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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도덕성’에서 찾은 동양철학의 보편성과 특수성
‘내재적 도덕성’에서 찾은 동양철학의 보편성과 특수성
  • 박승현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 승인 2016.09.0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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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동서철학의 회통』 모종삼 지음|박승현 옮김|공동체|429쪽|22,000원

이 책은 牟宗三(1909-1995)의 『中西哲學之會通十四講』을 번역한 것이다. 모종삼은 현대 신유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서양 철학적 개념들, 특히 칸트철학을 차용해 동양의 전통적 사상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馮友蘭을 비롯한 일부 중국철학자들이 했던 것처럼 서구철학의 틀 속에 중국철학을 끼워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이 책에서 ‘동서철학의 회통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진다. ‘회통 가능성’에 대한 질문 없이 동서철학을 비교할 경우, 어느 한쪽에 의한 일방적인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이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이런 보편성에 근거해, 일부 학자들은 철학은 단지 하나만 있을 수 있지, 어떻게 철학을 지역학처럼 ‘동양철학’, ‘서양철학’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마치 과학이 동양의 과학, 혹은 서양의 과학이란 구분이 없고, 국경도 색깔도 없는 오직 하나의 과학만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모종삼은 이 문제에 대해 철학적 진리가 가진 보편성과 특수성에 근거해 대답하고 있다. 그는 보편성을 ‘추상적 보편성(abstract universality)’과 ‘구체적 보편성(concrete universality)’으로 구분한다. 추상적 보편성이란 수학적 진리와 같이 추상적 개념을 통해 표현되는 것으로, 여기에는 국경이나 민족, 개인의 특수성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철학적 진리는 구체적 삶 즉 ‘생명’(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라, 가치적 의미의 생명)을 통해 표현된다. 예를 들어, 공자가 말한 ‘仁’은 인간이면 누구나 갖춰야할 보편적 진리다. 이것은 ‘2+2=4’라는 수학적 진리와는 다르다. 이런 보편적 진리는 인간의 구체적 삶 속에서 자신의 삶 즉 ‘생명’을 통해 실천적으로 표현된다. 이것을 모종삼은 구체적 보편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보편성은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이라는 특수성에 의하여 언제나 제한 받는다.

또한 진리의 내용에 있어서도 수학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진리와 구별된다. 과학적 진리와 마찬가지로 수학적 진리는 인간의 생명을 통해 표현되지 않고, 다만 연구자의 지적인 연구를 통해 드러난다. 이러한 진리를 러셀의 용어를 빌려 외연진리(extensional truth)라고 부른다. 반면 철학적 진리는 바로 우리의 생명을 통해 표현된다. ‘仁’, ‘義’와 같은 진리는 연구자의 연구를 통해 진실한 의미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생명을 통해 실천적으로 표현될 때 그 진실한 의미가 확보된다. 이는 내포적 진리(intensional truth)로 불린다. 여기서 모종삼은 ‘철학’이라는 보편성 속에서 ‘중국철학’과 ‘서양철학’이라는 특수성을 말할 수 있다고 본다.

모종삼은 동서양철학이 그 출발점에서 ‘물음의 대상’과 ‘문화적 중점’을 달리함으로써, 이후 철학적 전통이 다르게 발전하게 됐다고 본다. 서양은 주로 객관 세계, 즉 ‘자연(nature)’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객체성과 객관적 지식(knowledge)을 중시한다. 반면 동양철학은 객관적 자연의 본질이나 질서보다는 인간 자신에 대한 관심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인간 자신이 가장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세계를 정복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정복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유한한 공간과 시간의 한계 속에서 욕망 덩어리로 살고 있는 인간 자신을 어떻게 보다 더 이상적 인간으로 완성할 것인가를 중심 문제로 삼은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동양철학의 중점과 중심은 ‘주체성’과 ‘내재적 도덕성’에 있다. ‘修養’ 즉 ‘실천’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동양철학에 자연에 대한 관념이 전혀 없었고, 서양철학은 우리의 현실적 삶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철학의 출발점에서 ‘중점’의 차이가 다르며, 이것이 이후 철학적 발전의 방향과 내용을 달리하게 되는 원인이 됐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모종삼은 칸트가 구분한 현상과 물자체의 구분에 근거해, 서양은 현상(phenomena)을 설명하는 데 적극적인 반면, 동양은 智思界(noumena)의 영역인 물자체에 대한 설명에 적극적이었다고 구분한다.
모종삼은 칸트가 현상계와 지사계(예지계), 현상과 물자체를 나누고, 인간의 이성 사용 영역과 그 한계를 분명히 하고자 한 노력에 주목한다. 아울러 칸트 철학과 비교를 통해 동양철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의 함의를 보다 분명하게 규정하고자 시도했고, 동서철학의 회통 가능성을 이론 이성이 아닌 실천이성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책에서 칸트가 말하는 ‘경험적 실재론’과 ‘초월적 관념론’의 구별, 현상과 물 자체의 구분을 불교의 “한 마음이 두 문(‘생멸문’과 ‘진여문’)을 연다”는 ‘一心開二門’의 사상과 연결시켜 논의를 전개한다. 과학을 비롯한 경험적 지식이 실재성을 확보하는 영역과 도덕이나 관념 세계에서 말하는 진리성이 그 실재성을 확보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가 실천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物我兩忘’, ‘坐忘’, ‘成佛’, ‘成聖’과 같은 경지의 실재성은 경험적 지식의 범위에 있지 않다. 시간·공간의 한계 속에 있는 현상의 범위 내에선 초월이 가능하지 않으며, 이는 경험적 지식을 논하는 이론 이성이 아닌 실천이성의 영역이다. 이상적 인간의 실현은 우리의 본심, 즉 무한심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이 무한심이 바로 칸트가 말하는 ‘智的直覺(intellectual intuition)’으로 ‘noumena’의 영역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지적 직각’을 인간이 가질 수 없고, 하나님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반면 모종삼은 동양철학에선 인간이 지적 직각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지적 직각에 대한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기독교 전통을 기반으로 한 서양철학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존재하는 인간은 언제나 유한한 존재의 지위를 벗어날 수 없다. 반면 동양철학은 인간이 비록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자발적인 실천 수행을 통해 스스로 이상적 인간상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모종삼은 인간들이 지적직각을 가질 수 없다면, 중국철학의 틀은 완전히 무너진다고 말한다. 지적직각이 없는 중국철학은 망상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칸트의 도덕철학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적직각’은 바로 도덕실천의 원동력이고, 인간의 존엄성 실현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박승현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필자는 베이징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맹자의 자율도덕- 칸트의 도덕철학을 중심으로」, 「不生之生의 道: 모종삼의 노자철학에 대한 이해」, 「모종삼의 철학체계에 있어서 지적직각의 문제」 외 다수의 논문과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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