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5:30 (토)
듀이의 프래그머티즘 주목 … 각자도생에서 사회적 희망으로
듀이의 프래그머티즘 주목 … 각자도생에서 사회적 희망으로
  • 이유선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철학
  • 승인 2016.10.05 16: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깊이읽기_『사회주의 재발명: 왜 다시 사회주의인가』 악셀 호네트 지음|문성훈 옮김|사월의책|92쪽|18,000원

 

“듀이에 따르면 사회적 문제 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해결책을 탐색하는 데 규범적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지적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구성원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듀이가 이러한 협동적이며, 사회적 자유를 통한 상황 극복에 규범적 우월성을 두게 된 것은 멀리 자연철학적인 것에까지 이르는 깊은 사고 때문이며, 따라서 사회주의를 단지 도덕적 당위의 표현이 아니라 역사적 경향의 표현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이러한 사고는 사회주의의 수정이 뒷받침될 수도 있는 일종의 진화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외치며 사회주의의 종언을 선언했을 때, 필자는 광화문과 시청에서 수많은 군중 속에 섞여 군사독재 정권 타도를 외쳤던 철학과 대학원생이었다. 독재 정권을 타도하면 억압과 착취가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이 오리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졌던 어린 대학원생에게 사회주의가 망했다는 소식은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많던 강단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포스트모더니즘과 하버마스 연구자로 변신했다. 우애와 평등에 기초한 꼬뮌의 꿈은 ‘차이’에 대한 인정과 의회제도의 개선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마치 독재정권이 타도됐으니 이제 우리가 원하던 사회에 살게 되었다고 믿는 듯했다.

80년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세대의 자식들이 이제 성년이 됐다. 그리고 그 자식들은 各自圖生의 사회에서 살게 됐다. 이런 귀결은 사회주의의 종말이후 미래 사회에 대한 청사진 그리기를 중단하고 어떤 사회적 실험도 감행하지 않았던 기성세대의 업보다. 각자도생에 실패한 노인들은 평등하게 못살았던 독재시절을 그리워하며 쪽방에서 외롭게 죽어가고, 취업에 실패한 젊은이들은 창 없는 고시원에서 이른바 ‘흙수저’로 태어난 처지를 한탄하며 인생을 허비한다.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몽상가의 낭만으로 치부되고, 내가 살려면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 암묵적인 도덕규범이 돼버렸다. 이런 세상을 만들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의 공동의 목표에 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지런히 제도적 실험에 나섰어야 했다.

악셀 호네트의 『사회주의 재발명』(2015)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현실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응답인 동시에 우리가 상실한 사회적 희망에 대한 불씨를 제공하는 책이다. 호네트는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이 사회주의적 가치들의 몰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주의적 가치란 우리가 흔히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부르는 프랑스 대혁명의 구호로 천명된 가치들이다. 그에 의하면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자유, 평등, 우애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개혁하거나 혁명적으로 극복할 것을 꿈꿨던 사람들이다. 프랑스 혁명의 구호들은 자본주의를 통해서도, 그리고 아쉽지만 사회주의적 실험을 통해서도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사적 이윤을 위한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설정함으로써 평등과 우애를 희생시켰을 뿐 아니라 자유의 이념 자체도 위험에 빠뜨렸다. 누군가의 경제적 자유는 누군가의 경제적 부자유를 의미하게 됨으로써 자본주의적 자유는 자유의 확장이 아닌 자유의 제한을 가져온다. 사회주의적 실험은 자유의 문제를 아이러니하게도 자본가들처럼 경제적 영역의 문제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사적인 자율성이나 정치적 자유의 문제를 해결할 합당한 공간을 남겨두지 않았다.

자유, 평등, 우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호네트는 애초에 사회주의자들의 생각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원점으로 되돌아가 살펴보고자 한다. 프루동과 같은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시민 혁명의 기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깔려 있는 개인주의적 자유가 극복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개인적 자유의 요구를 연대적 공동생활이라는 전제와 결합시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고 그것을 구체화할 개념적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런 문제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 칼 마르크스였다고 호네트는 진단한다. 그는 마르크스가 구성원들이 사적 목표의 매개를 통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자기실현에 대한 염려를 공유하는 공동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시장경제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간의 의존성을 부정할 때 공유된 목표가 실현된다면, 마르크스가 구상한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에서는 구성원들이 의도적으로 서로를 위해 활동할 때 공동의 목표 실현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호네트에 의하면 사회주의의 시원적 이념은 연대적 공동체 모형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 자유가 타인을 통한 자기 보완으로 해석될 때 자유, 평등, 우애가 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사회주의의 문제는 연대적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경제적 활동 영역 안에서만 생각했다는 데 있다. 호네트는 초기 사회주의자들과 마르크스가 공유하고 있는 경제결정론을 과감히 버릴 것을 주장한다.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사회주의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혁명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도래의 역사적 필연성 등과 같은 낡은 개념들과 절연한다.

실천적인 이론이기보다는 규범적인 학문이 돼버린 마르크스주의적 교조들을 버리고 호네트가 끌어들이는 것은 흥미롭게도 존 듀이의 실험적인 정신이다. 호네트는 자유, 평등, 우애라는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사회적 자유’의 확장에서 찾고 있다. 사회적 자유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개인적 자유의 개념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 어휘다. 사회적 자유의 실현은 사회구성원들이 단지 ‘함께’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듀이는 일찍이 공동체 구성원의 개성을 실현하는 일과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이 상호 대립하지 않는 사회를 민주주의라고 일컬었다. 그가 세속 종교로 삼았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단 한 사람이라도 무의미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갈등과 대립을 야기하지 않는 듀이식 민주주의의 이념은 호네트에 의해서 ‘사회적 자유’라는 개념으로 되살아난 셈이다. 기존의 사회주의는 역사적 법칙성이라는 개념 때문에 사회적 자유라는 개념이 새로운 사회적 조건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실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듀이의 프래그머티즘은 사회주의가 간과한 역사적 실험주의로 넘어가는 통로를 제공한다.
호네트의 혁신된 사회주의는 사회적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 안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헤겔과 듀이의 전체론적인 사회유기체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주의란 외적으로 설정된 목표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 호네트는 사회주의가 향해야 할 것은 “개인적 자유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연대의 도움을 통해 이를 번성시킬 수 있는 사회적 생활양식”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활양식이 어떻게 실현가능한가 하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지만 적어도 호네트의 사회주의 재발명에 대한 주장은 우리가 아직 사회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고 일깨운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암울한 이유는 자본가의 탐욕, 정치인의 무능, 공무원의 부정부패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장애를 넘어서서 우리가 어떤 희망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지를 논의할 의사소통의 공간이 실종됐다는 것이 어찌 보면 우리를 더 절망에 빠뜨린다. 시장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사회적 자유의 경계를 확장시킬 제도적 실험이 절실한 때다.

이유선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철학  
필자는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버지지나주립대에서 Post-Doc을 했으며, 『사회철학』, 『리처드 로티』, 『로티의 철학과 아이러니』(공저) 등을 썼으며,  『철학의 재구성』,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공역)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