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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정 진화하면서 다양해질 쪽은 인문학이다”
“무한정 진화하면서 다양해질 쪽은 인문학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16.08.0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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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인간 존재의 의미: 지속 가능한 자유와 책임을 위하여』 에드워드 윌슨 지음|이한음 옮김|사이언스북스|232쪽|19,500원

문화적 진화는 오로지 인간 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 뇌는 유전자-문화 공진화라는 아주 특수한 형태의 자연 선택을 통해 선행 인류 시대와 구석기 시대에 걸쳐 진화한 기관이다. 주로 전두엽의 기억 은행에 의지하는 인간 뇌의 독특한 능력은 200만~30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 때부터 그 후손인 호모 사피엔스가 6만 년 전 전 세계로 퍼질 무렵에 걸쳐 출현했다. 우리가 지금 으레 하듯이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식으로가 아니라, 바깥에서 들여다봄으로써 문화적 진화를 이해하려면, 인간 마음의 모든 복잡한 감정과 구조를 해석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들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무수한 개인사를 알아내야 한다. 생각이 어떤 식으로 기호나 인공물로 번역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인문학이 하는 일이다. 인문학은 문화의 자연사이며, 우리의 가장 내밀하면서 소중한 유산이다.
인문학이 소중한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과학적 발견과 기술 발전은 일종의 한 살이를 거친다. 엄청난 규모와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의 복잡성에 이르렀다가, 발전 속도가 느려지면서 훨씬 더 서서히 성장이 일어나는 안정화 단계에 접어드는 양상을 띠고는 한다. 내가 논문을 발표하는 과학자로서 지낸 반세기 동안, 연간 연구자 1인당 과학적 발견 횟수는 급격히 줄어들어 왔다. 대신 연구진의 규모는 점점 커져 왔고, 지금은 10명 이상의 연구자가 공동으로 학술 논문을 발표하는 일이 흔해졌다. 대다수의 분야에서 과학적 발견을 하는 데 필요한 기술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비싸져 왔으며, 과학 연구에 필요한 기술과 통계 분석기법도 점점 더 고도화해 왔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금세기에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발전 속도가 느려지는 일이 시작될 무렵이면, 과학과 첨단기술은 지금보다 훨씬 더 널리 퍼져 있으면서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그리고 바로 이 점이 가장 중요한데―과학과 기술은 모든 문명사회, 하위문화, 사람을 가릴 것 없이 어디에서든 똑같은 모습일 것이다. 스웨덴, 미국, 부탄, 짐바브웨는 똑같은 정보를 공유할 것이다. 계속 거의 무한정 진화하면서 다양해질 쪽은 인문학이다.
앞으로 수십 년 사이에, 가장 주된 기술 발전은 흔히 BNR이라고 부르는 분야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생명 공학(biotechnology), 나노 기술(nanotechnology), 로봇학(robotics) 분야다. (……) 인류는 정말로 뇌에 이식한 칩과 유전적으로 향상시킨 지능 및 사회적 행동을 이용해 로봇 기술과 생물학적으로 경쟁하고 싶어할까? 그런 선택은 우리가 물려받은 인간 본성에서 급격히 벗어나고 인간 조건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인문학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 그토록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다. 내친 김에 말하자면, 여기서 나는 실존적 보수주의 쪽에 투표를 할 것이다. 생물학적 인간 본성을 신성한 수탁물로서 보호하자는 쪽이다. 우리는 과학과 기술 쪽으로 아주 잘하고 있다. 그쪽으로 계속 나아가서, 양쪽을 더 빨리 발전시키록도 하자.
하지만 인문학도 장려하자. 인문학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과학이 이 수원을, 즉 인류 미래의 절대적이면서 독특한 원천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쓰이지 않게 막아 줄 수 있다.

□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1956년부터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해왔다. 생물학뿐만 아니라 학문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 지성으로 손꼽힌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와 미래를 사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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