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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監察의 독립
교육과 監察의 독립
  • 이연도 중앙대 교양학부·철학
  • 승인 2016.08.2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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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이연도 중앙대 교양학부·철학
▲ 이연도 중앙대·철학

한낮의 뜨거움은 여전하지만, 아침 저녁으론 선선한 바람이 분다. 유례없이 더웠던 올 여름의 暴暑도 자연의 흐름 앞에선 어쩔 수 없다. 이제 가을이다. 방학으로 느슨했던 마음도 개강과 함께 분주해진다. 이번 학기는 시작부터 대학 안팎으로 여러 일들이 쌓여 있다. 무엇보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농성으로 쟁점이 된 교육부의 대학정책에 대해 교수 사회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梨大사태’는 대학의 재정 지원을 빌미로 구조 조정과 馴致 작업을 진행해 온 정부에 대한 교수와 학생들의 인내가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상징이다. 교육부 역시 대학 정책 사업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가겠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과 가치관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앞당겨진 대선 정국과 맞물려 대학 사회가 교육이슈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 시대적 과제와도 연관돼 있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만신창이가 된 데는 교육의 혼란이 적지 않은 원인을 제공해 왔다.

장타이옌(章太炎)은 근현대 중국에서 대표적 지식인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신해혁명 이후 건국 3걸로 쑨원(孫文), 황싱(黃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루쉰(魯迅)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루쉰은 그를 ‘혁명이 있는 학술가’가 아니라 ‘학술이 있는 혁명가’로 기억한다(김영진 지음, 『중국 근대사상과 불교』, 그린비, 2007년). 학술과 혁명 둘 다 장악한 드문 인물인 그가 주장한 정책 중에서 눈에 띄는 주장이 ‘오권 분립’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분립과 함께 장타이옌은 교육과 監察의 독립을 주장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로, 정권의 변화에 따라 흔들려선 안 되는 영역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행정부의 수반이 바뀜에 따라 교육 정책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정권의 시각에 따라 교육 내용이 달라져선 안 된다. 행정부와 동등한 권한을 갖는 독립된 권력으로 교육부가 존재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우리 사회의 현 모습에 비춰 시사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실제 쑨원은 장타이옌의 생각을 반영해서 ‘오권분립’을 그의 정책 강령으로 삼았다. 현재 대만에서 입법, 사법, 행정원 이외에 ‘考試院’과 ‘감찰원’을 둔 것은 이에 근거한 것이다. ‘감찰’의 업무가 행정권과 독립돼야 한다는 생각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된 민정수석을 둘러싼 감찰 문제를 떠올리면 그 필요성이 충분히 이해된다.

교육부가 행정부에 종속된 형태로 운영되는 현 시스템에선 장기적인 교육정책의 수립이나 운영이 불가능하다. 현 정부 집권 이후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시대착오적 발상이 가능한 이유 또한 여기에 기인한다. 정권에 따라 BK, HK, ACE, 프라임 사업 등으로 대학을 흔들고, 학생들을 경쟁과 이기주의로 내모는 학사 운영 역시 마찬가지다. 자치 교육감 선거에서 확인할 수 있듯, 우리 시민사회는 이미 충분히 성숙한 의식과 운영 역량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해 줄 제도가 없다는 데 있다. 핀란드의 교육 시스템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그러한 제도를 시행할 개혁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장타이옌은 청 정부를 공개적으로 성토한 글 「革命軍」(鄒容)의 서문을 썼다는 이유로 3년간의 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 중국 혁명사의 중요한 계기가 된 ‘蘇報’사건이다. 1906년 만기 출옥한 그가 향한 곳은 일본 도쿄였다. 쑨원의 초청으로 유학생 환영회에서 연설하게 된 그가 한 말이다. “우리는 미치지 않으면 결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상상하더라도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한다 하더라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자고로 위대한 일이든 빛나는 학문이든 미치고 나서야 가능합니다.” 시대를 뒤집는 용기는 미치지 않고선 내기 어려운 법이다. 발상의 전환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육부를 행정부에서 독립된 기구로 재편성하고, 교육 수장을 국민 선거를 통해 선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게리 S. 크로스는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들에 대하여』(김승진 옮김, 동녘, 2016년)에서 ‘포장된 쾌락’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교육은 통조림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내듯 학생들을 찍어내고 있고, 교수들 역시 패키지 교육의 가이드로 전락해 있다. 속도와 편리함 속에서 포장된 쾌락을 추구하는 가운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育成’을 필요로 하는 공간과 시간이다. 칼 오너리(Carl Honore)가 말한 대로,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인내하고, 성찰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빠르게 내달리는 삶을 대체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교정하는 역할을 무엇이 할 수 있을 것인가. 교육의 전면적 복원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이연도 중앙대 교양학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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