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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통해 낮선 존재와 조우할 미래
로봇 통해 낮선 존재와 조우할 미래
  • 송호림 부경대·영어영문학과
  • 승인 2016.10.0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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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_ 우리는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이 글은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가 발행하는 <영미문학페미니즘>(2016.9)에 게재된 「포스트휴먼 로맨스와 감성적 진화: 여성 과학소설로 본 테크노사이언스적 사랑의 의미와 욕망」(송호림)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셰리 터클은 자신의 책 『제2의 자아』(1984)에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컴퓨터가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될지, 사람이 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클의 주장은 테크놀로지가 인간 몸을 어떻게 변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로 인해 인간의 인식과 행동의 양식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에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렇듯 30여 년 전에 제기된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질문은 인류의 진화가 테크놀로지의 발전과는 분리될 수 없을 것이라는 가정, 즉 인류의 미래는 테크놀로지와의 공진화라는 포스트휴먼적 통찰을 내포하고 있다. 인공지능 전문가인 레비는 터클이 던진 질문의 시의성을 상기시키며, 그 질문에 대해 “인간은 로봇과 사랑에 빠지고, 로봇과 결혼을 할 것이며, 로봇과 성관계를 할 것”이라고 답한다. 로봇과의 사랑을 언급하는 레비의 대답은 일견 가벼워 보이는 농담 정도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레비는 인간의 성과 욕망에 대한 담론을 다룸에 있어 남과 여라는 오래된 이자적 성 구분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라는 제3의 존재를 삽입함으로써 인간의 인식과 행동양식이 테크노사이언스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주장한다.

레비가 로봇과의 감정과 욕망의 소통을 예견한 것은 테크놀로지가 사랑과 성, 또는 감정과 욕망 등 인간의 가장 고유한 것으로 인식됐던 부분으로까지 확대돼 인본주의적 인식체계에 커다란 변화, 즉 포스트휴먼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포스트휴먼의 시대란 로봇을 인류의 진정한 진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대다. 로봇과의 파트너십을 사랑이라는 육체적, 정신적 교감의 가능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포스트휴머니스트들과 과학소설 작가들은 이제 테크놀로지의 영향력이 물리적 영역을 넘어 인류의 감성과 욕망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브라이도티가 “과학소설은 성적 변형과 돌연변이에 대한 것”이라고 단언하며 그 속에서 함의하는 것은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욕망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음은 물론 더 나아가 테크놀로지에 의해 변형된 인간의 욕망이 인류의 진화를 예견치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다. 특히 여성 과학소설가들은 테크놀로지가 가져올 변형, 또는 변화의 가능성 속에서 성과 욕망에 대한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역할에 주목하고 여성의 성을 비롯한 억압 되어온 타자의 욕망을 재담론화하는 데 기여해왔다.

여성 작가들이 여성과 테크놀로지를 조합함에 있어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구현해 온 로맨스 내러티브를 도입하는 것은 사랑의 개념에서 오늘 날 테크노사이언스가 강조하는 상호연결성과 상호영향성의 힘, 즉 창조적 변형의 힘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사랑을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정의한 이래, 사랑은 탈물질적이고 초월성을 가진 숭고한 가치로서 인간의 정신적 추구점이 돼왔다. 전통적 로맨스 내러티브는 이러한 사랑의 오래된 가치를 재현하면서 여성에게 육체적 욕망과 쾌락을 삭제하고 남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존재가치만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여성 과학소설 로맨스 작가들은 그러한 고전적 사랑의 개념이 수리적이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상호연결성과 상호영향성을 생성해 낼 수 있는 현대 테크놀로지와 조우할 때, 그래서 사랑이 육체성과 쾌락을 포함할 때, 로맨스가 더욱 창의적이고 해방적 역량을 가질 수 있음을 이해한다.

이런 점에서 여성 과학소설 로맨스 작품 속 인간과 로봇 사이의 로맨스는 테크놀로지와 물리적이고 감성적인 공진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여성 과학소설 로맨스 장르는 테크노사이언스와 공진화하는 인류의 진화를 낙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실제로 섹스머신의 대중화와 인간과 외형적으로는 구분이 거의 되지 않는 로봇들의 등장, 그리고 인간의 감정과 유사한 반응이 가능한 인공지능의 연구들은 인간과 로봇의 사랑이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 과학소설 로맨스 장르가 그리는 로봇과의 사랑이 가능한 포스트휴먼적 미래는 결국 사랑으로 표현되는 상호연결성과 상호영향성의 힘으로 현재 타자들의 억압에 대한 미래지향적 문제 해결안이 될 수 있다. 즉 여성 과학소설 로맨스는 로봇과의 사랑을 통해 낯선 존재들과 연결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아가는 것을 포스트휴먼의 진화의 윤리로 제안함으로써 급변하는 테크노사이언스 환경 속에서 “모든 이가 자유롭고 충만하게” 살아갈 긍정적 미래를 기대한다.

송호림 부경대·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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