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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곳곳에서 이어진 焚書 사건 … 증오의 덫에 걸린 사람들의 운명은?
독일 곳곳에서 이어진 焚書 사건 … 증오의 덫에 걸린 사람들의 운명은?
  • 서장원 독문학자
  • 승인 2016.08.2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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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_ 세기의풍경, 망명 지식인을 찾아서(독일편)를 시작하면서

증오의 덫에 걸린 사람은, 절대 권력을 거부한 자는, 절대 권력에 대항하는
자는, 화형을 당하지 않기 위해 망명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망명이란
국가나 종교적 집단이 가하는 정치적 인종적 이데올로기적 박해 때문에
타지로 추방당하거나 타지에 체류하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고국에 부재
중인 상태를 말하는데 국적 박탈, 체류 불허, 강제이주 등의 위협을 겪는다.
망명객은 귀향을 꿈꾼다. 그러나 망명의 길은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다’.

 

▲ 서장원 교수는 독문학자다. 고려대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 독일유학을 떠나 2003년에 귀국했다. 구텐베르크-마인츠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 철학, 독일민속학을 전공했다. 구텐베르크-마인츠대에서 17세기 독일바로크문학 연구로 독문학 석사(Magister Artium)를, 동 대학교에서 20세기 독일 망명문학 연구로 박사(Dr.phil.)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논문은 EPISTEMATA (K & N) 학술총서로 간행됐다. 귀국 후 고려대 인문대학 독일문화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2015년 정년퇴직했다. 구텐베르크-마인츠 대학교 자비네 오버마이어교수와 공동으로 ‘독일문학 디알로그 학회 (DeLiDi)를 창립했다. 2015년 아산사회복지재단 학술연구 결과물인 『망명과 귀환이주』 (집문당)를 출판했고, 현재 한국학술협의회(대우재단) 저술사업 「토텐탄츠와 바도모리」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최근 독일문예사조 변천과정, 문명문화이론에 관심을 쏟고 있다.

<교수신문>은 2학기부터 새롭게 기획연재 ‘세기의 풍경, 망명 지식인을 찾아서(독일편)’을 선보인다. 이번 연재는 독문학자인 서장원 전 고려대 교수가 40회에 걸쳐 집필할 예정이다. 20세기 지성사의 한 풍경을 이룬 ‘망명 지식인’, 특히 독일 사회에서의 지식인 집단 망명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제공하고 있다. 지식인의 망명은 절대 권력과의 불화에서, 지성의 목소리가 체화되지 못하는 부박한 세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며, 또한 이 불행한 지성들이 새로운 지식의 터전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질문을 이어나가고, 동시에 그렇게 함으로써 어떻게 세기의 지적 풍경을 빚어냈는지를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인이란 무엇이고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 이 사회 어디에 지식인의 목소리가 있는가. 데카르트가 지식인인가? 칸트가, 헤겔이 지식인인가? 데카르트가, 칸트가, 헤겔이 지식인이라는 말을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냥 사상가 혹은 철학자라 부른다.

한나 아렌트가 지식인인가?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발터 벤야민이 지식인인가? 그렇다, 그들에게 적합한 이름이 바로 지식인이다. 한나 아렌트는 본인은 철학자가 아니라 정치사상가라고 했다. 관념철학이나 논하는 탁상공론가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정면으로 대응하는 실천적 학자, 곧 지식인이라는 말로 들리는 대목이다.

‘지식인’이라는 용어는 19세기부터 간간이 사용되다가 20세기 초부터 일반화된 개념이다. 군부와 법원으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에 대항해 「J’accuse (나는 고발한다)」로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한 『목로주점』의 작가 에밀 졸라 (1840~1902)를 사람들은 지식인의 효시로 꼽는다. 졸라는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을 만천하에 고함으로써 무고한 한 인간이 평생 감옥에 감금될 뻔했던 사건을 정치투쟁으로 전환시켜 끝내 무죄를 이끌어 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식인’은 현대 사회의 일원으로 ‘극단의 시대’가 숙명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었던 문제점들에 대해 투쟁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식인은 20세기와 관련된 인물들이다. 20세기는 지식인의 시대였고, 지성사의 세기였다.

프랑스에서 투쟁의 개념으로 지식인의 시대를 열었다면, 1933년 이후 독일에서 전개된 지식인과 권력의 관계는 상당히 극단적이고도 복잡한 양상을 띤다. 프랑스가 자유 인권사상이 발달한 반면 독일은 官 주도의 나라였고, 프랑스가 광장과 혁명의 나라라면 독일은 대학 강단과 민족정신 중심의 통일 지향적 나라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오늘날의 독일 베벨 광장. 그곳 어디에서도 분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1933년 5월 10일 밤 당시 수도였던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한 베벨광장에서는 2만여권의 책이 불에 타 흔적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식인과 권력의 관계, 그 불화의 현장

1933년 5월 10일 밤, 독일의 수도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한 베벨광장에서 2만권의 책이 불살라졌다. 나치가 정권을 장악한 1933년 1월 30일과, 2월 28일 제국의회 방화사건을 계기로 긴급조치권을 발동하며 영장 없이 정적을 체포 구금하던 일련의 시기에 발생한 사건이다. 분서를 주관한 것은 베를린대 학생회였다. 학생들은 ‘유대적 균열정신에 대항하는 총체적 행동’을 강령으로 내세운 1817년 봐르트부르크 축제에서 불순한 책의 목록을 불태운 선배들의 행동을 모델로 삼았다.

봐르트부르크 축제는 개신교 학생 약 500여명과 몇몇의 교수들이 루터가 성서를 번역한 장소인 봐르트부르크 성으로 행진해 반동정치에 항의하고 유대인 서적을 불태운 사건이다. 독일인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1517년에서 300주년이 됐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독일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지 4년이 지난해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루터의 도피처이자 성서를 번역한 이 장소는 학생들에게 독일국가의 상징이었다. 바그너와 더불어 ‘독일인 중 가장 독일인’으로 나치에게 칭송을 받던 음악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도 봐르트부르크 성에서 멀지 않은 아이제나흐에서 출생했다. 이들은 나치에게 독일의 피였고, 독일 정신이었다.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자 무자비하게 유대인을 탄압한 것은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쌓여온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갈등, 주인 독일인들의 떠돌이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광신적인 증오의 감정으로 폭발한 것이었다. 독일인들에게 유대인이란 ‘추상적’이고, ‘충동적’이고, ‘피가 없고’, ‘병들고’, ‘근본 없고’, ‘잘못배운’ 족속들로 국가와 사회질서를 균열시키고 타락시키는 잡종 쓰레기였다. 구체적이고, 이성적이고, 생동감 있고, 건강하고, 근본 있고, 잘 교육받았음을 자부하는 독일인들에게 유대인이란 ‘악의 화신’, ‘독일인의 적’, ‘전 인류의 철천지 원수’였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자 학생과 교수들은 나치에게 충성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발동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그렇듯이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면 기회주의자가 전면에 부상하고, 그 중에서도 최선봉에 서는 것은 저울질에 능한 학자들이다. 대학생들과 일군의 교수들이 정신적 나치돌격대를 자처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학생회는 ‘비독일 정신에 대항하는 행동’을 전개하기 위해 4월 초부터 면밀한 사전작업을 거쳐 베를린을 비롯한 전국 21개 대학도시에서 분서를 감행했다.

‘비독일 정신에 대항하는 행동’ 강령은 분서이전에 이미 전국 대학교의 게시판에 나붙었다. 신문에도 게재됐다. “언어와 저술은 민족에 뿌리박고 있다”로 시작되는 12개의 테제였다. 독일인들은 루터가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이래 서양고전 독일어화와 독일어 부흥작업을 통해 찬란한 독일의 사상과 학문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문학에 대한 사랑은 정신과학과 사회과학의 발전을 가져왔다. 바로크시대부터 시작된 독일어 순화운동과 전국방방곡곡을 뛰어 다니며 민담을 수집하고 어휘를 확장시키는 노력이 없었다면 괴테와 쉴러, 칸트와 헤겔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찬란한 학문의 금자탑은 잠시 외면하고─혹은 그 업적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모국어와 민족정신만을 앞장세운 것이 나치의 광기를 몰고 왔다. 나치는 바이마르 공화국 지식인들의 저술과 독일민족성 사이에는 모순의 틈새가 있다고 보았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야 말로 ‘치욕’이라고 여겼다. 독일민족을 치욕적으로 만든 적은 바로 ‘유대인과 유대인에 예속된 자’이고, ‘비독일적으로’ 사고하고 글을 쓰는 유대인들을 ‘이방인으로 주시’하고 결국에는 근절시켜야 된다고 주장했다. 핵심은 ‘유대적 지식주의’를 근절시켜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때 ‘유대적 지식주의’란 하인리히 하이네,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염두에 둔 말이다.

새로운 분서갱유 … 죽음의 장소로 끌려간 책들

분서당일 학생들은 횃불을 들고 베를린대에서 거사 장소로 이동했다. 약 2만권의 책을 실은 트럭이 도중에 합류했다. 완전히 민족축제 분위기였다. 취주악단이 음악을 연주해댔고, 지나가는 도로를 구경꾼들이 메웠다. 책들은 죽음의 춤 장소로 끌려갔다. 약 7만 명이 운집한 분서장소에는 학위가운을 걸친 교수들, 학생회 관계자들, 나치돌격대, 나치친위대, 히틀러 유겐트(히틀러 청소년단)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그날 저녁에는 비가 내렸기 때문에 나치들은 기름을 준비해 불이 잘 타도록 부어댔다. 드디어 ‘비독일 정신에 대항하는’ 구호와 함께 책들이 불길에 던져졌다.

1. 계급투쟁과 물질주의에 반대하고 민족공동체와 이상적 삶의 태도를 위하여!
나는 마르크스와 카우츠키의 저작물을 화염에 던진다.

2. 데카당스와 도덕적 붕괴에 반대하고 가족과 국가의 번영과 풍습을 위하여!
나는 하인리히 만, 에른스트 그뢰저, 에리히 케스트너의 저작물을 화염에 던진다!

3. 지조 없는 자들과 정치적 배신자들을 반대하고 민족과 국가에 대한 헌신을 위하여!
나는 프리드리히 뷜헬름 푀르스터의 저작물을 화염에 던진다.

4. 본능적인 생활의 영적인 과대평가를 반대하고 인간영혼의 고귀함을 위하여!
나는 프로이트의 저작물을 화염에 던진다.

5. 우리 역사의 위조와 지위를 떨어뜨리는 것에 반대하고 우리 과거의 경외를 위하여!
나는 에밀 루드비히, 베르너 헤게만의 저작물을 화염에 던진다.

6. 유대 민주주의의 각인 하에 우리민족에게 낯선 저널리즘에 반대하고 국가건설 작업의 책임의식 있는 공동 작업을 위하여!
나는 테오도르 볼프, 게오르크 베른하르트의 저작물을 화염에 던진다.

7. 세계대전 병사들에게 문학적 누설과 배신하는 것을 반대하고 국방의 정신 속에 민족의 교육을 위하여!

8. 독일어를 주제넘게 망치는 것을 반대하고 우리민족의 최고 가치 있는 자산보호를 위하여!
나는 알프레트 케르의 저작물을 화염에 던진다.

9. 뻔뻔스러움과 불순함을 반대하고 불멸의 독일정신에 대한 존중과 경외를 위하여!
화염은 투홀스키와 오씨츠키의 저작물을 꿀꺽 삼킨다!

─ 서장원, 『망명과 귀환이주』(집문당, 2015), 83~84쪽

분서는 그해 6월까지 독일 전 지역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마르크스를 위시한 공산주의 관련 저작물’, ‘데카당스와 비도덕적인 저작물’, ‘국가와 민족 배신자들’, ‘性과 본능을 옹호 조장하는 심리학자들’, ‘위대한 독일역사를 경시하는 자들’, ‘독일인들에게 낯선 저널리즘’, ‘1차 세계대전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자들’, ‘독일어의 우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의 저서가 그렇게 불태워졌다. 여기에 해당되는 지식인들은 망명을 떠나야만 했다.(저명 망명객들 명단 및 간단한 약력은, 서장원 『망명과 귀환이주』 633~762쪽 참조)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는 “그것은 단지 서막이었다. 책을 태우는 그곳에서, 결국에는 인간을 불태운다”라고 갈파했다. 이미 인간의 역사에서 그러한 일들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1600년 2월 19일 일요일, 이탈리아의 성직자이자 시인이었고 철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발가벗겨진 채 화형을 당했다. 그가 본 우주의 진리를 세상에 발설한 죄 때문이었다. 그것은 신성모독이었고, 이단이었다. 책을 불 지르며, 인간을 불태워 죽이며 가해자들은 ‘신성모독’, ‘이단’, ‘부도덕’, ‘파렴치’, ‘소요조장’ 등의 꼬리표를 피해자에게 붙인다. 브루노가 본 세상은 ‘우주는 무한하고 태양은 그 중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얼마나 세상 질서를 문란하게 했기에, 얼마나 절대로 용서할 수없는 천기누설이었기에, 추기경이 주재하는 재판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 사제들은 브루노의 턱을 쇠 재갈로 채우고, 쇠꼬챙이로 혀를 뚫고, 또 다른 꼬챙이로 입천장을 관통시켰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발가벗겨진 채 불태워 죽였다.

증오의 덫에 걸린 사람은, 절대 권력을 거부한 자는, 절대 권력에 대항하는 자는, 화형을 당하지 않기 위해 망명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망명이란 국가나 종교적 집단이 가하는 정치적 인종적 이데올로기적 박해 때문에 타지로 추방당하거나 타지에 체류하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고국에 부재 중인 상태를 말하는데 국적 박탈, 체류 불허, 강제이주 등의 위협을 겪는다. 내적으로는 궁핍으로 인한 생존의 문제, 언어소통의 어려움, 차별과 멸시, 고향상실감, 정체성 혼란 등을 경험한다. 지식인의 경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국에서 유지했던 위치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대부분 생존을 위한 직업이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 상반 될 수도 있다. 망명객은 귀향을 꿈꾼다. 그러나 망명의 길은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다’.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자 약 50만 명 정도가 추방을 당했거나 망명의 길을 떠났다. 그들 중 대략 2500명의 작가, 방송인 600명, 연극인 4000, 영화인 1500, 음악인 2000, 사진작가 200, 무용가 150, 자연과학자·정신과학자·사회과학자 등 학자 2000명이 망명의 길을 떠났다. 이들을 우리는 독일 망명 지식인이라고 부른다. ‘지식인’이라 하면 많은 양의 지식을 축적한데다가 신선함까지 겸비한 인물을 떠올리는 것이 무언 중의 약속처럼 돼있지만 나치 독일은 ‘지식인’을 비하하고 지식인을 박해했다.

1933~1945년 독일 지식인들의 망명
지성사를 논할 때 1933년부터 1945년 사이 독일 지식인에게 발생한 사건은 세계 지성사가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이 부분을 빼고 넘어가면 20세기 문제와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제반문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지성사의 출발이자 큰 틀이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 망명을 떠나게 된 나치집권 초창기의 구체적인 사건은 분서사건 외에도 ‘제국의회방화사건’과 ‘공무원 신분 원상회복법’이 있다.

독일 망명 지식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 여배우 말레네 디트리히, 작가 토마스 만, 베르톨트 브레히트, 작곡가 아르놀트 쉔베르크, 지휘자 오토 클렘페레, 수학자 헤르만 봐일, 물리학자 한스 베테, 제임스 프랑크, 화학자 프릿츠 하버,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법학자 한스 켈젠, 예술사학자 에르윈 판오프스키 등 20세기 최고의 지식인들이 우선 떠오른다. 그밖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무수히 포진돼 있다.

우리가 ‘독일 망명 지식인’을 되새겨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지식인에 관한 논의는 과거가 아니라 항상 지금 현재이기 때문이다. 지나간 유럽의 과거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다급한 문제다. 둘째, 독일 망명 지식인에 관한 문제는 에밀 졸라식의 ‘행동하는 지식인’ 이외에도 20세기 전 세계 학문의 태동 및 이동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문화 사회 학문의 지형변화를 알리는 상황판을 보는 느낌이다. 셋째, 19세기에서 20세기적 학문으로, 지역 독일에서 전 세계적인 학문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넷째, 독일 망명 지식인들은 학문적인 의미 말고도 각양각색의 수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정치, 사회, 역사, 문화, 인간사 등 20세기가 지닌, 그리고 오늘날 현대 사회가 풀어야하는 수많은 문제점과 가르침이 그들과 함께 있다. 이상은 허심탄회하게 우선 떠오르는 질문들이다.

역사적 흐름에서 독일 망명 지식인을 기억하면 동경과 연민의 대상이다. 과거의 인물이면서 끝없이 대화를 걸어오는 오늘 하루의 길동무이다. 또한 저 멀리 앞질러가 미래에서 손짓하는 예언자이기도 하다.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 데카르트식의 ‘지식인’ 개념인식에 몰두하지 않고, 잠바티스타 비코(1668~1744)식의 역사인식을 적용해 작가, 연극 영화인, 예술가, 학자 모두를 지식인 범주에 포함시킨다. 이미 발생한 일을 허심탄회하게 추적하는 것이 학문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선하기 때문이다.

서장원 독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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