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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하차 고민하는 인문학 연구자들 … “인문학진흥법요? 기대 안해요”
중도하차 고민하는 인문학 연구자들 … “인문학진흥법요? 기대 안해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9.05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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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코리아, 인문학에서 희망을_ ① 박사들의 운명

인문학자들이 반신반의하는, 그러나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는 ‘인문학진흥법’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교수신문>은 앞서‘인문학진흥법’ 8월 공표를 앞두고 기획시리즈 ‘인문진흥법에 바란다’를 마련, 문사철 분야 교수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 기획에 이어 새롭게, ‘인문학진흥법’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 짚어야 할 현안들, 그리고 이 법안의 궁극적 지향점 등을 진단하는 ‘업그레이드 코리아, 인문학에서 희망을’ 시리즈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차례
1  무너지는 인문학 기반, 그리고 박사들의 운명
2 인문학이 만드는 업그레이드 코리아
3  더 큰 인문학의 무대: 세계적 연구소의 꿈
4  좌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몸담고 있던 연구소 프로젝트가 끝났어요. 끝나기 전부터 밤에 잠을 잘 못 잤어요. 연구 프로젝트 위주로 생활하다가 다시 여기 저기 강의를 나갈 생각을 하니 사실 답답하더군요. 다른 생각도 하게 됩니다. 어떤 생각이냐고요? 아예 다른 일을 알아볼까하는 고민이죠.”

서울 소재 대학에서 오랫동안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김 아무개 박사는 말끝을 흐렸다. 그에게 ‘인문학진흥법’을 아냐고 물었다.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법으로 인문분야 박사들의 여건을 조성한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지 않냐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이런 말도 들려줬다.

“같이 공부하던 박사과정생들이 많이들 떠나고 있어요. 물론 중도하차의 이유가 꼭 불투명한 진로 때문만은 아니죠. 지도교수나 학과 교수들, 선배나 동료들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전망 부재’라고 봐요. 연구소 프로젝트의 남은 시간표를 보면서, 자다가 깨고를 반복했는데 그건 앞으로 뭘 하고 살아가야 하냐는 막막한 질문에서 어떤 절벽을 마주치기 때문이었어요.”

기자는 수소문 끝에 문사철 분야 박사과정을 중도에서 포기한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인문학진흥법을 이야기했더니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는 대답이다. 지금껏 공부해온 게 아깝지 않냐고 물었다.

“아깝죠. 그렇지만 앞을 생각하면 지금 다른 모색을 하는 게 솔직히 더 맞다고 생각해요. 좋은 인문학 연구자가 되고 싶었지만, 점점 전망을 찾을 수 없는 것 같아요. 고만고만한 주제에 매달려서, 더구나 국내 학위를 밟으면서 연구자 길을 간다는 건, 이제 자살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아쉽지만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가족들에게 더 부담을 줄 수 없다는 것도 이유였다. 개인적인 이유보다 구조적 문제로 중도하차를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귀띔도 잊지 않았다.

이와 관련,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지원(학문후속세대지원사업)을 받은 수혜자의 진로 현황을 분석한 최근의 한 통계 자료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학문후속세대지원사업을 통해 2010~2014년 지원을 받은 연구자는 모두 6천203명으로 이공분야 1천417명, 인문사회분야 4천786명(중복 제외)으로, 이 가운데 한국연구업적통합정보(KRI)를 통해 2015년 현재 소속기관과 직급을 파악할 수 있는 6천175명을 분석한 자료다. 한 마디로 인문학 박사들의 진로를 읽어낼 수 있는 유효한 자료다.

「2015 교육부 학술연구지원사업 성과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학문후속세대지원사업을 통해 지원한 연구자 중 현재 대학 전임교원으로 임용된 비중은 이공분야가 17.7%(249명), 인문사회분야가 17.9%(853명)에 달한다. 또한 대학 비전임교원으로 취업한 경우, 이공분야가 17.7%, 인문사회분야가 74.5%로 나타났다. 대학외의 기타 기관(출연연, 기업체 등)에 취업한 비율은 이공분야가 17.1%, 인문사회분야가 5.5%로 나타났다.

이 자료가 말하는 진실은 ‘지원사업’이라는 수혜를 받은 연구자 가운데 18% 정도가 ‘전임교원’으로 임용된다는 것이다. 시간축을 중심으로 통계 자료를 다시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현상을 쉬 발견하게 된다. ‘최근 5년간 학문후속세대 수혜자 진로 현황’(중복 허용)이다. <표>에서도 알 수 있듯,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 수혜자일지라도 전임교원으로 가는 비율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33.5%, 2011년 21.1%, 2012년 18.6%, 2013년 13.9%, 2014년 6.8%가 전임교원에 임용됐다. 반면, 같은 시기 비전임교원의 추이는 어떨까. 2010년 50.7%, 2011년 73.0%, 2012년 75.2%, 2013년 79.1%, 2014년 86.0%로 나타났다. 인문분야로만 한정하면 이 수치는 더 가파른 곡선을 보여줄 것이다.

물론 통계로만 본다면, 92.4%의 인문사회 분야 ‘학문후속세대’가 대학에 몸을 담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인문학 위기 이후 박사들의 진로 코스는 대부분 기초교육원과 같은 강의전담 교수로 가는 것이다. 물론 대학이 연구와 강의라는 두 기둥을 활용하고 있으니, 강의전담 교수도 괜찮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학문후속세대’ 인문학 박사들이 대부분 강의전담 교수로 배치되면서, 양질의 연구 동력이 구조적으로 소멸일로에 있다는 점이다.

지방과 서울의 여러 곳에서 철학을 가르쳐온 박 아무개 강사의 말을 들어보자.

“강의도 중요하죠. 그렇지만 아무래도 연구자라면 ‘자신만의 연구 동력’을 동기화하는 게 중요하겠죠. 지방을 다니다보면, 인력 문제 때문에 강사들이 여러 대학을 뛰는 걸 많이 보게 됩니다. 아시잖아요. 한 시간 강의를 위해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 그러다보니 연구에 집중할 여력이 좀처럼 없죠. 엄살이라고요?”

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강의는 연구와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과 똑같이 아침에 통학버스 타고 내려왔다가 꽉 찬 하루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면 거의 탈진 상태가 됩니다. 정신이 백지화된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 한계경험이 반복되면, 특정 주제에 매달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건 생각에 그칠 뿐이더라고요. 제 주변에서도 그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점점 연구에서 멀어져가는 박사들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인문학 학문후속세대들이 대학 전임교원, 혹은 비전임교원, 나아가 기타기관에 모두 행복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세속적으로 말해서 일종의 취업 관문 통과라고 할 수 있는 전임·비전임교원 자리 확보조차도 이렇게 불투명하다면, 어떻게 이들에게 창의적이고 지속가능한 연구 에너지를 발휘하라고 요청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인용한 보고서에도 명시돼 있지만, ‘연구자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연구성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한국연구재단이 구체적으로 표방하고 있지만, 시스템의 한 축인 실제 연구자들의 피로감과 좌절감, 그리고 동력 상실이 외부 여건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면, 지금 인문학 박사들이야말로 그런 ‘사각지대’에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인문학진흥법’을 추진하고 있는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령 제정과 관련, “법령을 바탕으로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고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등 국가 인문역량을 지속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에 관한 중·장기 정책목표 및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이 유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한다”라고 말했다. ‘국가 인문역량’의 지속 발전을 내건 ‘인문학진흥법’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국가 인문역량의 밑바탕이 될 수 있는 인문학 박사들 나아가 인문학 연구자의 길을 가려는 이 나라 젊은 인재들이 지금 ‘사각지대’에서 고립무원, 절망과 좌절 속에서 ‘인문역량’을 상실해가고 있는 현실을 ‘중·장기 정책목표 및 방향’에 담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인문학 학문공동체가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 말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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