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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와 코엔 사이에서
루소와 코엔 사이에서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6.10.0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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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박아르마 교수

외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대학원에 진학해 전공을 정할 때 일반적으로 특정한 작가와 그의 작품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전공할 작가를 선택하는 기준은 나름대로 있겠지만 대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연구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바람일 것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는 문학사에서 혹은 대학과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보통이다. 반대로 통속작가는 아니더라도 대중작가라고 평가받는 사람을 굳이 선택해 연구를 하려는 전공자는 드물 것이다.

명망 높은 작가를 선택해 연구를 하면서 얻는 장점은 셀 수 없이 많다. 우선 작가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작품성에 대해서는 거의 의심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런 작가들은 연구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보니 참고할 자료도 많다. 심지어는 연구재단의 번역지원 사업이나 연구과제 공모에 지원할 때도 이른바 ‘후광효과’를 알게 모르게 얻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명확한 증거를 대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외국문학 전공자로서 번역을 위해 명작이나 대중적이라고 평가되는 책을 선택할 때도 후광효과를 얻을 것인지 아니면 다양성을 추구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현실적으로는 순수문학이나 인문학 영역에 속하는 책을 번역하는 대학의 연구자가 있고 대중문학이나 실용서를 번역하는 전문 번역가가 존재하는데, 업계의 관행인지 두 영역을 넘나드는 번역자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대학에 있으면서 실용서까지 번역할 여유는 없지만 대중문학이라고 치부되는 책을 번역할 때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을 하게 된다.

장 자크 루소의 『고백』을 번역하면서는 인문학자로서의 사명감이 없었더라면 적은 번역료에도 불구하고 2년 넘는 시간을 쏟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거창한 의미부여를 할 수 있었다.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의 『녹색광선』을 번역하기로 결정하기까지는 의미부여에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티에리 코엔의 『나는 미치광이였을 뿐이다(Je n’?tais qu’un fou)』를 최근에 번역하고 나서는 문학 연구자로서 번역의 정당성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더 고민하게 됐다. 아울러 대중소설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들기도 했다.

학문적 선별 기준을 떠나 대개 대중소설로 평가받는 책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대중소설은 평론가의 비평 대상이 되는 경우가 드물다. 대학의 연구자들도 다루지 않기 때문에 관련 논문도 거의 없다. 글의 형식적 측면에서는 단문 중심이고 묘사는 길지 않으며 대화가 빈번하게 나오고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만 베스트셀러에 속하는지 여부를 대중소설의 판단 기준으로 삼기는 다소 어려울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파트릭 모디아노 같은 작가의 작품이 그의 노벨상 수상 전에도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에 오른 일이 있고 최근 조정래 선생의 신간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쥘 베른의 경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소설이고, 많은 독자들이 어린 시절 요약본을 통해 그의 작품을 읽었고, 주제가 ‘공상과학’이나 ‘경이로운 모험’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대중소설로 간주됐기 때문에 ‘낡은 신화’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그 의미를 묻지 않는 작품이 돼버렸다. 그가 과학기술문명의 미래를 낙관적으로만 보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도 그의 소설들이 특정한 목적성을 위해 기획됐다는 지적으로 이어지면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평가절하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그는 『녹색광선』에서 자연과학의 시각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과학자를 조롱하고 희화화할 뿐 아니라 ‘핑갈의 동굴’과 같은 자연을 시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아름답게 묘사하기도 한다.

티에리 코엔의 등장인물인 소설가 사무엘 샌더슨은 페이스북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의견을 소설에 반영하기도 한다. 그는 이른바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작가다. 또한 그는 에이전트와 홍보담당자,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이뤄진 미국의 출판 시스템에서 벗어나 “마케팅 대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작가다. 나는 대중소설의 등장인물이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고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해 이처럼 진지한 성찰을 드러낸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최근에 대중소설로 평가받는 두 작품을 연달아 번역하고 나서 대학에 속해 있는 연구자로서 나름대로 정당성을 찾다보니 말이 길어졌다. 번역후기를 쓰려다가 내친김에 논문까지 써서 학회에 투고했다.

다만 대중문학으로 부당하게 평가받는 작품이 있고 양서 읽기도 바쁜 세상에 굳이 시간을 내어 읽을 필요까지 없는 책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번에 번역한 작품들을 통해서는 세간의 평가만을 믿었다면 미처 보지 못했을 문학성과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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