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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강좌 된 비결요? 자율성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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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근 기자
  • 승인 2016.08.29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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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역사 ‘名講’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난 남영 한양대 교수
과학의 역사를 다루는 수업이 있다. 과연 이 수업은 누가 들을 수 있을까. 공대생? 인문대생? 수업을 기획한 교수는 모두가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니 “모두가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어려운 과학이야기를 들고,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하고자 했다. 외워야 할, 어려운 것들은 모두 배제하고 인물의 역사를 중심으로 다뤘다. 또, 기존 과학에 대해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것들을 소개하면서 ‘과학사를 통해 과학 다시 보기’를 전파했다. 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어, 수업 내용을 엮어 책으로 내겠다는 약속까지 했단다. 최근 약속을 지켜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1: 태양을 멈춘 사람들』(궁리, 2016.8)을 출간한 남영 한양대 교수(45세)가 그 주인공이다.
 
남 교수는 청주대에서 정보처리학 석사를 취득하고, 6년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문득 과학사에 대한 갈증을 느낀 남 교수는 중앙대에서 연구를 시작해 2009년 8월 과학기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라는 수업을 토대로 엮은 것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며, 학생들 사이에서 ‘5대 명강의’에 뽑힐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교양과목으로 전 학년·학과가 모두 신청 가능하다. 남 교수는 해당 강의를 통해 2013, 2016년도 강의우수교수, 2015년도 베스트티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하나에만 집중한 나머지 자기 역량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히는 학생들을 안타까워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여러 오해들을 교정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교정을 통한 깨우침을 통해 앞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자 했다.

학생들의 요청으로 ‘과학자의 리더십’이라는 같은 취지의 강의도 신설해 3년째 진행하고 있다. 이를 엮어서 2권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내용을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2권은 20세기 초반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인슈타인과 보어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대순으로 다룬 것이 1권이라면, 2권은 같은 시기 과학자들의 인생 경로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겠다는 생각이다. 3권 역시 미정이지만, 진화론의 발전 과정을 인물 위주의 이야기를 정리할 계획이다. 지금까지의 기획대로라면, 다윈 이전의 배경부터, 다윈의 이야기, 그 이후 현대 진화론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수업 중 무엇이든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 있는 ‘한 줄 질문’을 학생들로부터 꼭 받는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공교롭게도 ‘융합이란 무엇인가?’다. 그럴 때마다 남 교수는 “융합은 특별한 것이 없다”고 대답한다는데, 무슨 말일까?
 
물리학을 예로 들어보자. 물리학 이전엔 열·소리·빛 등 따로따로 연구했던 분야들이 있었다. 어느날  ‘에너지’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물리학이라는 하나의 분야로 수렴된 것이다. 물리학도 초기엔 융합이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지금의 융합학문들도 비슷한 시간이 지난 후엔 단일학문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남 교수는 ‘융합’을 특별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30년이 지난 뒤 학교로 돌아왔을 때 자신이 전공했던 학과가 사라졌다면? 그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현상이고, 또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학문 간 칸막이 속에서 대학을 경험한 이들에겐 기겁할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스스로를 ‘잡종’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남 교수. 그의 신간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1: 태양을 멈춘 사람들』(궁리. 2016.8)을 가방에 찔러넣고 지난 22일 한양대를 찾아갔다.
 
△제목부터 흥미롭다. 무엇을 다룬 책인가?
“주인공만 과학자인 역사이야기입니다. 과학사를 안 배워본 사람들은 과학 자체가 유형화돼있습니다. ‘다시 읽는 과학’, 즉 기존에 우리 모두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당연한 것들이 가지는 오해들을 교정해주자는 의도로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책은 학교에서 강의했던 수업을 토대로 만들었는데, 수업에서는 충격요법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한 학기 수업이 38시간 정도뿐이에요. 이 짧은 기간 안에 시대 순으로 과학사를 다 가르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죠. 모든 정보를 전달하기엔 한계가 명확하니, 과학사가 얼마나 공부해볼 만한 것인지, 뉴턴이란 사람이 얼마나 읽어볼 만한 사람인지를 느끼게만 해주자고 생각했습니다. 과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시기면서 스토리도 흥미로운 부분이 ‘과학혁명’입니다. 과학이 생겨나는 과정과 과학을 어떻게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는지를 가장 많이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죠.”
 
△‘과학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를 떠올려보니 항상 역사 교양수업을 찾아다녔더라고요. 그때부터 과학을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당연히 과학사를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회학과는 사회학의 역사를 배우고 음악과는 음악의 역사를 배우는데, 과학은 과학사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에요. 말하자면 과학은 기억상실증에 걸렸죠. 과학사의 필요성을 얘기할 때마다 현재의 과학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모르면, 과학을 어떻게 바꿔나갈지도 알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과학사는 지금보다 더 조명 돼야하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과학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만들어진 과정을 봐야지 만들어진 제품을 보는 것이 아니죠. 이것이 과학사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융합’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대학가뿐만이 아니다. 융합 관련 교육원에 소속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잡종’이란 단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홍성욱 서울대 교수가 잡종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나도 창의융합교육원에 있지만, 사실은  ‘융합 거품시대’입니다. ‘융합’이란 단어만 포함하고 있으면 연구비를 지원받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는, 위로부터의 강제적 융합이 될 우려가 있죠. 반면 잡종은, 아래로부터 자연스럽게 필요에 의해 시작해 스스로 새로운 종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요.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입니다. 비빔밥처럼 재료를 섞어놓은 것만이 아니라 DNA까지 바꿀 수 있는 변화를 추구하고요. 어떠한 과학사 속 혁신도 잡종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담고 있는 것이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수업이에요. 특강 때 학생들에게 철학·물리학·수학·음악·미술·기계공학 등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 물어보곤 합니다. 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면 물리학이란 단어는 없었어요. 철학과 물리학이 하나였고 자연철학으로 분류했죠. 또, 2000년 전의 피타고라스학파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표현했지 수학과 음악을 다른 것으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현대 사회의 분류를 피타고라스학파가 본다면 황당한 장면이죠. 다빈치가 대학교수가 되면 어느 학과 교수가 되겠습니까? 오늘날의 학문 분류가 틀렸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단지 현 시대의 유행일 뿐이에요. 어떤 사람의 직업군으로 보는 것이 아닌, 그가 한 일로써 누구인지를 바라봐야합니다.”
 
△최근 대학들은 베스트티처 선정 등 교수들의 강의에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5대 명강의’라 불리고, 강의우수교수로도 선정 됐는데, 나름의 교수법은?
“지금의 수업 형태가 표준화된 교육으로서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학 수업이 점점 고등학교처럼 변해가고 있어요. 취한 상태로 수업을 하는 등의 문제들은 분명 개선이 필요했지만, 형식화된 가르침이 아닌, 엉뚱하고 황당하지만 수업에서는 배울 수 없던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대학 교수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질’이 아니다보니까, 표준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죠. 우리가 식당을 갔을 때, 맛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요리 재료가 정량인지 등을 따지지 않잖아요. 하지만 지금 대학에서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는 듯합니다. 대학마다 교양 수업이 있지만,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는 선택형 교과목이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인기강좌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일정한 자율성이 주어졌기 때문이죠. 교수가 재량권을 갖고 자유롭고 다양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과학사에 대한 관심이 날로 늘고 있다. 번역서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 활발하진 않은 듯하다. 과학사를 배우려는 공대생들이 더 늘 텐데, 그들을 가르치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공대생들은 대부분 ‘뼛속까지 공대’라 서술형 답안을 써야하는 교양수업을 겁내는 경향이 있어요. 공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뼛속까지 공대라는 표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로 학문에 깊이 심취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글을 쓰기 어려워할 리가 없어요. 명료한 사고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자기 학문에 진실되게 접근하지 않은 사람들이, 견식의 짧음을 변명할 때나 하는 말이죠. 그리고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타인에게 생각을 전염시킵니다. 뼛속까지 공대라면 새로운 지식이 그리워서 자기 전공의 외연을 넓히도록 도와줄 제대로 된 교양수업을 찾아다닐 것입니다. 명료한 방정식 풀이를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이 두서없는 글을 쓸 리가 없습니다. 위대한 과학자치고 말과 글이 부족하다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어요. 그들의 업적이 말과 글이 아니면 무엇으로 표현된다는 말입니까? 답안을 작성하는 데 엄청난 글 솜씨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답안을 작성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는 모두가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어요. 말이 되게 문장을 쓰는 것이 힘들다면, 공대생으로도 성공할 수 없을 거예요.”
 
△‘잡종의 과학사학자’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과학자가 군인이면, 과학사학자는 종군기자입니다. 종군기자는 전쟁의 승패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지만, 전쟁에 대해서는 군인보다 더 많이 떠들 수 있죠. 그렇다면 종군기자가 해야 할 일은 전쟁에 대한 정보와 상황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종군기자가 전쟁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야 하는 것처럼, 과학사학자는 과학이 어떤 것인지를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 종군기자가 많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꼭 있어야 하는 것처럼 과학사학자도 마찬가지죠. 그것이 내가 있어야할 위치고, 과학사 연구자라면 대중과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양수업을 계획한 이유도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만나려는 것이었거든요.”
 
글·사진 김홍근 기자 m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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