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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하는 사회
강요하는 사회
  •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승인 2016.10.0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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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설한 편집기획위원

유난히도 길었던 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과 함께 성큼 가을이 찾아 왔다. 새 학기 개강 한 달여를 맞는 10월의 대학 캠퍼스. 낙엽이 한잎 두잎 쌓여가며 초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지만 설레는 청춘들의 행복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취업난과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활기 잃은 대학가는 가을의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다. 캠퍼스의 낭만을 뒤로한 채 치열한 경쟁 속에 각박함만 남았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란 획일적 목표를 좇도록 가르침을 받아온 우리네 청춘들은 무의식적으로 출세와 성공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의 자율적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와 사회가 강요한 꿈이었다. 나의 목표와 역할은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좋고, 남에게 내세울 수 있고, 내가 돋보이는 것이어야 했다. 그 보이지 않는 꿈에 나 자신과 부모, 사회 모두는 매일매일 목을 매단다.

강요된 꿈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와는 점점 멀어지고, 강요된 꿈은 서서히 목을 죄어온다. 취업이라는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며 마침내 자괴감과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꿈이 이렇게 현실을 힘들게 하고,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결국 부모와 사회가 강요한 꿈으로 인해 ‘나’라는 존재는 사라진다.

우리 사회만큼 꿈과 열정과 자기계발을 강요하는 곳이 또 있을까. 나름 성공한 극소수의 유명인들은 ‘꿈꿔라, 도전하라, 경험하라’고 연신 외치며 꿈꾸는 청춘을 찬양한다. 국가는 희망고문과도 진배없는 극소수의 성공스토리를 펼쳐놓는다. 하지만 꿈을 부추기면서도 실업난 해결에 무능한 국가와 그 꿈을 이루고자 달려드는 청년들을 교묘하게 착취하는 현실은 젊은이들을 더욱 좌절시킨다.

결국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는 것만이 지상과제가 될 수밖에 없고, 그 당연한 결과는 스펙 쌓기에 목숨을 거는 현실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차별과 억압을 용인한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희박한 성공의 가능성에 더욱 기대게 되고, 스스로 자본주의 전사가 된다. 새로운 신분제를 향해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은 갑과 을의 약육강식 사회가 됐다. 모든 청춘이 갑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 살벌한 사회에서 그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고 있다.

꿈과 이상적인 삶을 상품처럼 찍어내듯 정형화시키는 우리 사회는 꿈과 열정, 자기계발에 대한 강요로 차고 넘친다. 강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의 집단적 폭력이다. 폭력적인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강요된 자기계발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에게 평가받을 나의 상품성을 개발하는 것이다.
 
진리탐구를 위한 창조적 발상과 비판적 사고의 산실이어야 하는 대학은 기업화된 인력양성기관,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해 이에 일조하고 있다. 시장논리가 대학교육에 확산되면서 젊은이들은 산업사회의 획일화된 비즈니스 전사로 길러지고, 완벽하게 경쟁에 최적화되고 있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주체적 사고는 사라지고 주입된 지식과 가치만으로 무장한 채 강요된 꿈을 마치 자신의 것인양 착각하며 뒤쫓고 있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도 다른 사람의 평가와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의 나의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대부분은 진정한 자신이 되지 못하고 늘 사회의 기대치와 비교하며 커져가는 괴리 속에서 패배감에 사로잡혀 자존감을 잃어간다. 언제까지 남이 보는 나를 더 중요시하고, 부모와 사회가 규정짓고 바라는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언제까지 남의 눈치를 보고, 자기검열을 하면서 스스로를 속박할 것인가.

꿈은 마음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미래다. 꿈과 그 꿈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사회적 자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우리의 자유로운 꿈을, 그리고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긍정적 미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슴에 자신의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즐겁게 한다.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는 일어나 꿈을 향해 달려갈 테니까.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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