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지난 20일 서울교대에서 개최한 ‘미래교육포럼’에서 발제자의 신원 파악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발제문 공유에 관한 사전동의를 받지 않은 일부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될 전망이다. (사)스마트교육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포럼은 ‘4차 산업혁명과 융합교육’을 주제로 무려 40여 편에 달하는 학술논문과 발제가 이어졌다.
문제는 미국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한 연구자의 발제문에서 비롯됐다. <교수신문>은 이 연구자의 발제문을 지면에 소개하려 했는데 대학명만 기재돼 있을 뿐 발제자의 직급·직위, 연구분야 등을 알 수 없었다. KERIS 담당자에게 기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해당 발제자의 간단한 프로필을 요청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발제자가 교수인지, 강사인지, 직원인지 모르니 확인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현지에 연락을 취한 결과 발제자가 자신의 발제문이 기사화 되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KERIS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주최한 포럼인데 발제자의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모르다니. 또 일부 내용을 인용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발췌·요약해 ‘전재’하겠다는 것인데 기사화 되길 원치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설령 기사화 되지 않는다고 해도, 해당 발제문은 KERIS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될 터인데, 쉬이 납득할 수 없었다. KERIS 담당자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담당자는 “포럼 이후 발제문의 정보공개(기사화 포함)에 사전동의를 구했지만, 당사자의 요청이 워낙 완강해 양해를 구한다”고 전해왔다.
그런데 일련의 상황을 ‘사소한 실수’라고 보아넘기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우선 KERIS라는 교육부 산하 준공공 학술기관이 대규모 학술포럼을 개최하면서 발제자와 발제문을 검증하지 않았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앞서 KERIS는 해당 포럼에 관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사회 각계 전문가들과 미래사회 교육체제 혁신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라고 선포했고, 여기에 한석수 KERIS 원장은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미래교육 전략 마련의 초석이 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포럼의 격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만큼 미래교육정책의 방향까지 엿볼 수 있는 ‘공신력’ 있는 대규모 포럼이었음은 분명했다.
실상 KERIS는 발제문·발제자 검증을 소홀했을 뿐더러, 발제자로부터 발제문의 공적 사용동의도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KERIS가 이번 포럼의 발제문들을 홈페이지 등에 공개해 일반 대중들이 필요에 따라 해당자료를 활용하게 될 경우 2차, 3차 저작권 위반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 발제자는 왜 한사코 언론보도를 거부했을까? KERIS 관계자로부터 거부이유를 전해들은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이 발제자는 현재 박사과정생인데 “발제문이 언론에 보도되면, 자신이 관련분야를 공부하는 데 입지가 곤란해질 수 있다. 더구나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동료학자들로부터 이의 제기를 받을 것인데, 이렇게 되면 본인이 (박사)학위를 받는 데 불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는 것이다. 동료학자들로부터 이의 제기를 받을 것이 두렵다면 학자가 아닌 학생으로 남을 일이다. 무엇인지 모를 그만의 특별한 사정(?)을 감안한다고 해도, 학위를 받는 데 불이익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미완의 발표문’을 공공기관의 대규모 학술포럼에서 ‘공개적으로’ 해버린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말마따나 자신의 학자적 입지에 심대한 불이익을 입힐만한 이 ‘위험한 발표문’은 어쩌면 자신이 원하든 원치않든, 향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따른 교육개혁 논의에서 정부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KERIS는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각종 교육·학술연구 분야에서 정보화를 추진·지원하는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그렇다면 포럼을 통해 교육정책의 최신 동향을 열심히 알린 KERIS는 (포럼을 주관한 학회, 심지어 필자 본인조차) 책임지지 못할 학술자료를 발표했다는 것인가.
KERIS가 간접적으로 인증한 이 자료가 돌고돌아 정부 대학정책의 어느 한 곳에 둥지를 틀게 된다면, 그땐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최근 실적과 평가 위주의 대학·학계 풍토에 비추어 보건대, 이번 일이 비단 KERIS만의 사소한 실수였을 거란 보장도 없다. 미래교육을 전망하는 KERIS의 학술포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니, 의문이 꼬리를 문다.
대졸자 취업난의 책임이 대학에 있다면서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정책은 과연 얼마나 치밀하게 짜여졌을까? 최근 ‘졸속정책’ 이슈의 한 가운데 있는 평생교육단과대학지원사업은 또 어땠을까. 이밖에도 학부교육선도대학지원사업(ACE), 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사업(LINC),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사업(PRIME),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CORE) 등등 정부의 굵직한 대학재정지원정책은 10여 개에 달한다. 이들 정책도 이번 사례처럼 출처불명의 ‘책임지지 못할 자료들’의 조합으로 추진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칼럼을 읽은 교육정책 담당자들로부터 “특수한 하나의 사례를 너무 일반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오길 기대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최소한 미래교육의 전망이 이토록 어둡진 않을 테니까.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