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1:00 (금)
“과학의 흐름을 이해하라”
“과학의 흐름을 이해하라”
  • 북학 기자
  • 승인 2016.07.19 1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문읽기_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N.캐서린 헤일스 지음|이경린·송은주 옮김|아카넷|436쪽|20,000원

 

스티븐 울프람의 책이 나오기 훨씬 전에 프랜시스 베이컨 역시 새로운 과학을 요청했다. 그것은 울프람의 비전보다 훨씬 더 야심차고 영향력이 큰 것이었다. 관례적으로 근대 과학의 토대를 제공했다고 여겨져온 『신기관(Novum Organon)』은 경험적 실천에 기반을 둔 남성 중심적 과학을 상상했고, 베이컨은 이러한 과학이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에 의한 훼손을 회복하고 지구에 대한 ‘인간’의 통치를 되찾게 하리라 크게 기대했다. 베이컨은 문화적 은유들을 믿는 데 따르는 위험을 아주 잘 이해했으므로, 과학 실천가들에게 그에 대해 경고하고자 맹점들의 유형을 분류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연금술이 번성하고 점성술이 국가 과학이었던 시대에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분리하는 그의 전략이 필요했다 할지라도, 그의 전략은 영향을 주면서도 동시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를 밑에 깔고 과학을 지배, 통제, 통치와 연계시키는 해로운 유산을 남겼다.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그러한 가정의 비극적 함의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부터 지구온난화를 겪는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소설과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작동돼 왔다.

20세기 중반의 사이버네틱스가 기여한 주요 공헌은 인간과 기계, 지배자와 피지배자, 주체와 객체를 연결하는 피드백 루프들을 예화한 이론들과 실핸 가능한 기술들을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가장 통찰력이 있고 재귀적인 사이버네틱스 학자들조차 미처 보지 못한 것은 재귀성이 자체의 조직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자기생성 시스템을 창조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되돌아가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인츠 폰 포에스터의 고전 작품 『시스템 관찰하기(Observing Systems)』는 그가 중요한 통찰의 문턱에 다다랐지만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재귀성이 원이라기보다는 창발적 행위들의 역동적 위계를 가져오는 나선형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위한 기반으로 이 아이디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무렵이면, 사이버네틱스는 이미 그것이 가지고 있던 유토피아적 광채를 잃어버렸고, 인공 생명, 복잡계 이론, 세포 자동차 같은 이름의 새로운 영역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책의 관심사는 계산 체제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종료의 과학’이 세계와 동떨어져 있기보다는 세계 안에 있다는 것, 지배자이기보다는 공동 창조자가 된다는 것, ‘우리가 만드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무엇인지’를 연결하는 복잡한 역학 관계의 참여자가 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어떻게 깊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계산 체제가 만들어내는 불확실성, 가능성, 그리고 위험들의 와중에서, 시물레이션들―계산적이고 내러티브적인―은 언어와 코드, 전통적 인쇄 매체와 전자 텍스트성, 그리고 주체성과 계산의 얽힘을 탐색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얽힘이 의미하는 주된 함의는 모든 종류의 경계들이 타자라고 가정된 것에 스며들었다는 사실이다. 전자 텍스트는 인쇄에 스며들고, 계산 과정은 생물학적 유기체에 스며들며, 지능 기계들은 살에 스며든다. 우리는 이러한 경계를 지키려 하기보다는 경계를 가로지르는 흐름이 복잡한 상호매개의 역할을 만들어내는 물질적으로 특정한 방식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경계를 가로지르는 교통의 흐름이 있다 해서 경계가 중요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 유기체들이 계산 과정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연어는 코드가 아니다. 살을 가진 피조물은 인공 생명 형태와 질적으로 다른 체현으로 구성돼 있다. 경계는 스며드는 것이면서 동시에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인간과 지능 기계가 점점 더 얽히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지능 기계와 다르다.

책의 저자 N. 캐서린 헤일스는 독특한 지적 경력의 소유자다. 로체스터 공대에서 화학으로 학사를 마치고 캘리포니아공대에서 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영문학으로 진로를 바꿔 1977년 로체스터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듀크대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과학과 문학, 기술 간의 관계를 다루는 포스트휴먼 이론에 대한 학제적 연구를 진행해 왔다.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는 포스트휴머니즘을 정의한 최초의 저서이며, 포스트휴먼 연구의 초석을 닦은 책이다. 그의 연구는 디지털 문학을 새롭게 떠오르는 문학 연구 영역으로 정립하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코드와 언어가 겹쳐지고 분기하는 방식과 현대의 인쇄본 책, 그리고 책과 컴퓨터 코드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앞장서서 연구를 이끌어 왔다. 최근에는 인간 인지에 대한 디지털 매체의 영향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