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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강력한 반대에 저항할 수 있는 실재를 구축하는 작업”
“과학은 강력한 반대에 저항할 수 있는 실재를 구축하는 작업”
  • 황희숙 대진대 역사·문화콘텐츠학부
  • 승인 2016.08.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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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젊은 과학의 전선』 브뤼노 라투르 지음|황희숙 옮김|아카넷|532쪽|31,000원

 이 책은 활동하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더 강력한
레토릭을 구사하며, 더욱 강고한 요새를 점령하려
애쓰고, 어떻게 이질적인 행위자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크게 확장시키는가에 대한 추적 보고서다.

 

▲ 브뤼노 라투르

과학이 우리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지식체계라는 생각은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공유되는 믿음일 것이다. 정치나 레토릭과 달리 과학은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며 자율성을 갖는다고 우리는 믿는다. 칼 포퍼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도 과학에 속하는 것과 과학에 속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분명한 절연, 구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과학에게 귀속되는 객관성, 합리성과 같은 특성은  과학자들의 인지적 능력이나 도덕적 역량에 대한 우리 이미지와도 연관돼 있다.

그러나 최근 과학기술학(STS)의 영역을 넘어서 여러 분야 연구자들 사이에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파리 정치대학(시앙포스)의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교수는 이런 통념에 도전한다. 라투르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과학자와 기술자를 추적해 과학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가진 과학과 과학자의 이미지를 부순다. 라투르는 미셸 칼롱(M. Callon), 존 로(J. Law)와 더불어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이하 ANT)을 정립한 과학사회학자다. 그의 작업은 ‘과학의 인류학’ 또 자신의 표현으로 ‘과학인문학’이라 지칭되는 새 분야를 개척했다.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있는 과학
‘테크노사이언스와 행위자-연결망의 구축’이란 부제를 단 『젊은 과학의 전선』은 라투르가 1987년 저술한 책으로 과학과 기술,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련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으며, 이제 과학기술학, 과학철학은 물론 사회과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기서 라투르는 ANT의 틀을 본격적으로 정립하고 있다. 이 책의 원서 제목인 ‘Science in Action’은 실제 만들어지는 과정 중인 과학을 의미하며, 이미 만들어진 기성과학, ‘블랙박스’로 닫힌 과학에 대비되는 용어다. 역자는 ‘활성상태’라는 뉘앙스를 살리고자 고심하다가, 라투르가 구사하는 정치와 전쟁의 언어에 맞춰, 『젊은 과학의 전선』으로 옮겼다.
과학이 실제로 어떻게 수행되는지, 즉 실천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독자는 적잖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과학과 과학자에 대해 이제껏 알고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뒤집히는 ‘패러다임 전환’을 겪을지 모른다. 라투르의 주장은 기존의 영미철학 계통이나 프랑스의 주류 과학철학의 패러다임에도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라투르의 주장은, 기존 과학지식사회학(SSK)의 주장과 연속적인 면이 있지만 훨씬 더 나아가고, 그래서 우리에게 신선한 만큼 당연히 불편함을 수반할 수 있다.

라투르에게 있어 과학은 숨겨진 실재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더 강력한 반대에 저항할 수 있는 실재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현장의 과학자들은 세력규합과 힘겨루기를 하며, 그 증명경쟁은 군비 경쟁과 유사하다. 그는 과학과 기술의 내부와 외부활동이 서로 뒤섞여 경계가 변화됨을 지적하면서 ‘테크노사이언스(technoscience)’라는 새 용어를 사용하는데, 과학과 기술은 ‘테크노사이언스’의 부분집합에 해당된다. 이 테크노사이언스는 동맹(자)의 수를 급증시키는 조물주 같은 기획이며, ‘연결망(network)’의 특징을 갖는다. 결국 테크노사이언스는 ‘전쟁 장치’의 일부며, 그것으로서 연구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젊은 과학의 전선』에서 라투르는 과학의 두 얼굴(Janus)이 말하는 이중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미 냉엄하게 확정된 파트가 아닌, 연구 전선의 온기가 따뜻한 비확정적인 부분에 대해 라투르가 말하는 바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볼만 하다.

이 책은 활동하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더 강력한 레토릭을 구사하며, 더욱 강고한 요새를 점령하려 애쓰고, 어떻게 이질적인 행위자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크게 확장시키는가에 대한 추적 보고서다. 이 책의 내용은 아직 굳지 않은 살아있는 과학, 즉 젊은 테크노사이언스의 전선에서 벌어지는 현장의 실화들이다. 여기서 라투르는 비전문가인 관찰자를 배치 설정해 그가 전문적 문헌들을 접하고, 실험실과 현장에 따라 들어와서, 과학자와 기술자가 그들의 ‘반대자’와 공방을 벌이고 또 ‘동맹자’를 규합하려 애쓰는 시도를 목격케 하는 장치를 쓴다. 이 관찰자는 마치 편견 없이 현장에서 추적해가는 인류학자의 역할과 같다.

‘戰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라투르에 의하면 사실과 인공물은 서로 얽히고 연결돼 있다. 실험실 공간에서 일어나는 과학적 사실의 구축과 실험과정에서 사용되는 도구와 같은 인공물의 안정화 과정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 기술과 장치 같은 ‘비인간(non-humans)’ 존재가 과학자와 기술자를 포함한 ‘인간’에 영향을 미쳐 그 행동을 바꾼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비인간은 인간과 마찬가지의 ‘행위자(actors)’며, 인간에 대칭적으로 볼 수 있다. 비인간 행위자의 중심에 놓인 기술의 실험실 내 역할, 그리고 과학적 사실이 구성되는 생생한 장면들이 이 책안에 펼쳐져 있다.

라투르가 영화의 장면처럼 재연해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면 독자들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의 활동 현장, 그 ‘전장’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전투, 배후의 병력 동원과 정렬, ‘병참’의 현황을 목도하게 된다. 테크노사이언스의 현장에서 행위자들은 서로 ‘힘겨루기’를 한다. 주도적인 행위자들은 새로운 협력자를 등록시키고, 사실과 장비와 모든 이질적 자원을 ‘동원’하고 이동시키고, ‘동맹’을 더 공고히 하려 한다. 결국 테크노사이언스 안의 행동들은, ‘동맹자’를 ‘가입’시키고 ‘동원’하는 일이며, 그 동맹의 힘과 숫자로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이 흥미로운 힘겨루기의 에피소드들에 귀를 기울이는 독자는 테크노사이언스에서 ‘이해관계’의 어긋남, 경쟁자나 동맹자로 가입시킬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번역’, 또 이로 인한 제휴와 동조에 대해, 행위자들을 대변하는 소수의 강력한 대표자들에 대해 남다른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테크노사이언스와 사회와의 관계, 사회와 자연과의 관계, 또 전문가와 일반인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텍스트, 실험실, 사물, 기계 장치 등의 ‘비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라투르의 ANT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비판되고 때로 상반된 이유로 동시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의 견해가 극단적이고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되거나, 거꾸로 전혀 혁신적이지 않은 일종의 ‘후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과학을 옹호하는 주류 과학철학자의 눈에, 라투르는 외부세계의 실재를 부정하는 프랑스의 상대론자 한 명에 불과할 것이다. 과학지식사회학자들의 눈에는, (구성주의자인) 라투르가 인간-비인간의 행위 능력(agency 행위성)에 있어서의 구분을 부정함으로써 비인간과 교섭한 것이 이미 화석화된 실재론으로 변절한 것이라 보인다.

반대자들과 비판의 논점
라투르의 주장에 대해 몇 가지 논점에서 비판이 집중됐는데, 첫째로 그의 주장이 과학활동의 구조나 맥락을 제공하는, 기존 과학기술 문화와 관행과 같은 요인을 제대로 고려하고 있는가 하는 비판이 있다. 둘째는 행위능력의 분배와 관련된 비판이다. 라투르가 드는 예들이 거의 영웅적인 과학자와 기술자이기에, 마치 이런 영웅 내지 준영웅에 의해 세계가 돌아가는 듯 여겨지며, 그의 ANT는 주변적 행위자에 의해 이루어진 성취를 놓치고, 여성과 주변인의 개입을 방해하는 구조를 놓친다는 비판이다.

셋째로 라투르의 주장이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에 대칭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과 관련된 논란이 있다.
이러한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출간된 이후 ANT가 STS에서 이론적 토론들을 지배하고 수많은 연구의 토대를 제공해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라투르가 이 책과 또 후속 저서 및 강연에서 펼쳐 보이는 카리스마와 지적 통찰력은, 당분간 ANT가 여러 분야 예를 들어 조직경영에서 관광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향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임을 전망케 한다. 라투르의 용어를 쓰면, 그 자신이 비판자들을 자신의 이론에 ‘가입’시켜 ‘동맹자’로 만들고, 그들의 행위를 예측가능한 것으로 만들도록 ‘통제’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그의 ‘연결망’을 더 길고 강력하게 재구축해 나간다면 말이다. 지금은 그의 ANT의 행로와 또 그와 연결된 여러 개념군들의 변화, 그의 이해관계에 대한 재해석 즉 ‘번역’을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황희숙 대진대 역사·문화콘텐츠학부
필자는 서울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행위자-연결망 이론(ANT)과 페미니즘의 동맹 가능성」 등이 있고, 저서로 『비트겐슈타인, 두 번 숨다』, 『인간본성의 이해』(공저), 『여성과 철학』(공저) 등이 있다.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등의 책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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