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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적 요소를 잃어가고 있는 ‘법의 지배’ … “‘제4차원의 법’ 대안 될 수 있다”
유토피아적 요소를 잃어가고 있는 ‘법의 지배’ … “‘제4차원의 법’ 대안 될 수 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8.29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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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_ 25강. 박은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법과 윤리’

“오늘날 ‘법의 지배’는 그 유토피아적 요소를 잃어가고 있다. 법률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상세한 법률들이 쏟아지면서, 확대일로로 치닫는 법 시스템 속에서 입법자들도 시민들도 무엇을 준수해야 하는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은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20일(토) ‘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 4섹션 사회와 윤리 여덟 번째 강연에서 지적한 말이다. 이날 박 교수는 ‘법과 윤리’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박 교수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법철학회 회장,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이화여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자연법 사상』, 『현대의 사회문제와 법철학』, 『생명공학 시대의 법과 윤리』, 『법철학의 문제들』,『왜 법의 지배인가』 등이 있다. 2001년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았다.
박 교수는 “사법권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로 사법부의 위상 및 독립성 강화는 긍정적 신호이지만 사법부의 ‘독립성’이 곧장 ‘공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법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법관들이 어떻게 양성되고 충원되는지, 그들이 어떤 가치 성향을 띠는지 등을 점검하는 일이 중요하게 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전공은 법학 안에서도 법철학이다. 민법이나 형법 등 개별 실정법 영역에서 법률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교수들과 달리, 법현상을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면서 법학의 기초를 탐구하고 보다 나은 법의 방향을 추구하는 일을 학문적 소임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법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하면서 문득 놀라는 바는,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법이론의 대가들이 내놓는 답이 일상의 지혜나 가장 기본적인 상식과도 어긋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 생각에 오늘날 법은 가히 카오스이론이나 일종의 프랙털(fractal)질서로도 설명하고 싶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법률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내용적으로도 너무나 상세한 법률들이 쏟아지면서, 확대일로로 치닫는 법시스템 속에서 입법자들은 자신들이 뭘 하는지 모르고 법을 준수해야 하는 시민들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복잡한 세계가 이론의 이름으로 추상화 내지 단순화되고 전문주의의 이름으로 암암리에 전문직에 편리한 방향으로 기울면서, 법에 대한 전문적 이론적 견해와 상식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 그 몇 가지를 짚어보자.

첫째, 법에 대한 전문적 이론적 관심은 주로 법의 구조/체계/통일성에 집중돼 있다. 법을 고정된 구조나 체계로 접근하게 되면, 암암리에 구조의 유지나 체계의 방어, 조직의 합리화 쪽으로 관심을 갖기 쉽다. 법은 살아있는 제도다. 살아있는 제도는 고정된 구조적 측면과 함께 유동적인 측면을 지닌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대한 걱정이 사람들로 하여금 더 나은, 더 정의로운 질서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하며, 이것은 단지 생각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실정법의 제정, 개정, 해석 행위를 통해서 현실로 돌진하는 것이다.

둘째, 법에 대한 전문적 이론적 관심은 법의 작용을 수직적인 질서 모델로 포착한다. 법을 수직적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법을 위로부터의 권위에서 나오는 질서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도 일종의 사회적 소통절차에 속하는 만큼, 수직적으로 보이는 법질서의 저변에도 상호작용 내지 상호기대에서 비롯되는 수평적 요소가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셋째, 법에 대한 전문적 이론적 관심 속에서 법은 우선적으로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에 조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법은 사회의 병리현상을 도려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효율적이고 더 좋은 사회여건을 만들기 위한 기획이기도 하다.

넷째, 법에 대한 전문적 이론적 관심은 법을 법이 아닌 것과 분리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둔다. 한마디로 법은 세계를 보는 독자적인 창을 가진다는 것이다. 제도로서의 법은 정치나 윤리와는 엄연히 다른데, ‘법이 윤리적인가’ 혹은 ‘법이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법에다가 던지게 되면-이 질문은 당연히 던져져야 하며 또 사람들은 당연히 이 질문을 던진다-왜 법전문가들은 법질서가 와해될 지도 모른다고 염려할까.

입법의 윤리, 사법의 윤리

입법을 염두에 두고 법과 윤리의 연관관계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 법철학자로는 미국 하버드대의 론 풀러(Lon L. Fuller) 교수를 들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의 행위를 인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규칙 즉 법을 만드는 데 있어서 충족시켜야 할 여덟가지 기준 내지 원칙들을 제시한다. 법규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반성 원칙, 공표 원칙, 소급입법금지 원칙, 명확성 원칙, 무모순 원칙, 준수가능성 원칙, 항상성 원칙, 공권력행사와 선언된 규칙의 일치 원칙 등이 충족돼야 한다. 이 원칙에 의해 어떤 규칙이 법의 규칙에 될 수 있는지 여부가 판정된다는 의미에서 풀러는 이 여덟가지 원칙들을 합법성(legality) 원칙으로 일컫는다.

이 원칙들은 윤리와 어떤 관계에 놓이는가? 그는 합법성 원칙을 준수하는 법체계가 이것들을 준수하지 않은 체계보다는 명백히 더 좋다는 점, 합법성 원칙이 준수되는 사회의 정치체제는 설사 정의롭지 못한 경우라도 심각하게 부정한 체제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합법성 원칙의 준수에 따르는 도덕성은 법체계 전체의 도덕성 향상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므로, 이 합법성 원칙이 윤리적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원칙들이 ‘좋음’의 윤리 즉 열망의 윤리에 의해 이끌린다고 설명한다. 풀러는 합법성 원칙을 ‘법의 내적 도덕성’ 혹은 ‘법을 가능하게 하는 도덕’이라고 부른다.
 
사법권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공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권력에 대한 사법의 사후통제 비중이 커지고, ‘통치에서 협치로’ 흐름, 세계화 흐름 속에서 국가의 입법권의 분할 내지 입법적 통치권의 약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삼권분립 개념이 주춤해지면서, 법원과 법관의 존재가 점점 부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법치국가에서 사법부의 위상 및 독립성 강화는 긍정적 신호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성’이 곧장 ‘공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동일한 혹은 비슷한 사건에서 동일한 법률을 적용한 결과가 법관에 따라 또 심급에 따라 다른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그렇다면 법적 물음에서 하나의 정답은 없다고 봐야 하는가? 법적 물음에 정답이 없다면 법관의 결정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권위’인가? 이제 이 물음은 입법이 아닌 사법 즉 법관의 판결을 향해 있다.

법시스템은 고정돼 닫혀 있으면서도 동시에 외부에 반응해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시스템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가 염두에 둔 법개념을 떠올린다. 푸코는 법을 지식과 권력의 통일체로서 문제 삼았다. 푸코는 법을 ‘공존의 조건’으로 보면서, 이 공존의 조건으로서의 법은 폐쇄적으로 정의돼서는 안 되고 끊임없이 ‘불안정한 교환(unsettled exchange)’의 수단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나는 여기서 푸코의 법개념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는 법을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그 무엇으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행해야할 끊임없는 과제로 본다는 점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한다. 즉 그는 법을 사회내부의 기존의 규율로 환원시키기를 거부하고,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기대’를 제한하는 일체의 힘을 고발하는 가운데, 예측불가능한 미래를 발명하기 위해 법이 열려있어야 한다는, 그래서 법은 언제나 과제로서 남는다는 인상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새로운 희망 찾기

한마디로 오늘날 ‘법의 지배’는 그 유토피아적 요소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법은 현실적이면서 이념적인 것이다. 법치주의는 현실의 제도로 나타나지만, 순수한 현실의 발현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제도인 동시에 가치를 지향하며, 그 가치에 비추어 현실의 제도를 측정하는 기준이기도 한 것이다. 인류 역사는 법이념에 의해 지도돼온 긴 교육과정이기도 하다. 21세기 문턱에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는 현재 개헌논의에 들어가고 있다. 헌법을 논의한다는 것은 법에 희망가진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새로운 법상식을 향해가는 법을 ‘인간다운 삶을 위한 법’, ‘인류 전체의 법’, ‘자연과도 함께 하는 법’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런 법은 지역법도 아니요, 국가법, 국제법도 아니라는 점에서 ‘제4차원의 법’이라고 명명했다. 제4차원의 법은 현재 우리가 가진, 시장과 경쟁에 오염된 법용어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개념들을 법사고 안으로 끌어들인다. 인간성, 지속가능한 발전, 미래세대를 위한 저축 등등. 법은 이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법을 전문가의 회색 눈빛으로 보지 않는다면. 직업정치인들이 아닌, 교양을 쌓은 ‘이상적인 입법자’, 바로 자유 시민들이 헌법을 논하기 위해 둘러앉기 시작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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