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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적인 변형, ‘위험’은 여전하다”
“영구적인 변형, ‘위험’은 여전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6.07.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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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_ ‘유전자 가위’

 

이 글은 <녹색평론> 149호(2016. 7-8월)에 실린 전방욱 강릉원주대 교수(생물학과)의 「‘유전자가위’ 기술의 위험」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최근에 개발된 ‘크리스토퍼유전자가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는 것 같다. 마음 먹은 대로 유전자를 편집해 난치병을 치료하고, 해충을 박멸해 질병을 물리치며, 식량작물을 개량해 굶주림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전자변형기술의 기능성만을 마구 과장해도 좋은 것일까? 만일 이 기술이 우리 다음 세대들의 유전자 조성을 완전히 바꿔놓는다고 하더라도, 지구상에서 한 생물을 완전히 사라지게 한다고 하더라도, 원치 않는 유전자 변형 식품을 모르는 사이에 먹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환호성을 지를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덴마크의 한 유제품회사의 연구실에서 크리스퍼유전자가위의 존재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요구르트를 배양하기 위해서는 바이러스의 일종인 파지에 오염되지 않은 유산균 종균을 사용해야 하는데, 어떤 종균은 파지에 저항성을 나타내는 반면, 다른 종균은 저항성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 차이를 알아보던 연구원들은 어떤 유산균은 파지가 침입하면 파지의 유전자를 잘라내어 이것을 크리스퍼(CRISPR)라는 반복서열로 간직하고 있다가 이 다음에 다시 침입한 유사하거나 동일한 파지에 저항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크리스퍼유전자가위를 사용해 동물 생식세포 또는 인간의 유도만능 줄기세포를 편집해 돌연변이를 유도한 후 질병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 환자의 체세포에서 유도한 만능줄기세포를 유전자가위로 교정하고 이를 다시 체내에 넣거나, 환자의 체내에 유전자편집도구를 직접 도입해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분해해 치료할 수 있다.
단일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유전병은 만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크리스퍼유전자가위를 사용해 생식세포에서 돌연변이를 교정할 수 있다면 자손들은 더 이상 유전병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인간의 생식세포에 유전자편집을 적용하는 연구는 후속세대에 영구적인 유전자변형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유전자치료는 후손에 영향을 미치지만 정작 미래세대의 동의를 받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는데, 옹호자들은 부모는 이미 후손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결정을 수시로 내리고 있으며 부모의 선의의 결정은 일일이 자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며 반박한다. 그러나 유전자칠가 후손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미래를 제한할 가능성도 있으며, 만약 후속세대에서 계속적인 추적실험이 필요하게 되는 경우에는, 유전자치료를 받은 후손의 인권 침해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인간의 진화방향에 영향을 미칠 인간 유전자 풀을 변화시키지 않을까를 걱정하기도 한다.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크리스퍼유전자가위 기술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 기술을 적용하는 대상과 방법에 대해 폭넓은 사회적 숙의가 이뤄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지난해 12월초 인간 유전체 편집을 다루기 위한 국제 정상회담이 열렸고,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말 유전자편집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기술영향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크리스퍼유전자가위 기술의 내용과 사회적·법적·윤리적 함의에 대해 과학자와 일반시민이 함께하는 토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도출된 결론을 바탕으로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

이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나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지금, 민주사회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크리스퍼유전자가위 기술과 같은 새로운 과학기술이 제기하는 도전을 맞아, 우선 우리 인간의 지식이 우리에게 버거운 기술의 최종적인 결과를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다시 한번 인격체로서의 인간, 생태계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의 책임과 한계, 인간과 지구의 미래 등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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