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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두려웠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두려웠다
  • 교수신문
  • 승인 2016.08.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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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아듀 레비나스』 자크 데리다 지음, 문성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248쪽, 13,000원

이를 테면, 레비나스의 사유들이 내게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준 이래, 나는
끊임없이 그 사유들과 더불어 사유하기 시작할 것이며,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고 알아온 사상가, 우리가 읽고 거듭 읽어온 위대한 사상가가 침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그의 말을 들어왔고, 여전히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 응답이 우리가 다르게 생각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의 署名 아래서 이미 읽고 있다고 믿어왔던 것을 읽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여기면서요. 그것은 모든 것을 예비하고 있었고, 우리가 거기서 이미 인식했다고 믿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원천으로서의 그 사유들이, 내게 끝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게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레비나스의 사유들이 내게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준 이래, 나는 끊임없이 그 사유들과 더불어 사유하기 시작할 것이며,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건, 나는 다시 그리고 또다시, 이 사유들을 재발견하게 될 거예요. 레비나스를 읽고 다시 읽을 때마다, 나는 감사와 감탄으로 눈이 부십니다. 경탄을 금치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떤 강제 때문이 아니라, 의무를 지우는 너무나 온화한 힘 때문입니다. 타자에 대한 존중 속에서 사유의 공간을 달리 구부러지게 할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전적인 타자와 관계하게 하는 이 이질적인 다른 구부러짐을 받아들이게 합니다(그는 이것을 정의라고, 아주 힘차고 놀라운 타원 안의 어떤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타자에 대한 관계,  그것을 그는 정의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법에 의해, 그러니까 전적인 타자의 무한한 다른 우선권을 받아들이도록 요청하는 법에 의해 이뤄집니다.

이러한 요청은, 밀레니엄 말미의 너무나 강력하고도 확고한 사상들을 신중하게, 그러나 돌이킬 수 없게 흐트러뜨리게 될 것입니다. 레비나스가 벌써 65년 전에 프랑스에 소개한, 후설과 하이데거의 사상을 필두로 해서 말이지요. 레비나스는 이 나라의 환대를 사랑했습니다(그리고 『전체성과 무한』은 ‘언어의 본질을 선함’임을 논증할 뿐 아니라, ‘언어의 본질이 우정이고 환대’라는 것을 또한 논증하고 있지요). 이 ‘환대하는’ 프랑스는 레비나스에게 빚을 지고 있어요. 너무나도 많은 여러 가지 것들이 있지만, 빛나는 많은 다른 것들 가운데서 두 가지의 침입적 사건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최초의 두 행위는 이 땅의 풍경을 변화시킨 뒤 우리 철학 문화의 일부로 통합돼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이를 헤아려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책은 데리다가 ‘레비나스’에 관해 쓴 두 편의 글을 묶은 것이다. 「아듀」는 레비나스에 대한 弔詞로, 1995년 12월 27일에 판탱 표지에서 낭독된 글이다. 다른 하나는 「맞아들임의 말」로,  레비나스가 묻히고 1년 뒤인 1996년 12월 7일, ‘에마뉘엘 레비나스 헌정학회’의 개막 강연으로 소르본의 리슐리외 강당에서 발표한 글이다. 데리다는 이 책의 서문에서 「아듀」에 대해 “이 글은 비통함 속에서 한밤 중에 급히 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양 형이상학의 로고스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작업에 열을 올렸던 데리다는 과연 레비나스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말을 했을까. 그는 레비나스가 프랑스 철학계를 향해 ‘아듀’라고 말했던 그 말을 다시 그에게 두렵게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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