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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입의 '떼루와'가 필요하다
감정이입의 '떼루와'가 필요하다
  • 손정락 전북대 명예교수·심리학
  • 승인 2016.09.2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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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손정락 전북대 명예교수·심리학
▲ 손정락 명예교수

최근 행동치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수용전념치료에서 화적 메타포의 활용과 감정이입(empathy)을 위한 하이쿠와 시조의 활용이 연구 화두다.

왜 감정이입이 연구의 화두가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감정이입을 해야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으며, 인류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Hans Kohut은 “사람들이 산소가 없는 대기 속에서 신체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감정이입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심리적 환경에서는 심리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고 하여, 자신과 타인을 파괴로 이끄는 심리적 산소의 박탈로 비유했다. 오늘날 개인적 갈등·분노·정신장애 문제· 대인관계·학교 폭력·성폭력 등 국제문제까지 광범위하게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심리치료 분야에서는 감정이입을 위한 수용, 거리두기(한 발 물러서서 보기), 자기자각(메타 인지) 등은 수용전념치료에서 마음 챙김의 목표일뿐만 아니라 치료자와 내담자 모두가 감정이입을 함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모카신을 신고, 자기가 걷던 길을 걸어보아야 한다”는 인디언 속담이 있는데, 감정이입의 필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Carl Rogers는 감정이입을 심리치료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는 진정한 감정이입은 수용되고 이해받는다고 느끼며, 궁극적인 성장이 일어나는데 필수적이라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감정이입 구성개념의 번역에 대한 한 가지 주장과, 이어서 감정이입을 위한 창조적 글쓰기로서의 하이쿠와 시조 활용을 피력해 보려고 한다.

감정이입은 독일어 Einfuhlung (Ein은 영어의 in, Fuhlung은 영어의 feeling)에서 나왔고, 이는 그리스어 Empathos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는데, ‘들어가서 느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말로 옮길 때에 공감이 아니라 감정이입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뜻이 더 잘 전달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옳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어린아이를 감정이입할 수 있으나, 어린아이는 공감이나 동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독일의 Iirina Prekop은 어린아이에게 감정이입을 기대하기는 아직 무리라고 하면서, 공감은 감정이입보다는 낮은 발달단계에 속한다고 했다.

그런데 감정이입은 우리가 타고 나지만, 배려의 감정이 감정이입으로 발전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퇴화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심리학자 Daniel Goleman의 감성지능 개념의 발달 주장과 유사하다. 우리 문화에서 전통적으로 있어왔던 태교도 감정이입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어머니는 아기에게 생물학적인 거울역할을 한다고 한다. 거울 뉴런이 있더라도 이것이 발달하는 많은 요인이 있으며, 이를 도와 줄 수 있는 심리학적 기법이 또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포도주의 맛을 결정해 주는 것을 ‘떼루와’라는 표현을 한다고 한다. 즉, 포도주의 맛은 기후, 토양, 온도, 습도, 정성 등 떼루와가 만든다는 것이다. 더 나은 인류의 발달에도 감정이입의 떼루와가 절실하다.

필자는 감정이입이 모든 인간관계와 심리치료자와 내담자에게서 반드시 함양돼야 한다는 것을 최근에 한층 더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타인을 감정이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창조적 글쓰기인 하이쿠와 시조 짓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2015년 1학기 15주 동안에 임상심리학 전공 대학원생 22명에게 감정이입을 위한 하이쿠를 매주 두 편 정도를 쓰게 했더니 유의한 효과가 있었는데, 이를 앞으로 시조에도 확대해 볼 생각이다. 일반인들을 위한 감정이입을 위해서도 이러한 방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더 탐색해 보려는 것이다.

정년퇴임을 했으니, 대학 바깥에서도 나의 전공으로 봉사할 기회를 가져보려고 한다. 정년퇴임 식장에서 대표로 정년사를 한 바와 같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를 발휘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손정락 전북대 명예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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