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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조력자에서 작품의 경험 실체로 ‘우뚝’ … 아내를 알면 작품이 보인다
단순 조력자에서 작품의 경험 실체로 ‘우뚝’ … 아내를 알면 작품이 보인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9.19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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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아내들, 그들은 어떤 존재일까
▲ 수화가 그린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61×41cm, 캔버스에 유채, 1956). 이 작품 속 여인의 모습과 김향안의 초상을 보면 쉽게 그 친연성을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단순한 화가의아내 이야기가 아니란 데 있다.
특정 화가의 작품과 아내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말이다.

화가의 아내는 어떤 존재일까. ‘연인’이라면 당연 로맨틱한 분위기를 떠올리겠지만, ‘아내’라고 하면 뭔가 나날의 삶과 대결하는 고단한 모습이 연상된다.

지난 8일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아내」(감독: 사카이 아츠코┃주연: 야마모토 마사코, 야마모토 야스나리)는 그런 화가의 아내를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조명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고 이중섭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작된 이 작품에는 ‘이중섭’이 주인공이 아닌, 아내 남덕(이중섭이 지어준 한국 이름. 야마모토 마사코)과 그의 아들이 남편과 아버지를 떠올리며 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중섭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열렬한 사랑을 담곤 했다. 이중섭 화백의 기일일 6일 방한한 사카이 감독은 한국 관객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화백이 야마모토 여사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남편으로부터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편지를 받았던 그가 어떤 사람일지 알고 싶은 마음에 연출을 맡게 됐다”고 밝혔다. 감독의 시선은 화가로부터 ‘사랑 넘치는’ 편지를 받은 화가의 아내가 누군지를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과연 화가의 아내는 어떤 존재일까. 조금 오래됐지만 이 물음에 적절한 답을 제시하는 책이 있다. 17세기 렘브란트부터 밀레, 로세티, 마네, 세잔, 모네, 르누아르, 고갱, 보나르, 마티스, 피카소 등을 거쳐 20세기 와이어스에 이르는 열아홉 명의 화가와 그들을 탄생시킨 숨은 공로자, 아내들의 삶을 소개한 사와치 히사에의 『화가의 아내: 위대한 예술을 내조한 화가들의 아내 이야기』(변은숙 옮김, 아트북스, 2006)다. 이 책은 화가의 화려한 명성 뒤에 가려 있던 아내들의 이야기와 함께 각각의 화가들이 그린 아내의 초상을 감상할 수 있게 안내한다.

▲ 화가 그린 김향안 초상 ⓒ 이상기

흥미로운 것은 단순한 화가의 아내 이야기가 아니란 데 있다. 특정 화가의 작품과 아내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르누아르 특유의 포동포동한 여성상이 그의 아내인 알린의 체형에서 비롯된 점이나, 보나르를 대표하는 누드화가 자주 씻는 버릇을 가진 아내 마르트를 향한 사랑에서 탄생한 점, 모네의 두 번째 아내 알리스가 모델을 집 안에 들여놓지 못하게 엄포를 놓아, 모네가 후기에는 주로 풍경을 그리게 됐다는 일화 등은 아내들이 화가의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정필주가 쓴 『화가의 빛이 된 아내: 우리 화가를 키워낸 열 명의 아내 이야기』(아트북스, 2006)는 제목처럼 ‘우리 화가’의 아내들을 조명했다.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 김기창의 아내 박래현, 이응노의 아내 박인경, 하인두의 아내 류민자, 문신의 아내 최성숙, 박수근의 아내 김복순,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 장욱진의 아내 이순경, 박길웅의 아내 박경란, 양수아의 아내 곽옥남의 삶을 조명했다. 특히 책이 쓰여진 2006년 현재 생존해 있는 아내들과 직접 인터뷰(7명 중 5명, 류민자, 최성숙, 이순경, 박경란, 곽옥남)해 화가와 작품세계에 대한 실감을 더했다.

이 모든 게 화가의 아내라는 특수한 ‘자리’에 빛을 비쳐준다. 사와치 히사에와 정필주의 책을 관통하는 ‘화가의 아내’들은 긴 세월을 화가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남편의 버팀목이 되는 존재다. 때로는 뮤즈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생활인으로 곁에서 화가를 내조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과연 그럴까. 수화 김환기(1913~1974)의 아내 김향안(1916~2004) 여사는 그림자처럼 남편을 내조한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환기미술관이 지난 8월 30일부터 오는 10월 23일까지 선보이는 「더 뮤즈, 김향안의 이야기」展은 일단 ‘제목’만 보면 화가에게 아내란 어떤 특별한 상상력의 근원이 되는 ‘뮤즈’임을 쉬이 알 수 있다.

시인 이상과 결혼했지만, 이상의 요절로 홀로 된 변동림은 전 부인과 사이에 이미 딸 셋을 둔 김환기와 재혼했다. 이름도 변동림에서 김향안으로 바꿨다. 김환기는 아내에게 자신의 아호 ‘향안’을 주고 대신 수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남은 생을 수화를 위해 살았던 김향안 역시 남편과 마찬가지로 화가였다. 김환기 사후에는 환기재단을 설립하면서 미술관을 세워 김환기의 예술혼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했다.

▲ 김종영이 드로잉한 「부인」(42×58㎝, 종이에 파스텔, 1949).

대중적으로 문필가, 평론가로 알려져 있으나 김환기의 사후인 1977년, 1988년 뉴욕과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화가로 활동했다. 그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1934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녔다. 미술을 전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김환기의 동반자로 살며 1955년부터 1959년까지 파리 체류 시기에는 프랑스 소르본대 및 에콜 드 루브르에서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공부했으며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에서 미술수업을 받았다.

환기미술관이 설립자인 김향안 여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더 뮤즈, 김향안의 이야기」전을 마련한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 있다. 김 여사가 직접 그린 양귀비, 튤립 등의 꽃과 이국적인 풍경을 담은 특별한 작품들이 다수 선보인다. 또한 김 여사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 세월의 흔적이 깃든 유품, 고민의 흔적이 담긴 일기 등도 최초 공개된다. 이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 ‘향안의 추억(Reminiscences of HyangAn)’ 스페이스다.


화가의 아내인 ‘김향안’의 기억을 회고하고 만나는 기획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환기가 작고한 이듬해인 1975년부터 환기재단 활동을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온 김향안의 40년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파리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원했던 19명 작가의 작품도 전시했는데, 이 속에서도 ‘수화의 아내’의 자리를 보여준다. 2004년 2월 29일 뉴욕에서 88세로 생을 마감한 그는 뉴욕 근교의 발할라 묘지에 먼저 잠든 김환기 곁에 영면했다.

▲ 김종영의 조각 작품 「여인입상」(18×19×106㎝, 나무, 1965).

그런 김향안에 대해 정필주는 오래 전에 이렇게 썼다. “김향안에게 미술을 공부하고 남편과 예술적 역량을 함께 키워가는 것은 내조라기보다는 협조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김환기는 김향안의 초상화에서 아내를 상당히 자의식이 강한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편 김향안은 자신의 역량 중 아내라는 부분을 별도로 떼어 놓았다. 그러니까 김향안에게는 수필가와 화가 등 여러 가지 정체성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화가의 아내였다는 말이다. 즉 김향안은 ‘인간 김향안’과 ‘화가의 아내 김향안’을 삶 속에서 자체적으로 분리시켜놓았다.

그는 화가의 아내라는 영역을 미리 한계지었기에 자기 안의 다른 정체성들과 충돌해도 관리하기가 비교적 쉬웠고,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드높인다는 본연의 과제에도 충실할 수 있었다.”(『화가의 빛이 된 아내: 우리 화가를 키워낸 열 명의 아내 이야기』)

그렇다면 「조각가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열리고 있는 전시에도 주목할 수 있다. 조각가 김종영을 기리는 김종영미술관이 마련한 2016년 특별기획전 「조각가의 아내」(8.5~11.16)展에서도 어떤 애틋함 그 너머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각가 김종영은 대학에서 교수직(서울대 미대)을 역임한 것 외에는 생의 시간 모두를 조각품을 창조하는 조각가로 보낸 예술가였다. 평생의 절반 이상을 집과 작업실에서 창작에만 집중한 김종영이기에, 그에게 가족이란 존재는 생활의 전부일 수밖에 없다. 그런 조각가에게 아내(이효영 여사)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 모습은 작품에 어떻게 반영됐을까. 전시를 기획한 김종영미술관측은 “특히 그의 아내로서의 역할은 그가 완전히 조각가로서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내조한 내적  뮤즈이자 영혼의 동반자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환기미술관이 화가의 아내인 또 다른 화가라는 자의식을 보여준다면, 「조각가의 아내」전은 조각가가 남긴 아내를 모델로 한 조각품과 드로잉을 선보이는 전시가 된다. 이 작품들을 통해 김종영 조각가가 속 깊이 품고 있었던 아내에 대한 점잖은 사랑과 존경어린 표현을 확인해 볼 수 있으며, 나아가 아내를 대상으로 그리다가 인체 형태 탐구로 발전해 나가는 조각가로서 그의 추상 연작들의 형성비밀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예컨대 1940~1950년대 아내를 그린 드로잉에서는 볼이 볼록 튀어나온 모습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지만 1970년대 후반기에서는 얼굴 선만 그려졌을 뿐 구체적인 형상이 사라졌다. 대리석과 조각에 새긴 여인상 조각 역시 마찬가지다. 오보영 김종영미술관 학예사는 “아내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이 시대를 초월해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향한 김종영의 예술관과 닮았다”라고 지적했다. 이 전시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김종영 조각가가 남긴 아내 드로잉과 조각상이 함께 선보이며, 김종영이 아내에게 보낸 친필 편지도 최초로 공개된다.

다시 이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아내」로 돌아오자. 「더 뮤즈, 김향안의 이야기」나 「조각가의 아내」는 둘 다 전시 형식이며, 화가(조각가)의 직접적인 개입 속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이중섭의 아내」는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제3자가 객관적으로 구성한 스토리 속에 놓여 있어 그 문법이 조금 다르다.

이 작품에서는 그동안 일본인 아내와 비극적인 마지막 순간 등 단편적으로만 알려진 ‘인간 이중섭’의 모습을 그의 아내인 ‘야마모토 마사코’의 입을 통해 담백하게 그려진다. 그림 속에 그려진 ‘아내’가 아니라, 실제 사건을 전달하는 경험 주체로서의 아내가 모든 기억과 이야기 앞에 우뚝하게 서 있다. 문법은 다르지만 어쩌면 이런 기획들은 ‘화가의 아내’를 새로운 미술사의 지평으로 초대하는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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