달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행동 이면의 이른바 ‘심층적 의미’ 파악에 강력한 사고전략을 제공한다고 우리는 믿었다.
종단적 연구는 이렇게 광범한 未踏의 연구지평을 전개해 기본적 행동발달 현상을 밝혀낼 수 있다. 행동의 어떤 보편적인 경향이나 두드러진 현상이 나타나면 다른 연구방법으로 더 철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종단적 연구의 자료더미는 연구 가설의 寶庫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확립된 이론을 고집하지 않고 수집한 자료이기 때문에 자료의 유용성은 극대화 된다. 또 유아기와 성인기의 자료를 관련시키면 예상외의 참신한 발견을 할 수도 있다. 무엇이 나오는지 보자는 ‘~에 관한 탐색적 연구’가 엉뚱하게 창의적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종단적 연구의 자료적 성격

우리는 장기간에 걸쳐 연구를 하면서 점점 종단적 연구에서는 자료 수집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우선 30년간 수집한 자료의 양이 방대했다. 역시 처음부터 어떤 구체적인 이론에 초점을 맞춰 자료를 수집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료의 양도 양이지만 자료가 지닌 質의 문제가 부각됐다. 장기 종단적 연구에서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더 발전된 자료수집 기법이 등장해 ‘낡은 것’을 밀어낸다. 그러나 종단적 연구는 이미 수집한 자료는 그 역사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섣불리 버릴 수 없다. 새 기법으로 재분석하고 새 기준에 따라 재해석함으로써 옛 자료에 새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다. 나사로의 기적처럼.

앞서 우리가 진행한 종단적 연구의 표집수를 115명이라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표집수가 적다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참가자 수는 적지만 이들 참가자에 대해 장기간 수집한 정보의 양은 사례수가 훨씬 많은 횡단적 연구의 측정치에 버금갔다. 하버드 성장연구의 신체성장 자료를 분석한 한 연구는 100명에 대해 10년 동안 종단적으로 측정한 측정치가 6만 명 이상의 횡단적 측정치와 맞먹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표집의 크기와 관련해 표집의 편향성에도 주목했다. 우리 연구의 표집수는 처음 115명이었다가 20년 후에는 60명이 됐다. 낸시 베이리(N. Bayley)의 버클리 성장연구의 표집수는 최초의 61명에서 13년 후에 42명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피아제의 표집은 단 3명이었다! 중요한 것은 연구에 참가한 사람의 수가 아니라 참가자 행동의 수다.

회고자료의 신뢰성
많은 복잡한 이슈를 짊어지고 진행했던 우리 연구의 실제 결과를 제시하면서 인간발달 연구방법의 한 가지 결정적 문제인 회고에 의존하는 자료의 질적 한계를 언급하고자 한다. 세 가지를 거론할 수 있다.
첫째, 離乳 시기가 빨랐던 아이들의 지능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둘째, 언어 훈련을 했을 경우가 하지 않았던 경우보다 지능이 일관성 있게 높은 경향을 드러냈으며, 1.5세(18개월) 때는 그 이후의 어느 때보다 언어훈련 유무가 아이의 지적 발달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3세 때 성취동기와 언어발달을 위한 격려가 19세경 성취지향적 인생관과 관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이 결과들이 얼마나 새로운가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연구방법으로도 밝혀낼 수 있는 결과들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동의 유년기 행동과 성장 후의 행동의 관계를 연구할 때, 유년기의 행동에 대한 자료가 얼마나 믿을만한가 즉, 초기 자료의 신뢰성이다.
‘젖을 뗄 때’, ‘세살 때’, 또는 ‘어릴 때’ 아이가 어떠했다고 하는 정보는 대개 부모(특히 엄마)가 제공한다. 정보제공자인 부모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회고해 정보를 제공하게 되는데, 그 정보가 얼마나 정확하며 신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인이 연구에 참가해 과거를 회상해 제공하는 정보에도 같은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80여년 전 바트레트(F. Bartlett)의 유명한 실험연구가 있다. 그에 의하면, 정서적으로 중립적인 사태를 회상하는 데도 원래의 사태를 엄청나게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녀의 어릴 때의 일을 회상하는 경우 단순한 시간의 경과로 인한 기억실수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정서적으로 관계가 밀접한 자녀의 경우이기 때문에 과거의 일을 미화하는 등의 粉飾이 거의 불가피하다. 정보제공자의 개인적 특징이 정보제공 시에 반영된다는 실험연구도 있다.
정보의 왜곡을 피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종단적 연구에서처럼 어릴 때 직접 관찰하고 검사거나, 시간적으로 근접한 시기에 정보를 수집하는 길밖에 없다.

한국행동과학연구소가 수행한 장기 종단적 연구는 2005년경 참가자가 30세 되던 해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동안 30여 편의 중간 연구 보고서가 출판됐고, 종합 연구보고서는 2005년에 『한국인의 성장·발달: 30년 종단적 연구』(교육과학사 刊)로 출간됐다. 이 책은 2006년에 대한민국학술원이 우수연구저서로 판정해 학술상을 수여했는데, 우리 연구의 학술적 공헌을 인정한 것이다. 1990년경부터 개인의 심층 면접으로 진행한 질적 연구는 2013년에 『한국인의 삶: 태어나서 서른까지』(교육과학사 刊)로 출판했다.
이런 장기 프로젝트는 연구소라는 기관의 지원이 없으면 하기 어렵다. 또한 무엇보다 이런 연구에 끈질기게 집착하는 별종의 연구자가 없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이 연구는 내가 연구소에서 하고 싶었던 연구의 톱에 들어간다.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많은 돈이 들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김광웅 박사(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연구계획서 작성부터 근 5년간 총책임을 맡아 연구를 궤도에 올려놓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30여 년 동안 이 연구를 하면서 나는 연구에 신경을 쓰다가도 소장으로서 다른 업무로 이 일을 가끔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내 잠재의식 속에는 이 연구에 대한 무엇이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늘 감돌고 있었다. 연구원들과의 대화에서 문득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첫째, 인간발달의 연구방법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종단적 연구에서 수집하는 방대한 자료의 처리방법에 어떤 혁신이 있을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료수집 방법으로 인터넷 활용을 시도했으나 문제가 많았다고 들었다. 자료처리에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전산테크놀로지가 자료 분석 방법에도 혁신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어 방대한 데이터를 너끈히 처리할 때가 곧 오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요즘 빅데이터라는 말을 듣지만(물론 나는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모른다), 빅데이터 환경에서 방대한 자료 처리에 대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둘째는 좀 더 엉뚱한 생각이다. 피아제는 유아의 성장·발달이 빠른 2년 반 동안의 종단적 관찰을 통해 지능의 발생과 발달에 대한 심오한 이론을 확립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급속도로 변천하는 현대 사회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아동 청년, 스마트 세대, 앱제너레이션의 발달을 ‘압축해’ 연구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또 피아제가 논리적 사고력이 완성되는 시기를 20세 전후로 봤는데, 그 뒤에 후기 형식적 조작(post-formal operation)이 가능하다, 즉 인간의 지력 발달이 유소년 때만의 특징적 현상이 아니라 평생의 발달 프로세스로 간주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미 등장하지 않았던가. 노년도 전생애에 걸쳐 발달한다는 것이다. 노인과 성년의 발달에 관해서 시각을 달리하면 성인발달과 노인발달을 종단적 연구의 한 영역으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방법론의 발전이 거듭되고 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런 환경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심각한 성찰이 요청된다. 방법론의 발전은 지식에 대한 또 다른 인식틀의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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