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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숙한 세계석학과 풋내기 정치학도의 만남 … 경제적 불평등, 그의 해법은?
원숙한 세계석학과 풋내기 정치학도의 만남 … 경제적 불평등, 그의 해법은?
  • 김민혁 미국 통신원 / 인디애나대 박사과정·정치학
  • 승인 2016.07.18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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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학계는 지금?_ 오랜 스승과의 만남 :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 교수 면담기

최근의 관심사는 인도, 이스라엘, 알제리와 같은 나라들에서 불고
있는 종교주의적 복고현상에 관한 것이네. 세속주의 좌파들이
민족해방을 성취한 이후 충분히 문화적 재생산의 기제를 만들지
못했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네.

▲ 마이클 왈저 교수와 함께. 2016년 4월 4일, 뉴욕에서. 필자 제공

오늘날 미국을 비롯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등지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적 성취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 젊은 학문후속세대들의 눈에 비친 현지 학계는 어떤 모습일까. 또 어떤 주제를 가지고 학자들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을까. <교수신문>은 ‘해외 학계는 지금?’이란 코너를 신설, 현지 박사과정 학문후속세대들의 눈으로 대학과 학계의 현안, 논문과 저서 등에 담긴 새로운 주장까지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김민혁 통신원(미국 인디애나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의 글로부터 ‘해외 학계는 지금?’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김민혁 통신원은 미국 정치의 주요 이슈들과 더불어 대학원에서의 삶, 정치학계의 소식 등을 전할 예정이다.

『정의의 영역들(Spheres of Justice)』(1983)과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들(Just and Unjust Wars)』(1977)로 잘 알려진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 교수(이하 ‘왈저’)를 지난 4월, 뉴욕 맨하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고 약간 찬바람도 남아있었지만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머핀, 은은한 조명으로 인해 긴장된 마음은 이내 누그러졌다. 그는 세계적 명성을 지닌 여든을 넘긴 원숙한 지식인이었고, 나는 미국 방문은 처음인데다 올 가을에 美 인디애나대에서 박사과정을 막 시작하는 풋내기였기에 이 만남은 도무지 성사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한 젊은 정치학도가 보낸 이메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답장을 해줬고, 나는 맨하탄에 소재한 그의 자택 근처에서 그를 만나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왈저: 반갑네. <디센트 매거진(Dissent Magazine)> 사무실에는 방문해봤나?
김민혁 :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편집진에게 메일을 늦게 보낸 탓으로 따로 약속을 잡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디센트> 사무실이 위치한 월가의 건물 앞까지는 찾아가봤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선생님이 쓰신 글을 읽으며 정치사상을 공부해왔습니다. 선생님의 정치철학과 민주주의에 대한 탐구는 저의 석사논문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저의 은사님이신 김홍우 선생님과 유홍림 선생님으로부터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전해 듣곤 했습니다. 이렇게 직접 뵙게 돼 정말 기쁩니다.
왈저 : 그렇구만. 두 선생님을 만난 것도 참 오랜 시간이 지났네. 한국으로 돌아가거든 나의 안부를 전해드리게나. 인디애나대에서는 제프리 아이작(Jeffrey Issac)을 만났다고 했지? 아이작 교수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디센트>지의 오랜 필진 중 하나일세. 그리고 그는 뛰어난 뮤지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웃음) 그나저나 자네는 인디애나대에서는 어떤 공부를 할 계획인가?
김 :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작 선생님께서는 잘 지내고 계셨고, <퍼스펙티브스 온 폴리틱스(Perspectives on Politics)>의 편집장 업무로 무척 바빠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제 연구주제와 관련해서 말씀 드리자면, 저는 심의 민주주의 이론을 실제 공공정책과 제도 디자인에 적용하는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스트롬 워크샵으로부터 펠로우쉽을 받으며 공동연구에 참여하게 돼 정치이론과 공공정책을 균형 있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왈저 : 자네의 군 생활에 대해서도 좀 더 이야기를 해주게나. 최근에 내가 저술하고 있는 책의 주제이기도 한데, 나는 최근에 미국 좌파의 대외정책에 관한 입장과 논쟁들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좌파 이론가들은 사회적 자원의 평등한 분배와 같은 국내 이슈들에 집중한 나머지 대외정책이나 안보이슈에 관해서는 취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룰 사례 중에 하나는 바로 1950년대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과 관련해 발생한 미국 국내에서의 논쟁에 관한 것이기도 하네.
 

 김 :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저서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들』에서도 한국전쟁의 사례가 중요하게 다뤄진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군 생활에 대한 대화는 생략)
왈저 : 자네의 군에서의 경력과 의회에서의 경력은 매우 흥미롭고, 앞으로의 공부에 있어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 이스라엘에 있는 정치학자들 중에서도 자네와 유사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자네는 그들을 연상시키는구만.(웃음) 최근 한국정치의 주요 이슈는 무엇인가?
김 : 열흘 후면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는 경제민주화입니다. 재벌들에게 집중된 경제권력을 어떻게 완화시킬 것인지가 중요한 이슈인 것 같습니다.
왈저 : 미국과도 비슷하구만. 우리도 경제적 불평등이 주요한 사회적 이슈이지. 종교와 관련된 이슈는 한국이나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이 어떤가? 최근의 관심사 중 하나는 인도나 이스라엘, 알제리와 같은 나라들에서 불고 있는 종교주의적 복고현상에 관한 것이네. 여러 나라에서 세속주의 좌파들이 민족해방을 성취한 이후 충분히 문화적 재생산의 기제를 만들지 못했기에 이러한 종교 복고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네. 그런데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중국의 경우에는 그러한 현상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 혹시 자네는 종교를 가지고 있나? 그리고 종교에 관심이 있는지?
 

김 : 물론입니다. 정치이론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종교 문제는 항상 중요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지요.(웃음) 제 생각에, 한국과 중국에서는 선생님의 최근 저서인 『세속주의 혁명의 역설(The Paradox of Liberation)』(2015)에서 설명하신 종교적 복고운동이 발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혹시 민족주의를 종교적 열정의 일종으로 본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적 정서는 국내적으로나 지역적 차원에서도 상당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시간이 상당히 흐르고,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모두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 버니 샌더스 현상에 관해서 조금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을 옹호하고 강조해 오신 선생님께서는 이번 현상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그리고 저는 버니 샌더스를 볼 때마다 선생님을 연상하게 됩니다. 마치 버니 샌더스는 정치인 버전의 마이클 왈저 선생님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면서요.
왈저 : 그런가?(웃음) 내 생각에는, 버니 샌더스의 캐릭터는 나의 스승인 어빙 하우(Irving Howe)를 좀 더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네만. 정말 놀라운 일이지. 민주적 사회주의의 어젠다가 이만큼이나 호응을 얻게 되리라고는 누가 생각을 했겠나. 하지만 그의 당선은 아마도 힘들겠고, 결국 힐러리가 민주당 후보로 결정이 되리라고 보네. 미국 대선 캠페인에서는 대외문제에 관한 능력과 경험이 매우 중요한 요인이고, 샌더스는 그 분야에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니까 말일세. 또한 미국인들은 아직 브루클린 뉴욕 출신의 유태인을 대통령으로 뽑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네.
 

김 :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버니 샌더스를 바라보는 <디센트>의 입장이 상당히 양면성을 지닌(ambivalent)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국사회 내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디센트>의 중요한 목표 중에 하나일텐데, 왜 <디센트>는 보다 적극적으로 샌더스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건가요?
왈저 : 옳은 지적일세. 하지만 이번 선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네. 만약에 이번 선거를 공화당에게 넘겨주게 된다면, 의료보험 개혁을 비롯해 대법관 임명 등 중요한 진보적 이슈들이 물거품이 되고 말걸세. 우리 <디센트>의 젊은 친구들은 여전히 꽤 열정적으로 샌더스를 지지하고 있네만, 또한 다른 이들은 민주당이 대선에 이기는 것이 보다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네.
김 : 선생님께서는 최근에 <디센트>의 편집장에서 은퇴하셨고, 데이비드 마커스(David Marcus)라는 상당히 젊은 친구가 새로운 공동편집장으로 취임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세대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왈저 : 그렇네. 마커스는 이제 30대 초중반의 나이고 컬럼비아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디센트>의 일도 함께 하고 있으니 정말 젊고 대단한 친구이네. 그는 <디센트>의 역사상 가장 젊은 편집장이기도 하네. 사실상 <디센트>를 구성하고 있는 스탭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30대의 젊은이들이라네. 그리고 세대교체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네. 마커스는 우리 매거진에 인턴으로 와서 온라인 웹페이지를 런칭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했다네. 그리고 이제 편집장이 됐지. 
 

김 : 저도 기회가 된다면 <디센트>에서 인턴쉽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습니다.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뉴욕의 비싼 물가가 한편으로 걱정이 됩니다.
왈저 : 그렇지.(웃음) 아마도 관심이 있다면 여름방학을 이용해 3달 정도 일을 할 수 있을걸세. 그리고 우리들은 젊은 필진들에게 최대한 그들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원고료를 지급하려고 노력하고 있네. 아카데미의 상황이 예전에 비해서 점점 더 빡빡해지고 있어서 학문세계와 정치적 저널에 관련된 일을 동시에 관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네. 
김 :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뉴욕에 올 때도 꼭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왈저 : 그러도록 함세. 공부하고 글 쓰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이 있겠나. 우리 같은 사람들은 결코 글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네.(웃음) 그럼 또 연락하세.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에서 나는 내내 그와의 대화를 복기하며 한 순간 한 순간을 되새겼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대화록 형태로 기록을 남겼다. 그 후 만난 많은 이들이 뉴욕에서의 이 특별한 경험에 대해 나에게 물어왔고 그때마다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을 시도했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만남은 서술형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고, 대화의 형식을 통해서만 그 정경과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미국통신원으로서 첫 기고문을 대화록의 형식으로 작성했다. 앞으로 시작될 블루밍턴에서의 새로운 삶도 다양하고 생생한 방식을 통해 독자들께 전달하고자 한다.

 

 

김민혁 미국 통신원 / 인디애나대 박사과정·정치학
다양한 정치·사회적 제도들을 활용해 시민들의 자발적 협력을 강화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민주적 거버넌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민주주의 이론과 공공정책 분야를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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