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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한국 회화사 연구』 (시공사 刊) 펴낸 안휘준 서울대 교수
[저자 인터뷰]『한국 회화사 연구』 (시공사 刊) 펴낸 안휘준 서울대 교수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2.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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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의 생명은 객관적 논증의 철저함"
 

여기 한 사람이 있다. 회갑을 맞은 해, 세 권의 전공서를 출간한 학자. 그것으로 스스로 저술작업의 한 단계를 마무리 지었다면서, 앞으로 두 단계를 더 진행시킬 것이라 말하는 60대의 교수. 지난해 ‘한국 회화사 연구’를 출간하면서 ‘한국 회화의 이해’(시공사, 2000), ‘한국회화사’(일지사, 1980), ‘한국 회화의 전통’(문예출판사, 1987)과 함께 4부작을 완성한 안휘준 서울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가 그 주인공.

안 교수는 한국 회화사의 독보적인 존재이다. 회화사 자체가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진 학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회화의 역사를 그만큼 통찰하고 있는 학자도 없다. 그는 식민사관에 의해 18세기에 머물러 있던 한국 회화의 기원을 고구려 벽화에서 찾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회화를 화풍의 변천에 따라 4기로 구분하고 있다. 또한 회화를 통해 한국인의 미의식을 규명하고, ‘조선왕조실록’에서 서화에 관한 기록을 추려 집성한 ‘조선왕조실록의 서화자료’를 출간하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안 교수의 연구는 광범하다.
자연히 안 교수의 저서들은 각론보다 개론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그는 가령 이런 현실에 늘 직면해왔다. “전문가가 희소하여 회화에 관한 글들을 시대나 주제를 불문하고 도맡아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어려움은, 안 교수의 표현처럼 “마치 초석을 놓고 골격을 짜는 것”과 같았다. 학위논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당시 한국 미술에 대한 공부는 독학과 진배없었습니다. 한국 회화사 전문가가 없었고, 나도 그것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개론서 쓰기도 어려울 만큼 선행연구나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더구나 박사논문을 쓸 수 있을지 전혀 확신이 없었습니다. 결국엔 운명을 걸고 써보자고 마음먹었지요.”

‘한국 회화사 연구’가 사상사·사회사와 미술사의 관련성에 주력할 수 없었던 것도 그런 탓이 크다. 지난 10여 년간 미술사에서 보이는 사회사적 측면에 관한 연구가 활발했지만, 기록이 풍부하고 남아있는 작품들이 많은 중국이나 서양미술사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고 안 교수는 전한다. 그러나 자료부족과 더불어 안 교수의 실증적이고 꼼꼼한 연구성향도 한몫 한다. “순수미술품의 경우에는 거기서 사상성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가령,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이루어진 배경에는 성리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참신하고 그럴 듯하지만 꼬집어보면 입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자칫 잘못하면 견강부회, 아전인수격으로 결론을 낼 가능성이 많은 것이죠. 미술사와 사상사, 혹은 사회사와의 관련성은 철저하게 객관적인 논증을 거쳐 누가 보더라도 무리가 없는 결론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미술사는 예술과 역사를 이어주는 가교이다. 안 교수는 미술사를 하게 되면 문화와 역사를 폭넓게 보게 되며 안목도 높아진다며 전공에 대한 애정을 털어놓는다. 한국 회화사도 초창기의 어려움은 벗어났고, 이제 미개척 영역이 무진하게 펼쳐져 있다 한다. 그러나 미술사가로서 개인적인 취향은 금물. 안 교수는 그림을 볼 때 예술성과 사료성을 함께 본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편의 그림을 대하게 되지만 호불호를 뚜렷하게 가지고 있으면 곤란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좋아하지 않는 그림이라도 역사적 의미가 있다면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 “특별히 어떤 화가, 어느 작품을 좋아하는 것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애정이 가는 그림은 있지요. 이암의 ‘화조구자도(話調拘子圖)’는 화날 때 들여다보면 화가 풀어집니다, 이상하게도.” 출판사의 배려로 이암의 작품은 ‘한국 회화의 이해’에 표지가 됐다.

‘가지 않은 길’을 택했던 초기학문의 연구자로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안 교수의 방식은 공동작업이다. 학문적인 패거리 문화를 혐오하는 마음에 학회나 잡지도 만들지 않는 대신 후배들과 학생들에게 학문적 경험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는 지난 1998년 ‘한국의 미’시리즈를 저술할 때도 후배들에게 도판해설을 맡기고 감수했다고 한다. 현재 미술사에 출중한 신진연구자들이 속속 배출되는 것도 안 교수의 이런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에서도 10년 이상 나 혼자 미술사를 가르치기도 했지요. 내게 사고라도 생기면 서울대에서 미술사가 그냥 무너져 내리는 때가 지속되었습니다. 지금도 후배교수들에게 사고라도 날까봐 굉장히 마음이 쓰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너무 소중합니다. 어떤 훌륭한 예술가나 학자는 그 사람이 없으면 도저히 안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한사람이 있음으로써 그 분야가 버티고 중요한 업적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학문적으로 영세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미술사하는 사람들 각자가 자중자애해야 합니다.”

한국 미술사는 오랫동안 제도적으로 푸대접 받아왔다. 건강한 학문풍토를 위해서라면 타학문에 대한 초학제적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안 교수의 당부의 말에서는 신생학문을 홀대하는 학계에 대한 아쉬움과 하나의 학문영역을 어렵사리 일궈온 한 학자의 인생역정이 엿보인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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