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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우리는 유전자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다
여전히 우리는 유전자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다
  • 교수신문
  • 승인 2016.09.1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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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_ ‘유전체 편집기술’

 이 글은 <SKEPTIC Korea> 7호(2016.9)에 실린 전주홍 서울대 교수(생리학교실)의 「유전체 편집기술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인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유전체 편집기술은 ‘편집’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하면서 ‘조작’이라는 부정적 느낌을 지우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이처럼 유전체 편집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자이너 베이비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Nullius in verba(누구의 말도 곧이곧대로 취하지 마라)’라는 영국왕립학회의 모토처럼, 말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다.


유전자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부족하고, 유전자는 사람의 특성 또는 표현형을 아주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설명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전체 편집기술로 디자이너 베이비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성이 크다. 특히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얼마든지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인체의 물리적, 정신적 기능 향상을 목표로 한다면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유전자 서열을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유전체 염기서열 전체를 분석해서 오류 없이 편집됐음을 증명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는데, 염기서열 분석 과정 중에는 얼마든지 오류가 개입될 수 있기 때문에 유전체 염기서열 전체를 정확하게 분석해내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과연 기술의 완벽함을 증명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비관적 귀납은 어떤 과학기술이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술임을 증명하기는 불가능함을 일컫는 말이다.(이는 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이기도 하다.)


비관적 귀납은 버트런드 러셀의 유명한 우화 중 하나인 ‘러셀의 닭’에서도 잘 드러난다. 매우 똑똑한 닭이 귀납주의에 따라 농부는 매일 자신에게 모이를 준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바로 다음날 농부가 와서 모이를 주지 않고 목을 비틀었다는 이야기다. 유전체 편집기술에 대해서도 그것에 오류가 있는지는 실제로 오류가 발생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특히 유전자형은 대물림되고 언제 어떻게 영향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여타 약물이나 수술의 부작용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하나의 유전자는 여러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능 중 대부분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더욱이 유전자의 활성이나 기능은 유전자 네트워크의 맥락에서 이해돼야만 한다. 발암유전자로 잘 알려진 Ras는 유전적 맥락에 따라 간혹 세포 성장을 억제하기도 하고, 암억제 유전자로 잘 알려진 p53의 경우 활성을 강화하면 노화가 촉진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치명적인 유전적 변이를 가지고 있더라도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이는 유전자 네트워크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특정 유전자의 이상을 상쇄할 수 있는 기제가 작동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두 개의 유전자가 특정 현상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너무나 확실해졌다. 지능이나 행동에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관여하고 그 유전자들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되는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유전자를 어떻게 편집해야 할지를 기획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유전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입맛이 바뀌기도 하고 성격이나 행동이 변하기도 하지만 이는 유전자 염기서열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고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또한 유전자-환경의 상호작용을 생각할 때 환경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유전자형만 바꾸는 것은 유효성을 떠나 예기치 못한 문제마저 일으킬 수도 있다.


물론 무조건 기술을 금하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 기술의 사용목적과 적용범위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하고 사회적 수용력을 충분히 살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기술을 사용하는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 생산적인 방향일 것이다.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는 그의 저작 『우리가 정말 인간일까?(So You Think You're Human)』에서 “유전학을 통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두려운 일은 유전학이 인간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과학자들의 책임 있는 자세와 과학에 대한 성숙한 시민의 자세가 모두 필요하다. 이는 품격 있는 과학의 대중화가 요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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