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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대가리 닮은 ‘늪의 무법자’
뱀 대가리 닮은 ‘늪의 무법자’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6.07.25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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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59. 가물치

가물치를 글거리(글감)로 정하고 나니 벼락같이 옛일 하나가 벌떡벌떡 날뛴다. 겨울이었다. 産後補血에 좋다는 팔뚝만하고 말쑥한 가물치 한 마리를 서울 경동시장 어물점에서 샀다. 요새는 한약재를 넣고 고운 가물치(즙)를 쉽게 살 수 있지만 그땐 그렇지 못했다. 아니, 하도 비싸 사먹지 못 했다는 말이 옳을 듯.

▲ 가물치.
    사진출처=http://gounmam-card.co.kr/

지금 생각해도 옥죄는 마음에 온 몸에 땀이 죽 밴다. 스텐가마솥을 훨훨 타는 연탄불에 얹어놓고 세게 달군 다음 솥바닥에 참기름 한 벌 두르고, 펄펄 덤비는 녀석을 확 집어넣고 솥뚜껑을 후딱 덮는다. 눈을 꽉 감은 채 이(齒)를 사리물고, 두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꽉 눌러 버틴다. 녀석이 심이 얼마나 센지 솥이 덜거덩, 덜컥거린다. 아뿔싸, 바닥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이제나 저제나, 한참을 바락바락, 엎치락뒤치락 펄떡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후~~~. 한 솥 물을 붓고 푹 끓이니 고와 울어난 하얀 국물이 혈을 돕는단다. 산후부기가 덜 빠진 마누라는 비릿한 것을 후루룩후루룩 마신다.

가물치의 옛말은 ‘가모티’이고, 몸빛이 검기에 ‘黑魚’ ‘黑?(검을 黑 가물치 ?)’라 하는데, ‘검음’을 뜻하는‘가물’에 비늘 없는 물고기를 뜻하는 접미사 ‘-치’가 붙어서 가물치가 됐다한다. 또 머리가 뱀 닮아서 蛇頭魚라 부르기도 한다.

가물치(Channa argus)는 가물치과에 속하는 민물고기(淡水魚)로 바닥은 진흙이면서 수초가 많고, 천천히 흐르거나 고인 물에 살며, 큰 놈은 체장이 1m에 무게가 7kg 가까이 나간다. 육식성어종인지라 성질이 사납고 힘이 세서 ‘늪의 무법자’라고 불린다. 가물치는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데 본종은 한국·중국 동부·극동러시아를 원산지로 여기며, 세분하여 한국과 중국이 원산지인 C. a. argus 와 극동러시아가 원지인 C. a. warpachowskii, 두 亞種(subspecies)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서양인들은 가물치(Northern snakehead)의 머리가 뱀 닮는 바람에 ‘snakehead’라 한다.

체색은 서식환경에 따라 누르스름하거나 흑갈색이고, 배 양편에는 검은 斑點(blotch)이 얼룩덜룩 난다. 지느러미에는 가시(spine)가 없고, 등지느러미가 아주 길고 크다. 등지느러미는 軟條(soft ray, 연한 뼈)가 49~50개고, 꼬리지느러미는 31~32개다. 머리는 작은 것이 앞이 아래위로 눌려졌고, 입은 아주 크며, 턱엔 억센 이가 띠처럼 둘러나고, 큰 어금니가 난다. 무엇보다 위턱의 중간에 두 개의 작은 콧구멍이 뚫렸으니, 이렇듯 있는 둥 만 둥한 것을 빗대 ‘가물치 콧구멍’이라 한다.

가물치는 물고기를 먹고사는 魚食性(piscivorous)이지만 갑각류나 양서류도 먹는다. 치어는 물벼룩(water flea) 등을 먹지만 좀 자라면 잔고기는 물론이요 개구리도 먹으며, 굶주리면 병든 친구나 제 새끼까지 마구잡이로 먹는다니 육식동물들에서 흔한 동족살생(cannibalism)이다.

보통 때는 물속에서 아가미호흡을 하지만 물이 마르거나 매우 탁해지면 아가미 곁에 있는 1쌍의 특수 대용호흡기(accessory respiratory organ)로 공기호흡(aerial respiration)을 하는 질긴 물고기다. 그래서 물 밖에서도 10~15℃에서 한 사나흘을 거뜬히 살 수 있고, 어린 것은 땅위에서 몸을 꿈틀거려 멀리 기어간다.

또한 5~8월에 물풀을 뜯어 모아 지름이 1m 남짓한 물에 둥둥 뜨는 납작한 산란둥지(spawning nests)를 만들고, 거기에다 한꺼번에 지름 2mm쯤 되는 샛노란 알 7천여 개를 낳는데 암컷은 1년에 무려 10만 개의 알을 산란할 수 있다한다. 알의 卵黃(yolk)이 흡수되고, 새끼가 8mm가 될 때(부화 때)까지 아비어미들이 눈을 울부라리고 지킨단다. 체색은 치어나 성어가 비슷하고, 생후 2~3년이면 성어가 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식용물고기(food fish)로 우리 가물치를 일부러 일본으로 들여갔다. 그러나 이들이 최상위포식자(top-level predator)라 토종물고기(native fish)에게 아주 위협적이다. 우리를 혼쭐나게 하는 맹랑한 외래종 배스(bass)나 블루길(blue gill)처럼 억세고 거친 ‘가무루치(カムルチ?)’가 일본본토의 평야지대를 야금야금 죄다 평정하고, 근래와선 홋카이도(북해도)에도 나타났다한다. 토종을 싹쓸이하대니 악명 높은 놈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미국에는 2002년 메릴랜드(Maryland)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한다. 그런데 그 가물치를 추적해봤더니만 누군가가 뉴욕어시장에서 성어 2마리를 사서 근처 연못에 넣었던 것. 워낙 공격적인지라 생태계보존을 위해 물고기살생용 로테논(piscicide rotenone)까지 연못에 뿌려봤으나 별무소용. 막판에 연못물을 빼어서 성어 2마리와 100여 마리 치어를 소탕했다한다. 하지만 해마다 미국전역에서 잇따라 여기저기에서 잡힌다고 하고, 심지어 오대호근처에까지 근접하기에 이르렀다한다.

어디 그 뿐일라고. 미국만도 아시아잉어가 강을, 미더덕이 바다를, 아시아갈대가 5대호까지 머뭇거림 없이 어마어마하게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공포에 질린 미국언론들은 “아시아가 미국을 점령하고 있다”고 했다한다. 우리나라만 외래종(invasive species)에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온통 다 그렇다는 거지. 생물은 국경이 없으니 산 설고 물 선 곳이라도 뿌리내려 정붙이고 살면 거기가 바로 고향이다, 안 그런가?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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