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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의 언어를 보면 그들의 ‘국가’가 보인다
아프리카 대륙의 언어를 보면 그들의 ‘국가’가 보인다
  • 교수신문
  • 승인 2016.09.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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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아프리카 아이덴티티』 앤드류 심슨 지음|김학수·김현권 옮김|지식의날개|570쪽|38,000원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 특히 아프리카와 같은 복잡한 다언어 사회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의 원제는 Language and National Identity in Africa(Oxford Univ. Press, 2008)이다. 이 책은 아프리카 대륙의 언어 상황을 개괄하면서 주요 국가의 국민통합과 발전과정에서 언어가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또는 하고 있는지를 다룬다. 국가발전에 미치는 언어의 영향이 무엇인지를 정치, 경제, 산업, 문화, 사회, 종족, 성, 교육, 이데올로기 등의 다각적인 측면에서 되짚어 보고 있다. 한마디로 아프리카 여러 국가가 독립 후 근대화 과정에서 언어가 갖는 힘의 역학관계를 다룬다.


세계화를 맞이해 두 가지 상반되는 힘이 작용한다. 하나는 민족적·국가적 구심력과 이주와 이동, 교류와 접촉, 교통과 통신의 발달, 체제 개방으로 인한 원심력이 충돌한다. 그리하여 영토, 종족, 언어, 문화, 공통 가치, 신념체계에 기반을 둔 전통사회가 자본, 상품, 교육, 직업, 비즈니스, 다언어, 다문화 기반의 근대사회로 변신하면서 정체성의 위기가 생겨난다. 이른바 다중 정체성의 혼란이 생겨난다. 일정 사회 내에서 형성된 문화 속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인종적·민족적·국가적인 집단의 정체성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다. 특히 언어는 사회적 현상(fait social)으로서 이 집단 정체성(identity)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오늘날 많은 경우, 언어와 국가 정체성은 동일시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경우, 국가보다는 민족 정체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민족보다는 종족적 정체성이 우위를 차지한다. 아프리카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아프리카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인이다. 왜냐하면 아프리카는 우리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C. Higgins, Jr.). 인종, 종족, 부족, 민족, 국민의 어느 정체성 개념을 가지고 있는가? 이 정체성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아프리카에는 적어도 54개국에 12억 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이들은 2천700여 종족으로 구성돼 있다. 언어는 약 2천138개(ethnologue.com)로 전세계 언어 6천906개의 30%를 차지한다. 평균하면, 국가당 약 40개의 언어와 언어당 5만6천여 명의 화자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사례를 보면, 나이지리아는 인구가 약 1억8천150만 명 이상이고, 500여 종족이 514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인접한 카메룬은 인구가 약 2천370만 명이고, 약 250여 종족이 278개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종족 집단과 언어 집단은 대개 일치하며, 종족명은 언어명과 일치한다. 이처럼 엄청나게 다양한 종족들이 ‘한 국가’의 국민을 이룬다. 이들에게 국가 정체성이 존재하는가? 만일 존재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정말 정의하기가 어려워진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럽열강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했고, 종족 집단의 정체성은 무시당한 채로 국경은 자와 컴퍼스로 획정됐다. 국가 영토 형성, 전쟁과 내전, 국내외 강제이주와 도시화로 이주자와 유민들이 대량으로 발생하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종족 정체성은 민족 정체성의 틈새에서 국가 정체성과 충돌한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한국과 같이 단일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없다. 토착어가 무수히 많으나 거의 모든 국가가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와 같은 식민 지배국의 언어를 독립 후에도 국가 공식어로 사용한다. 그러나 열악한 교육 여건 때문에 이러한 외래 공식어를 모어처럼 구사할 수 있는 인구 비율은 높지 않다. 반면 대부분의 아프리카인은 토착 모어와 지역의 아프리카 교통어(lingua franca)를 일상에서 사용한다. 학교에서 토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공식어로 교육하며, 상급학교로 갈수록 아예 공식어로만 교육이 이뤄진다.
아프리카인은 적어도 3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언어는 곧 생존 전략의 하나다. 가정의 언어, 지역과 지방의 언어, 교육의 언어, 직장의 언어, 도시의 언어, 사업의 언어, 국가의 언어, 공식어, 국제관계의 언어 등 각자 자신의 생존 전략과 더불어 지리적·사회적 각 영역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이용한다. 많은 국가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는 공식어와 교육 언어로서 기능하며, 과학과 기술의 언어, 비즈니스와 국제관계의 언어다. 말하자면 사회의 상층어 역할을 한다. 스와힐리어와 하우사어 같은 거대 토착어는 광역 지역에서 사용되는 의사소통어(교통어)다. 그러나 토착 소수어도 여전히 생명을 유지하는데, 그 이유는 이 토착어들이 오랫동안 그 사용자의 종족과 개인 정체성을 표시해 주는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가치체계, 신조, 종교, 종족 정체성과 집단의식을 가능케 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며 오래된 구전의 역사를 갖는 토착어는 사회의 하층어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국가가 근대화, 산업화로 개발이 이뤄지고, 도시화로 인한 인구 집중, 문맹 탈출을 위한 교육, 지방간 거래와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종족들이 접촉하고 섞이면서 토착어는 설자리를 잃고, 종족적 정체성도 소멸돼 간다. 더욱이 질병, 영양, 건강 등으로 인한 평균 기대수명이 50세를 넘지 못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젊은 세대가 인구 기반이 돼 있는 까닭에 전통사회의 붕괴 속도는 더욱 빠르다. 유네스코는 언어와 문화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소멸 위기의 언어를 본존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이 책은 아프리카 54개국 중 각 권역의 19개국의 언어 분포와 사용 양상을 저명한 언어 전문가가 상세히 개괄한 편집서다. 북북 아프리카의 이집트, 모로코, 수단, 서부 아프리카의 세네갈, 말리, 시에라리온, 나이지리아, 가나, 코트디부아르, 중부 아프리카의 카메룬,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아프리카의 케냐,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아프리카의 뿔, 남부 아프리카의 잠비아, 남아공에 이르기까지 권역별로 중요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망라돼 있다. 장마다 해당 국가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고, 현재의 언어 분포와 언어 사용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쉽게 설명한다. 각국의 언어 분포 현황, 주요 언어와 교통어, 언어 상황의 관계, 언어 지위, 언어 정책 및 계획, 다언어주의, 언어와 정체성, 언어 태도, 언어 선택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주제가 다양하다.


사회는 언어를 매개로 움직이므로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 특히 아프리카와 같은 복잡한 다언어 사회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에 접근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유익한 참고서다. 한국은 단일어만 사용되는 극히 예외적으로 단순한 언어 상황이고, 언어 동질성이 아주 큰 사회지만, 반세기 넘게 단절된 채로 이질적 가치체계와 이데올로기, 정치 및 경제, 사회 문화가 반영된 북한의 언어와 만난다면 통일시대에는 어떤 국가 정체성이 생겨날지 궁금하다.

김현권 한국방송통신대·불어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하고, 파리7대학 박사과정(DEA)을 수료했다. 2002년에는 파리13대학 전산언어학연구소에서 1년간 연구했다. 번역서로는 에밀 뱅베니스트의 『일반언어학의 여러 문제』,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노트』(공역), 『일반언어학 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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