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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의 상실’이 사회 위기 초래 … 자기수행 없는 한 자아정체성 문제 있다
‘의례의 상실’이 사회 위기 초래 … 자기수행 없는 한 자아정체성 문제 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8.16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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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_22강. 이향만 가톨릭대 교수의 ‘생로병사, 동서양의 의례’

지난달 30일(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안국동 W스테이지에서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 4섹션 ‘사회와 윤리’ 다섯 번째 강연의 주제는, 친숙하지만 생소한 ‘생로병사, 동서양의 의례’였다. 강연자는 이향만 가톨릭대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이향만 교수는 성균관대 한국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에서 마테오 리치의 적응 개념의 언어철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책임연구원과 국민대 연구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한 그리스도인이 노장사상에서 읽는 무위와 소요의 영성』이 있고 『지금, 여기의 유학』, 『다산 경학의 현대적 이해』, 『언어와 정치』 등의 공저를 썼다. 
이날 강연에서 이 교수는 “오늘날 사회에서 생로병사는 오히려 행복한 일로 여겨질 만큼 현대인은 다양한 위기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위기를 가중시키는 사회적 원인 중의 하나로 ‘의례의 상실’을 지적했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의례는 자아연출로 대체됐고 자기수행이 없는 연출은 일시적인 지향성만이 강조되고 자아 정체성의 문제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생로병사는 필연적으로 당면하게 되는 삶의 조건이자 보편적 생명현상이며, 삶의 가치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 바로 여기, ‘어떻게’의 방법에 사회적 관습으로서의 의례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통사회질서가 빠르게 해체된 동아시아 사회에서 동서양 고대 의례관은 사라지거나 변형돼 현대 사회에서는 제한적 의미만 가지고 있다. 이 교수는 이 부분을 “의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의례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고 읽어내면서 ‘사회적 의례와 개인적 의례’, ‘원리적 차원과 제도적 차원’에서 현대적 의례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논의를 이어갔다.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ka64@kyosu.net

매일 매일의 삶은 생로병사와 연관돼 있다. 인간사회는 예기치 않은 재해와 질병 그리고 폭력적인 일들에 빈번히 노출돼 있다. 그러므로 자연스런 생로병사는 오히려 행복한 일로 여겨진다. 그만큼 현대인은 위기 속에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위기의 원인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위기를 가중시키는 사회적 원인중의 하나는 의례의 상실로 판단된다. 의례는 본래 사회적 관계의 형식으로 본분에 따른 인격적 표현을 통해 사회적 유대와 결속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더 이상 전통적 의례에 의존하지 않는 현대 사회는 새로운 의례를 정착시킬만한 문화적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한편으로 생로병사가 고통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현대에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생은 단순히 태어남을 의미하기보다는 삶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 현대인은 자기 앞에 놓인 위기를 자각하지 못한 채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현대인은 이렇듯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감추고 어빙 고프만이 말하듯 자기과시나 위장이 요구되는 자아연출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아연출은 하나의 의식이라 할 수 있지만 의례는 아니다. 의례에는 자아연출 뿐 아니라 자기수행이 동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의례를 상실한 시대를 살며 전통적인 동서양 의례의 의미를 살피는 일은 자기회복을 위해 필요한 일이며 이 작업 자체가 의례적이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생명현상과 의례로서 생로병사

삶의 여정인 생로병사는 인간이 의지적으로 선택한 일이 아니라 인간됨으로써 필연적으로 당면하게 되는 삶의 조건이자 보편적 생명현상이다. 따라서 삶의 가치는 자연스러운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나이를 먹고, 어떻게 병들고, 어떻게 죽어 가느냐다. 이 ‘어떻게’의 방법에 사회적 관습으로서의 의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생로병사를 생명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때 생명현상에 대한 동서양의 문화적인 이해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은 생명문화를 구성하는 요소와 원리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같은 개념을 사용한다하더라도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점을 살피는 것이 동서양 생명의례의 차이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의례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앞에서 언급한 대로 서양의 관점에서는 의례와 놀이 그리고 축제, 의례와 서사의 상관성을 살필 필요가 있으며 동양의 관점에서 중시된 의례와 정치, 의례와 교육, 의례와 언어의 상관성을 살피는 것이 유익하리라 기대된다. 공통적인 관점에서 삶의 양식으로서의 의례는 상호적인 상관성을 살핌으로서 생명문화의 중요한 요소로서 의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일이다. 이는 의례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동서양의 생명문화의 주안점이 어디에 있는지 드러내며 각각의 문화가 갖는 특성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비판적 성찰

동서양 고대 의례관은 더 이상 수행되지 않거나 변형돼 현대사회에서는 제한적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또한 과거의 시점에 대해서도 드베리가 지적한대로 왕권이 많이 바뀐 중국의 환경에서 공자나 맹자가 규정하는 모델은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주나라의 봉건제도와 지역의 토지와 가족으로 작용하는 것에 근거하는 계급적인 귀족정치 그 자체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의례는 중세에는 주자에 의해서 그리고 근대에는 서구문물의 유입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됐다.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유교의례는 형식적으로 일부 남아있으나 대부분 그 형식과 의의를 상실해가고 있다. 서구의 경우에도 전통적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양식을 수용한 그리스도교의 종교문화가 전체 생활의례를 지배해 왔으나 현대사회에 이르러 종교적 의례는 단지 신앙인의 의례로 한정되어 유지될 뿐이다. 그렇다면 의례는 사라지는 것인가? 여기서 다시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인간이 의례 없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의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의례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1) 사회적 의례와 개인적 의례
사회현상을 의례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사회적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적이며 다층적인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아연출과 발전의 한계와 예기치 않은 사회적 지위의 상실 속에서 사회적 자아의 유지와 생존에 위기를 느끼게 된다. 사회적 의례는 한 개인이 사회 안에서 수행하는 연행적인 측면과 사회가 한 개인의 삶의 양식을 유지하도록 장을 마련해주고 보호하는 제도적 측면이 있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개개인의 생명의 서사가 제대로 구성되고 기술될 수가 있다.

또한 개인이 사회의례에 올바로 참여하기 위해선 개인의례가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의례는 자아연출의 연행성과 자기극복의 수행성이 갖춰져야 한다. 자기극복이란 외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자아와는 달리 자기 정체성과 통합성을 이루는 내적 자아의 완성을 의미한다. 개인의례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을 때 또한 공동의 사회의례가 구성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는 의례를 상실한 사회라 진단할 수 있다. 매스컴이 전하는 매일 매일의 소식은 무례한 사건들이다. 무례하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고 인간답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교육적 차원에서 예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 성찰적 삶의 양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이 단순히 생존의 차원에 살지 않고 도덕적인 생명을 지향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때 개인의 삶은 사회적 삶의 지평 속에서 그 의미를 발하게 될 것이다. 

2) 원리적 차원과 제도적 차원
전통적인 의례 정신이 현대인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그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사회제도가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생로병사의 생명현상과 이 과정을 담아낼 현대적인 관혼상제의 생명의례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낼 수 있는지 생명문화의 차원에서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원리적 차원에서 그리고 제도적 차원에서 최종적으로 이상적인 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 의례의 정신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도적 차원에서 의례는 정치와 교육에서 나타남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치가 의례적이기 위해서는 정치 담론이 수행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열린 대화와 경청과 수렴의 장이 될 때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제안과 방책이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생명성은 고양될 것이다.

동아시아 정치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교육은 가정과 국가를 중재하며 올바른 정치가 가능하도록 조율하는 역할이 부여돼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은 교육 자체에 있어서나 사회적 기능에 있어서나 그 본령을 상실한 채 명목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회의례의 관점에서 보면 교육은 의식의 변화를 꾀하고 개인의 생명성이 약동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사회적 생명성을 구성하는 본래의 고유한 사회적 역할과 지위를 상실해 가고 있다.

사회는 더 이상 의례가 수행되는 장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사회에 필요한 만큼의 자기 도덕성을 표현하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사회교육이 일어나지 않으며 정치를 조절할 수 있는 수행적 기능이 발휘될 수 없다. 교육은 단순히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장에서 배운 것을 수행해 그 효과를 스스로 자각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일방적이지 않으며 상호적이다. 교육은 시기가 제한돼 있지 않고 장이 또한 국한돼 있지 않다.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사회 안에서 펼쳐지고 확인돼야 한다. 이 때 경제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처럼 교육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조절이 이뤄질 것이다. 이것이 교육에서 일어나는 禮다. “사람은 죽을 때 까지 배워야 한다”는 일상의 격언은 교육적인 측면에서 인간 생명은 예로 완성된다는 것을 잘 명시하고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참으로 사회적 의례 안에서 그 여정을 완성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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