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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소 교육희년’, 한국 사학사의 담담한 내면 풍경이 되다
‘행소 교육희년’, 한국 사학사의 담담한 내면 풍경이 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8.1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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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行素 행소』 행소신일희박사 교육희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편, 계명대출판부, 671쪽, 비매품

 

‘행소’와 맺어진 제자들, 계명인들, 사회인사들, 외국의 저명인사들 … 이 책은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이고, 한국 사학사의 담담한 내면 풍경으로 기억될 것이다.

국립국어원 표준어대사전에서 ‘行素’를 검색하면 “궁중에서, 고기나 생선이 없는 찬으로 밥을 먹던 일”이라는 설명을 만날 수 있다. 고기나 생선이 없는 찬이란 검소, 소박을 의미하리라. 그러나 신일희 계명대 총장의 아호 ‘행소’일 때는 조금 의미가 달라진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1998년 신일희 총장이 중국 국무부 산하 최대 정책자문 기관이자 연구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을 방문했을 때, 이곳의 당서기 겸 부원장과 우리나라의 옛 공보부 장관에 해당되는 당 선전부장을 역임한 王忍之 장관이 신 총장에게 ‘행소’라는 아호를 지어줬다. 자기의 본분을 알고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할 뿐 여기 저기 기웃거리지 않는 군자의 삶을 형용한 『중용』 제14장 ‘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라는 글귀에서 가져왔던 것이다.

이중희 행소 신일희 박사 교육희년 기념사업준비위원장이 쓴 발간사에는 이 책의 탄생 과정이 녹아 있다. 신 총장의 ‘교육희년’을 맞아 제자, 후학, 계명의 구성원이 지나칠 수 없어서 2015년부터 위원회를 구성해 몇 가지 행사를 준비했다는 것. 4월에 개최됐던 행소 신일희 박사 교육희년 기념전, 행소박물관 기증 작품 전시회, 제1회 행소포럼(비교문학 국제학술대회)에 이어 대미를 장식하는 ‘기념도서’를 구상했다는 것. 그래서 실은 이 책은 일상적인 고희기념논문집과 같은 그저그런 논문의 향연이 아니라, ‘행소 신일희’를 중심으로 시간의 밭을 깊이 일궈온 나라 안팎 지성들의 가슴 속 이야기들의 보고가 된다.
신일희 총장은 “저의 교육희년에는 계명과의 42년, 교육자로서의 세월 50년, 결혼 생활 53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의 가족에게 있어서 계명과의 42년은 한편으로는 당위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결핍입니다. 아버지로서도 남편으로서도 저는 제 자리를 많이 비웠고 저에게 우선순위는 늘 계명이었습니다”라고 회고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에게 ‘계명’은 어떤 존재였나를 가늠해볼 수 있는 희년의 주름이 될 것이다.

책의 구성과 관련 흥미로운 점은, 起承轉結 구조로 잡고 ‘기’에는 제자들의 글을, ‘승’에는 계명인들, ‘전’에는 사회 인사들, ‘결’에는 외국인들의 글을 묶었다는 것이다. 어째서 ‘제자들’의 글이 맨 앞 起에 놓인 걸까. 계명대 74학번으로 한국불연구원 이사로 있는 권오주의 글 「많은 이야기 중 하나」가 책 맨 앞에 놓여 있다. 인상적이다. 내로라하는 정치인, 기업인, 종교인도 아니고 수많은 졸업생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을 앞세웠을 뿐이다.

권오주 이사는 이렇게 썼다. “저녁식사 후 선생님은 우리에게 질 좋은 종이에 하나씩 꼼꼼히 포장된 선물을 주셨다. 조각이 된 커다란 양초였다. 선생님의 졸업선물은 나에게 여태 커다란 부끄러움으로 자리하고 있다. 태워서 제대로 밝힌 기억이 없는 까닭이다. 아직 마지막 날이 완전히 지지는 않았으나, 그전에 무엇인가 마칠 수 있는 축복은 아직도 멀리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선생님께 늘 죄송함을 느낄 따름이다.”
‘행소’와 맺어진 제자들, 계명인들, 사회인사들, 외국의 저명인사들은 모두 한데 어울려 함께 시간을 걸어 왔다. 결국 이 책은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이고, 한국 사학사의 담담한 내면 풍경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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