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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기강의 와해
국가 기강의 와해
  •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 승인 2016.10.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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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오늘날 동북아의 국제적 정황이 100여 년 전과 비슷함은 다 아는 사실이다. 주변 강대국 중에 무력을 바탕으로 박해 수준의 위협을 가함에는 패권 성향을 새삼 확인케 된다. 강국들의 압박 속에 있는 우리의 급선무는 ‘국민 총화와 자강화’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정반대니 마음 편할 수가 없다. 분열과 갈등에다 부패로 인한 기강해이가 특히 문제다. 급선무는 만연한 ‘부패의 척결과 그 방지’다.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이 준법정신 박약으로 지탄받고, 법 이전의 도덕차원에서부터 모범이어야 할 교육자와 언론인이 치욕의 나락에 직결된 부정 불법을 자행하며, 이름마저 법조인인 변호사 검사 판사가 가공할 범법으로 나라를 뒤흔드는 상황은 국가 기강이 송두리째 와해되는 형국이다. 국민들은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범죄자 다수가 속칭 명문대 출신인 데는 절로 아연해진다. 이 끔직한 현상의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교육자로는 주요원인을 ‘교육의 실패’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교육이 人材의 양성인 터에 이토록 경악케 하는 인물들 대다수가 이 나라 최고의 인재(?), 엘리트인 양하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부터 우리는 공복인 관료를 입신양명의 길로만 오인했고, 광복 후에는 지각없이 物神 金神에 현혹돼왔다. 일제하에서 주체성을 상실한 채 추구하던 개인 영달 태도를 반성할 사이도 없이, 모든 것을 물량과 자본으로 환산 처리하는 서구화에 매몰됐었다. 문제의 근원은 ‘가치관의 불건실’이다. 가치관의 부실이 가장 큰 원인임에도, 그동안 우리는 ‘건실한 가치관의 교육’에 눈감았던 꼴이다. 증거를 들자.

근대화 사조에서 우리는 ‘봉건요소 타파’의 구호에 온정신을 빼앗겨, 전통속의 미풍양속과 예절 및 보편적 선의식마저 얕잡는 과오를 범했다. 교육은 그 과오에 제대로 손쓰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의 학정에 적응하던 ‘보신 위주의 처세술’은 약삭빠른 이욕 충족일 뿐, 민족 공동체를 위하는 길과 동떨어진 행태였음을 일깨워, 그 시정의 교육을 하지 않은 것도 큰 실수다. 근대 서구철학의 ‘욕구체적 인간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드려 ‘이기주의’를 당연시하는 착각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어설픈 실용주의마저 밀려와, ‘나만 알고’ ‘내 욕망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이기의 풍조를 증폭시켰다. 이는 교육철학의 실패다. 산업화의 급진전으로 혈연사회의 이익공동체사회로의 변혁, 그에 수반된 핵가족화, 가족관의 변이, 및 사회와 국가에 대한 ‘공동체의식 희박’에 유효하게 대처하는 슬기가 없었다. 가정교육 사회교육 국가의 공교육 모두가 비정상이었다.
 
가치관의 혼란·혼돈이 따로 없다. 그것은 위와 같은 ‘부실한 교육’을 방치한 우리 삶의 불건전에 말미암은 필연적 결과다. 교육전반이 부실하다 보니, 결과는 자칭 최고지식인마저 인간 이하의 오물로 타락했다. 간지에 불과한 지식만 앞세우고 ‘덕성과 지혜’가 결여된 인간이다 보니, 결국 범법 중에도 대형범죄를 저질러 자신의 인생을 헛되게 하고, 국가 사회에까지 위해를 끼쳤다. 국가의 기강이 이처럼 와해되면, ‘망국의 결과’가 기다릴 뿐이다. 망국에 미소 지을 것은 어느 나라이겠나? 서두에서 100년 전의 동북아 정황을 떠올린 까닭이 이에 있다.
 
난국을 타개하고 우리 미래를 굳건히 헤쳐 갈 문제의 해결책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 해답은 ‘건실한 가치관의 창출’이다. 물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치밀하고도 깊은 사색을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시급한 대로 얼개만은 고려할 수 있다. 곧 진실, 정직, 순수, 선의지, 미의식, 등을 존중해야 한다. 자유 평등 박애 같은 보편적 이념, 및 생명존중 덕성확대의 지혜로운 덕목들을 실천해야 한다.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 판단되는 행위를 지향하며, ‘정정 당당하게 사는 태도’를 높이 사야 한다. 불로소득의 꿈을 버리고, ‘땀에 젖은 노력’을 값지게 여기는 풍조를 크게 일으키되, 그 노력이 ‘미래 지향적이고 창의적 사고’를 뒷받침하는 성향으로서 忍苦를 이겨낸 것일수록 값지게 여김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더불어 도와가고 서로 아끼는 ‘이타적 사랑과 의로운 행위’로 인간을 존귀하게 하여, 마침내 ‘인간답게 사는 삶’을 가장 값지게 치는 ‘가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그 얼개이다.

이 길에서라야 나라가 굳건해지고 모두가 행복하게 될 수 있다. 기강확립에서 나라가 건실해짐을 안다면, 그 기강확립에는 바른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음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바른 교육이란 곧 건실한 가치관의 실천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가 명심해야겠다.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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