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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시각 독특 … ‘초빙집필’로 동료·후학 성과도 수용
한국적 시각 독특 … ‘초빙집필’로 동료·후학 성과도 수용
  • 염승섭 전 계명대 교수·독문학
  • 승인 2016.09.1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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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새 독일문학사』 안삼환 지음|세창출판사|840쪽|39,000원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아마도 그 평이하고도 유려한 필치일 것이며, 무엇이든지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중세 기사들의 ‘높은 기상’을 ‘호연지기’에, 기사들의 ‘절도’를 ‘중용’에 대비시켜 설명하는 점이라든가, 만년의 괴테가 도달한 경지를 공자가 말한 인생 70세의 경지와 비교한 것은 안 교수의 평이하고도 적절한 설명들의 한 유형이며, 이런 설명은 동·서양 인문정신에 대한 깊은 학문적 온축이 없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세창출판사에 의해 출간된 『새 독일문학사』의 저자 안삼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독어독문학회에서 다년간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번에 그는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독일문학사를 ‘한국 교양인을 위한’ 책으로 내어놓았다. 이 책은 그 엄청난 분량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한 느낌이 없이 자못 흥미롭게 읽힌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그것은 저자가 고대로부터 중세 독문학, 인문주의 및 종교개혁, 그리고 바로크 문학과 근대 독문학을 거쳐 최근 독문학에 이르기까지 독일문학의 장구한 발전과 그 유기적 연관성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되, 한국 독문학자로서의 자주적 소신을 가지고 평이하고도 설득력 있게 기술하고 있는 데에 기인하고 있는 것 같다.

안 교수의 『새 독일문학사』는 몇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선, ‘한국’의 교양인을 그 독자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다 시피, 그는 독일이나 일본의 독문학자가 아닌 ‘한국의 독문학자라는 자주 의식과 비교문학적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제 그의 『새 독일문학사』에서는 ‘질풍노도의 문학’은 ‘폭풍우와 돌진의 문학’이 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젊은 베르터의 고뇌』로 바뀐다. 그의 책에서 ‘문예학’은 ‘문학연구’ 또는 ‘문학(학)’의 오역에 불과하며, 독일철학에서의 ‘관념론’과 독일문학에서의 ‘이상주의’가 실은 같은 한 단어 ‘Idealismus’의 다른 번역일 뿐이라는 등 그의 단정적 주장들은 그야 말로 새롭고 놀랄 만한 것들이다. 쇼펜하우어의 유명한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욕망과 환상으로서의 세계』로 번역돼야 한다는 좀 지나친듯한 그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전문가들의 검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새 독일문학사』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한국의 ‘교양인’을 독자로 상정했다는 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에 대한 그의 평이하고도 설득력 있는 해석, 그리고 독일 교양소설에 대한 그의 간명한 설명 등은 비단 독문학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양인’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

세 번째의 특징은 이 『새 독일문학사』의 저자가 ‘초빙집필’이란 이름으로 19명의 독문학자들의 원고를 자신의 저서 안에 삽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독일문학 연구가 일본 제국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이 출범한 지 7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한국 독문학의 학문적 성과’를 집약해 내고자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인데, 저자가 자신의 지식의 유한성과 시각의 편협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동료나 후진의 학문적 성과’를 아울러 반영하고자 한 새로운 시도가 참신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동학에 대한 그의 ‘유대감의 표현’으로도 십분 이해된다. 사실 안삼환 교수가 독문학계의 선배 교수나 후진들에 대해 평소에 깊은 배려심과 끈끈한 유대감을 지니고, 이 학문 전체의 존립과 발전에 대해 늘 남다른 고민과 분투를 해 왔음은 이 분야 내외에서 아는 사람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학문적 자세가 이번 『새 독일문학사』에서 이렇게 관행을 벗어나는 구상으로까지 나타난 것은 참으로 놀랍고 신선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아마도 그 평이하고도 유려한 필치일 것이며, 무엇이든지 간에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중세 기사들의 ‘높은 기상’을 ‘호연지기’에, 기사들의 ‘절도’를 ‘중용’에 대비시켜 설명하고 있는 점(책, 58쪽)이라든가, 만년의 괴테가 도달한 경지를 공자가 말한 인생 70세의 경지와 비교한 것(책, 258쪽)은 안 교수의 평이하고도 적절한 설명들의 한 유형이며, 이런 설명은 동·서양 인문정신에 대한 깊은 학문적 온축이 없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밖에도,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해석을 한국의 ‘세월호 사건’과 연결시키는 기상천외한 발상이라든가, 괴테가 한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영국에서 나온 한국 기행문을 뒤적이고 있을 무렵, 조선 순조朝의 강진에서는 정다산이 막 解配 소식을 듣게 된다는 기막힌 역사적 대비, 전후 독일의 속죄와 그 새 출발을 위한 망명작가 토마스 만의 시의적절한 역할, 독일 전후문학에다 한국출신의 작가 이미륵을 언급한 점, 귄터 그라스가 타계했을 때의 한국 저널리즘의 무지한 침묵 등등에 대한 그의 서술을 읽자면 문학사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재미있는 연설을 듣고 있는 듯한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이 책의 맨 끝에서 저자가 갑자기 독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필자 또한 같은 독문학의 신산한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그의 이런 진솔한 고백에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공감을 느끼기도 했다.

끝으로 이 책이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을 보여주고 있음도 아울러 지적해야겠다. 먼저 이 책의 본문과 초빙 집필문 사이에 가끔 논조의 엇박자와 학식의 격차가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간혹 초빙집필자들의 필력이 저자의 해박하고도 평이한, 그리고 논지가 뚜렷한 서술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초빙집필된 부분이 잘 읽혀지지 않을 때가 없지 않다. 초빙집필이란 안교수의 ‘실험’이 후학들의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그들에 대한 유대감을 표시한다는 점에서 그 충정은 이해하지만, 앞으로 누군가 문학사 서술에서 이 방법을 원용하고자 할 때에는 약간의 보완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책의 약점으로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동시대적 독문학의 요동치는 여러 문학사적 현상들과 그 수많은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분류, 정리하지 못한 점이다. 물론 저자는 독일 본(Bonn) 대학의 위르겐 포어만 교수를 초빙해 ‘독일 국문학자’의 분석적 글을 게재함으로써 필요한 분류작업을 대신하도록 하고는 있지만, 필자의 욕심으로는 안 교수가 여기서야 말로 ‘한국 독문학자의 시각’을 따끔하게 보여줬더라면 더욱 좋았을 듯싶다.
이제 21세기 초엽, 우리나라가 경제적·문화적으로 크게 발전한 새로운 좌표 위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인문학을, 그리고 그 주요 분과학문들 중의 하나인 독문학을 그 방법과 방향부터 새로이 정립해 나가야 할 절실한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안 교수의 『한국 교양인을 위한 새 독일문학사』가 이런 방향 정립에 적지 않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 바다.

 

염승섭 전 계명대 교수·독문학  
필자는 미국 라이스대(휴스턴)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부터 재직하던 계명대에서 2003년 정년퇴임했다. 『횔덜린 삶과 문학』, 『인문학과 해석학』 등을 썼으며, 『어디에도 설 땅은 없다』(크리스타 볼프), 『변신』(카프카 단편선)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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